미안함에 대하여 - 홍세화 사회비평에세이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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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가 되물림된다면 그 반대편에 가난의 대물림이 있는데, 가난이 죄인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발언할 수 없을 때, 부러움이든 시기든 부의 대물림만을 바라보는 대신 대물림되는 가난을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고통과 불행,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목소리를 안간힘처럼 내보내는 것이다.


서문 살아남의 자의 미안함, p.8


 두어 달 전부터 구독했던 신문이 어느 순간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시간이 넘도록 신문을 붙잡고 있던 날들은 이미 오래된 과거가 된 것 같다. 매일 세상을 챙겨 보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고 있다.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들과 각종 사고들을 가득 메운 신문을 읽다보면 어느새 피로가 몰려오곤 했다. 시간은 꾸준히 흐르고, 세상사는 나의 관심 없이도 훌쩍 진행되기 마련이다. 날짜가 지나버린 신문에는 이미 결론이 났고, 그 결론을 알고 있는 기사들이 실려 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영화를 보듯 날짜가 지난 신문을 읽을 때는, 무감한 마음에 피로감 역시 덜어지는 느낌이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발에 채이는 따끈따끈한 신문을 볼 때면, 그렇게 그 신문이 하나둘 모여 어느새 한가득 쌓여 있는 신문들을 볼 때면, 매일 써야 하는 일기가 밀려 착잡한 심경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구독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1년 정기 구독과 비누 다섯 개와 커피 두 잔을 맞바꾸어서이기도 하지만, 비비안 포레스테가 말한 것처럼 ‘무관심은 잔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악몽 같은 세상에서 잔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첫 번째, 혐오스러운 세상을 개탄하며 그저 포기하는 ‘민주 건달’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두 번째일 것 같다.

 나는 평소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자주 느끼는 편이다. 뭐 하나 조금 못 해준 게 그렇게 미안하고, 이래도 미안하고, 저래도 미안하고. 조그만한 호의에는 그저 고마운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답을 해야겠다는 부담감과 함께 괜한 미안한 마음까지 드는 것을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온정과 시혜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다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라는 말이, 무척 아프게 와 닿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서로의 온정과 시혜가 너무나 필요한 상태이고, 이는 곧 우리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할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 수면 밖으로 폭발해 터져나왔고, 또 일순간 수면 아래로 사라진 사건이 2014년 4월 16일에 있었다. 세상은 꾸준히, 정말 잔혹할만큼 성실하게도 흘러가기 때문에 금세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세월호는 2017년 인양되어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여러 의문을 지닌 채 심해 속에 잠겨 있다.



매일 평균 다섯 명이 산재 사고로 사망하고 38명이 자살하는 사회. (p.118)

우리의 몸이 거하는 모든 곳, 그러니까 집과 배움터 그리고 일터에서 자유로운 주체이기가 어려운 사회. (p.13)

수학여행을 가다가 한꺼번에 수장되고

일하다가 직업병으로 죽어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사회. 청춘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지 않는 사회. (p.25)

남을 설득하기를 포기한 사회. 설득되기를 포기당한 사회. (p.71)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택한 사회. (p.74)

사유 없이 자신의 처지나 정체성과 동떨어진 의식 세계만 갖고 그것을 고집하는 사회. (p.98)

타인의 온정과 시혜가 너무나도 필요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사회. (p.116)

일제의 앞잡이였던 자를 법이 아닌 암살로써만 그 죄값을 치르게 할 수 있는 사회. (p.135)

20세기 초 타이타닉호의 선장과 선원 같은 선장과 선원을 찾을 수 없는 사회. (p.157)


 
 헬조선. 작금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나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이 막힐 만큼 머릿속이 복잡했고 암담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왔다니, 살고 있다니, 살아가야 한다니. 이 나라를,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은 심경이 된 찰나 마주친 책의 마지막 구절이 있었다.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한다. 하지만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자칫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는 개탄하는 것으로 자신의 윤리적 우월감을 확인하면서 자기만족에 머무르는 것이다. 실상 세상이 혐오스럽다고 개탄하기는 쉬운 일이다. 개탄을 넘어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분노를 넘어 참여하고 연대하고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설득하기 어렵고, 그래서 설득하기를 포기한다면,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다시금 되새기자.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p.239

 ‘민주 건달’이 되기를 경계하고, 잔인할 만큼 무관심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 마음에 포기해 버리려던 것이 또 미안해져서. 그 자포자기의 마음을 다시 접어 깊숙이 넣었다.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현실에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전혀 들지 않을 때까지, 그런 감정을 들게 하는 일들이 사라질 때까지는, 그 마음을 꺼낼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저자의 말대로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기에, 다름아닌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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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 되물림된다면 그 반대편에 가난의 대물림이 있는데, 가난이 죄인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발언할 수 없을 때, 부러움이든 시기든 부의 대물림만을 바라보는 대신 대물림되는 가난을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고통과 불행,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목소리를 안간힘처럼 내보내는 것이다. - P8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한다. 하지만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자칫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는 개탄하는 것으로 자신의 윤리적 우월감을 확인하면서 자기만족에 머무르는 것이다. 실상 세상이 혐오스럽다고 개탄하기는 쉬운 일이다. 개탄을 넘어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분노를 넘어 참여하고 연대하고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설득하기 어렵고, 그래서 설득하기를 포기한다면,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다시금 되새기자.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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