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익은 마음
재클린 우드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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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제 아빠의 검은 피부와 제 증조할머니의 길고 굵은 머리카락과 저만의 예쁘고 호기심 많은 눈빛을 지닌 어린 손녀딸과 함께 식물원에서 보내 아름다운 오후를 돌이켜본다. 그때는 아이가 제 엄마를 아이리스라고 부르기 시작하고도 아주 한참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7. 세이비, 109쪽)

어린 손녀딸의 이름은 멜로디 입니다. 소설의 시작은 멜로디의 열여섯 살 성년식 장면에 대한 멜로디의 목소리로 열리고 그 옆에는 소녀가 아이리스라고 부르는 엄마가 있습니다. 열다섯 살이었던 엄마를 위해 엄마의 엄마 세이비와 아빠 새미포보이가 정성어린 성인식 준비물이었던 하얀 드레스가 토르소에 입혀져 오늘의 주인공 멜로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리리스는 성인식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오브리의 아이 멜로디가 그녀에게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1921년 털사의 백인들이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격을 했습니다. 우리 할머니의 미용실이 불타고 두 살배기 아이를 태워죽이겠다고 그들은 달려들었습니다. 그 아기가 우리 엄마였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오클라호마주를 떠나 시카고로 가야만 했습니다. 세이비는 새미포보이의 첫사랑이었고 그들은 결혼을 했고 아이리스에게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세상을 물려 주지 않기 위해 경제적인 부를, 파괴되고 빼앗긴 권리를 복원하기 위해 자수성가를 이루지만 딸은 열다섯 살에 부푼 배와 퇴학 소식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멜로디의 생애 첫 기억은 세 살때 아이리스가 그들 곁을 떠나 대학으로 가는 날의 아침입니다. 멜로디의 아빠 오브리가 아이리스의 부모인 세이비, 새미포보이와 함께 지내고 있던 그 시절에 멜로디는 멈춰있던 자신의 학업을 위해 가족들에게서 가장 먼곳의 대학으로 떠나고 아이는 그렇게 엄마를 아이리스라고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2001년 5월의 마지막날 할아버지가 부른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하는 성년식을 치르는 멜로디를 처음 만났을 땐, 그녀가 엄마를 아이리스라고 호칭 했을 땐 어색하고 모질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츰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랑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는지, 순간순간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또 얼마나 큰 희생을 치뤘는지 읽어가면서 아이리스도 멜로디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그리고 어머니가 딸에게 전하는 서사의 문장들 속에 역사와 피와 누군가의 죽음이 덤덤하게 실려져 있습니다. 짧은 소설에 담긴 긴 이들의 역사가 깊이 새겨지는 느낌입니다.

[덜 익은 마음]은 사랑에 대한 소설이며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한 소설인 동시에 진정한 사랑을 아는 이의 소설입니다. 멀리 떠난 그리운 이를 오늘 더 그리워지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덜 익어서 아직은 샛빨간 피가 보이는 뼈에 붙은 살처럼 설익은 그 마음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누구나 그렇다고 나도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은 소설입니다. 이 봄에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덜익은마음 #재클린우드슨 #장편소설 #김선형_옮김 #문학동네
#책추천 #책스타그램 #미국소설 #청소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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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맙다 - 30만 부 기념 전면개정판
전승환 지음 / 북로망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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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추억, 계절, 문장이 그러할 테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특별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나에게 고맙다 - 에필로그 중 - 284쪽)

‘책 읽어주는 남자‘ 전승환님의 에세이 [나에게 고맙다]가 30만 부 기념 전면개정판으로 나왔다는데 사실 그전까진 몰랐습니다. 에세이는 잘 읽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읽더라도 아는 작가의 에세이, 좋아하는 시인의 에세이만 찾아 읽는 에세이 편식러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존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부모님 또는 자식, 연인 이나 사랑하는 사람 등등을 말하는 게 당연하다는 편견을 깨고 그 모든 이들은 내가 존재해야 고마움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때론 슬퍼하고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문장들을 한 가득 만나고 나니 그렇구나, 나는 ‘나‘에게 ‘고맙다‘ 말한 적도 생각한 적도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삼포세대, 오포세대, 수포자, 영포자...모든 걸 포기하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결코 포기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에 왜 가슴이 뜨끔해지는지...

봄날을 가득 담은 사진들,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사진들, 드넓은 파도가 밀려오는 사진과 눈꽃을 피워낸 가지들이 한가득한 나무에 이르기까지 사진들과 짧은 글들과 시가 아닐까 싶은 감동의 메시지들이 그야말로 그득하게 들어있습니다. 읽다보면 뿌듯해지고 읽다보면 추억도 밀려오고 또 읽다보면 이불킥 하고 싶은 충동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바쁘고 뭔가에 집중하고 재난을 극복하듯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삶이, 그 치열한 날들이 훈장이라 생각하며 살아오던 사람에게 게으름을 역설하고 남에게 좋은 사람인척 하기 위해 자기 시간을 쓰는 이들에게 그건 낭비라고 단칼에 자르는 단호함이 선물처럼 다가 옵니다. 무엇보다 진심과 배려는 자기 자신이 행복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툭툭 던져주고 걸어 가는 멋스러움이라니.

[나에게 고맙다]를 선택한 나에게 고맙습니다. 유채꽃 가득한 창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책 표지에 이끌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에게 건네는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선택한 저 자신에게 고맙다 인사를 해 봅니다. 근사한 인사가 아니어도 진심 어린 한마디면 충분하다(87쪽)는 문장처럼 오늘,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실제로 해봤습니다. 이 봄, 한겨울이 울고갈 만큼 추운 오늘,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슬픔의 시기지만 우리 이렇게 존재하고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책이 있으니 [나에게 고맙다] 한번씩 속삭여보기로 약속.

그래서 오늘은 나의 색깔로 당신을 물들이길 소원하지 않고, 당신의 색깔로 내가 변하길 바라지도 않고 그저 투명하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날이 되길 바라며 [나에게 고맙다] 정말 고맙다 속삭여봅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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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 특서 청소년문학 26
김영리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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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서 나와서 소통으로 가는 게 예술이죠. (팬이, 200쪽)

그리 멀지 않은 미래 또는 아직은 먼 미래의 인간의 표정을 가진 마지막 로봇-5089와 로봇 엔지니어 정준이 서로 이해 할 수 없던 간극을 메꿔나가고 있습니다.

로봇-5089는 정준이 만든 사람의 얼굴을 가진 마지막 로봇 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엔 로봇이 인간의 표정과 목소리, 언어구사 능력까지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신기해 하며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로봇들이 인간과 구별 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워지고 사람을 대신해 더 많은 일을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하는데다 정확하고 실수 없이 하자 로봇과 사람을 차별화 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 되었고 지금은 표정을 전혀 알 수 없는 헬멧 형태의 머리와 기계 느낌의 목소리만이 로봇에게 허락 되었습니다. 새로운 아인 시리즈 로봇을 선보인 아인사는 예술을 하고 싶어하는 로봇-5089를 리셋하고자 합니다. 18년 동안 인간 곁에서 인간을 위해 만들어져 살았고, 또 필요에 의해 작곡을 하고 미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딥러닝 데이타들을 축적한 로봇-5089는 자신을 만든 엔지니어 정준의 부탁에도 강제 리셋을 거부합니다.

반대로 여기 열 살의 아이가 있습니다. 자신을 로봇이라 믿고 로봇이라 생각하는 아이는 엄마와 감동적으로 본 영황 ‘워-E‘에서 자신의 새로운 로봇이름 ‘워리‘로 불리길 원하고 자신을 로봇으로 여깁니다. 급속 충전기 모양의 침대에서 자고 어느날 만난 로봇-5089가 나노 로봇이 담긴 내부 청소액을 마시는 걸 보고 나서야 로봇은 먹지 않는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엄마가 만들어주신 내부 청소액과 비슷한 액체를 마십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로봇이 되려는 아이, 그리고 지난 기억들조차 사라지게 만들고 싶어 리셋 되고 싶어하는 아이는 이렇게 절대 리셋 되길 거부하는 로봇-5089 팬이와 만나 서로가 원하는 것을 이룰 방법을 찾습니다.

인간과 AI(인공지능)의 차이를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인 예술과 창조성은 아무리 발달한 AI 기술이라도 차별화 된다는 것이 의견이었고 지금 현재는 과연 그런 것인가 의문이 듭니다. 베토벤과 모자르트 음악을 딥러닝한 AI가 만든 음악,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를 감지하고 익혀 새로운 미술 작품을 만드는 AI, 문학작품을 쓰는 AI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기에 고유의 영역이란 과연 어떤 기준을 가지고 그은 선 안에 있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합니다.

차이와 차별, 외형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 인간과 로봇, 행위예술을 하는 위술의 예술과 로봇-5089가 만든 자작곡 등 서로 대치되면서도 하나인 인식의 차이들이 고통을 알아가며 예술을 하고 싶은 로봇과 고통을 잊기 위해 로봇이 되고 싶은 아이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당신이 가진 ‘틀‘은 여전히 견고한가?˝라고 말입니다.

예술을 하고 싶어하는 로봇을 이해 못하는 이들을 향해 ‘나 자신이라도 나의 팬이 되고 싶다‘며 ‘팬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로봇-5089가 어떻게 리셋하고 싶은 아이 워리의 1호 팬이 되었는지, 로봇 심리학자와 로봇 엔지니어가 결국 어떤 결정을 했는지 [팬이]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감동 그 너머에 그동안 무시하고 있던 진실이 틀을 깨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느낌입니다. 추천합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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