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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지난 달 5월 10일에 여섯 살이 된 아사토를 키우는 사토코는 한 달 사이에 계속 걸려오는 집 전화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짜증이 날 정도로 자주는 아니지만 사흘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걸려오는 전화에선 상대방의 어떠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또다시 울리는 집 전화에 지금까지 연속으로 걸려 온 적이 없었음을 깨닫고 당신. 누구예요? 하고 화를 내볼까. 이제 그만하세요, 하고 말을 붙여 볼까 고민을 하는데 전화는 아사토의 유치원에서 걸려 온 것이었습니다. 아사토와 같은 반에 다니는 소라가 정글짐에서 떨어졌는데 다친 소라가 곁에 있던 아사토가 자신을 밀었다고 말하는 바람에 연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다친 아이가 아사토가 아닌 것에 안심을 했다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 친분이 있는 소라를 밀어 떨어뜨린 게 아사토라니. ‘평온과 불온‘이라는 챕터 제목을 보며 이렇게 ‘평온‘이 깨지면서 ‘불온‘이 닥치는 걸까? 소리 없는 전화와 여섯 살의 아이, 그저 평범한 일상이 여섯 살 아이들의 말에 의해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어른 싸움으로 커지면서 깨지는 걸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소설을 읽다가 사건의 진실을 알았을 땐 소설같은 결말이란 생각까지 하며 허탈해 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아이‘는 ‘평범한 가정‘에 있다는 소설속 표현처럼, 평범한 일상을 깨는 말없는 전화처럼,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 사토코가 회사 동료이자 동갑인 기요카즈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없는 생활에 별 불만이 없던 시절부터 늦기전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걱정하는 친정 부모님의 재촉으로 불임클리닉에 다니다 남편이 무정자증이라는 진단에 시어머니의 사과를 받으며 불임의 원인이 남편이 아닌 자신에게 있었다면 친정부모가 저렇게 머리숙여 사죄를 해야하는 걸까 하고 독백을 하는 사토코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마흔한 살에 아사토와 만나게 된 긴 터널 뒤에는 말없는 전화기 너머로 막 중학생이 된 열세 살 당찬 소녀 가타쿠라 히카리가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고 사랑에 대한 믿음과 임신과 출산에 대한 무지한 상태에서 ‘꼬맹이‘를 낳게 되고, 사토코 부부에게 ‘아사토‘ 라는 이름의 아이로 보내게 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된 아사토를 궁금해 하면서 아이를 되돌려 주든가 돈을 달라고,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아사토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자신을 아사토를 낳은 진짜 엄마라고 말하는 여자를 향해 사토코는 오히려 묻습니다. 당신, 누구냐고.
아마도, 불임치료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나오는 사토코의 심경을 남들의 그저그런 이야기로 넘기겠지만 오 년이라는 시간동안 마음 졸이며 과배란을 위해 자신의 배에 주사바늘을 꽂아야만 했던 시간을 보낸 저에겐 잊지 못할 과거의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만큼이나 핏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는 일본이기에 오히려 입양을 선택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면서까지 전업주부의 길을 가게 된 사토코가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비록 중학생이지만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로 결심한 히카리의 선택도, 폐렴으로 위장 된 출산과 다른 부모에게 자신이 낳은 아이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날에서야 품안에 안아 볼 수 있었던 순간도, 고등학교를 졸업 못하고 가출한 소녀가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버티려 노력했으나 결코 쉽지 않은 벽을 만나 ‘저는 그 아이의 엄마가 아닙니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던 히카리의 이야기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만들었습니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 가족인걸까? 아니, 엄마 사토코와 아빠 기요카즈, 아들 아사토는 혈연관계가 아니지만 가족입니다. 이제 아사토의 ‘히로시마 엄마‘인 히카리를 포함해서.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시작한 소설 [아침이 온다]를 통해 묵직한 감동과 추억과 잊고 있었던 간절함의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책을 통해 각자 어떤 식으로든 외면하고 무관심했던 사회의 그림자를 한번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존재만으로 충분히 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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