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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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의 단편선,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가 ‘난 그의 글을 질투했다-내가 유일하게 질투한 글솜씨다‘라고 했다고 하니 도대체 무엇이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품에 숨어 있기에 그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가 질투를 했을까 하고 몹시 궁금해, 20세기 문학에서 간과 된 진정한 천재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책 [차 한 잔]을 급히 펼쳐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낯설다 못해 크게 한방 먹은 표정의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첫번째 단편 ‘피곤한 아이‘는 맨스필드가 ‘뉴에이지‘에 처음 발표한 작품(1909년) 입니다. 나무와 하얀 오솔길을 걷는 아이를 상상하고 있다가 텅 빈 오솔길을 막 걷기 시작할 때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손이라니. 정신이 번쩍 들어 책의 표지를 다시 보고, 단편 제목을 다시 읽습니다. 피곤한 아이는 귀싸대기를 날린 부인의 아이들 세 명과 한 침대를 쓰고 있고 유일하게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앓이를 하는 아기 두 명, 등교 준비를 시켜야만 하는 아이들 안톤과 한스에 아직은 어린 리나까지 시끌벅적한 이 집안에 또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남자의 말에 ‘피곤한 아이‘는 아기를 침대에 떨어뜨리고 공포에 질린 눈으로 가만히 내려다보고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부인의 침대에서 가져온 베개와 생글거리며 살금살금 아기에게 다가가는 피곤한 아이와 귀가 찢어지게 비명을 질러대는 아기, 또다시 나오는 텅 빈 오솔길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가식도 없고 이유도 없으며 ‘피곤한 아이‘는 그렇게 현실세계에서 망가졌는지 단지 상상의 세계인지 경계선 없이 치고 들어와 큰 충격을 암시하며 끝이 났습니다.

이후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에 등장하는 스물여섯 살 파리 남자 라울 뒤케트와 ‘파커 아주머니의 인생‘에 등장하는 파커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강펀치를 맞고 표제작인 ‘차 한 잔‘을 책의 끝자락즈음 읽을 땐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조금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거리에서 차 한 잔을 사서 마실 수 있는 돈이 없다고 애원하는 자기 또래의 아가씨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며 ‘책에서 읽고 연극에서 보는 그런 일을 실제로 해보면 어떨까? 흥미진진할 것이다‘(245쪽)라고 상상하는 로즈마리의 사고방식엔 굶주린 사람들은 고분고분하다는 생각과 그런 이들을 위해 차를 대접하고 내 시간을 할애했다는 자긍심 가득한 가식적인 모습이 어뚱하다 싶었는데 막상 남편이 그 여자의 외모가 꽤 예쁘다는 말에 곧바로 온정어린 마음은 사라지고 차 한 잔 할 돈을 줘서 다시 거리로 돌려보냅니다.

세상에 가차 없습니다. 이기적이고 허영 덩어리, 날것의 그 시대를 목도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알려지지 않는 사건사고의 현장에 캐서린 맨스필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충동적으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작가의 인생이 시대의 모습에 투영 된 것은 아닐까, 아무 감정 없이 피곤한 아이가 울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베개로 누르며 꿈을 꾸듯이 그녀의 작품속에 광기는 과연 픽션일까. 많은 의문부호를 그려가며 그럼에도 맨스필드가 작품에서 나타내는 동작 하나하나와 주변 묘사, 심리의 변화 등 이전까지 없던 작가라는 점만은 확신 합니다. [차 한 잔] 드실 준비가 되었다면 캐서린 맨스필드 단편선에 도전해 보시길 권합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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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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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슈테판 츠바이크는 독일문학과 프랑스문학을 전공하고, 스무 살이 되던 1901년엔 그의 첫 시집을 출간하며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또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 입대해 종군 기자로 활동하고 그럼으로써 얻은 깊은 통찰력으로 전쟁이 끝난 후 유명 작가들의 평전과 역사적 인물들의 전기를 집필하며 명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서른 살의 그는 미국, 캐나다, 쿠바, 푸에르토리코를 여행하며 희곡을 발표하고 마흔 살즈음엔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소련과 이탈리아를 자유롭게 여행하던 그의 인생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바로 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자신이 책들이 금서로 지정 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런던으로, 뉴욕, 아르헨티나, 파라과이를 거쳐 브라질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사실과 소설 [체스 이야기]를 완성하였으나 다시는 고향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직면했을 때 입니다.

[체스 이야기 ㆍ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을 때 들었던 첫 생각은 우울함이었습니다. 배 위에서 열리는 체스 대회, 세계 체스챔피언인 미르코 첸토피치가 가난한 남슬라브계 도나우 뱃사공의 아들에서 어떻게 세계 체스챔피언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자세한 설명이 나올 때까지도 이들이 주인공이라 확신을 했는데 어느 순간 다음다음, 다섯 수는 앞서 체스판을 그리며 훈수 두는 존재가 등장하며 그가 세계 체스챔피언을 이길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 긴 독백과 같은 말을 할 때서야 그가 바로 주인공이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겪은 감옥에서의 경험, 작가 자신이 읽을 수 있는 책도, 글을 쓸 수 있는 종이와 펜도 금지 되었을 때 느껴야 했던 무기력함이, 그 시간들을 견디게 한 존재가 바로 상상속의 체스 게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츠바이크의 마지막 소설 ‘체스 이야기‘보다 오래전에 완성 된 ‘낯선 여인의 편지‘는 어느날 자신에게 온 낯선 여인의 편지를 받는 소설가의 이야기 입니다. ‘제 아이가 어제 죽었습니다‘라는 반복 되는 문장과 왜 자신이 스무 장이 넘는 편지를 소설가 R에게 써야만 했는지 장문의 시처럼 여인은 고백하고 안타까워 합니다. 첫사랑이며 이웃이었던 소녀의 고백이자 잊혀진 낯선 여인이 세상을 떠난 아이의 죽음을 알리는 장송곡과 같은 긴 편지가 결코 우연히 소설가에게 보내진 것이 아님을 문장을 읽을 때마다 실타래를 풀어 놓듯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어둡고 힘든 작품이지만 찬란했던 과거의 빛남을 함축하고 있는 두 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났습니다. 낯선 만큼 새롭고 생소한 만큼 기대되는 소설을 읽고 또 다른 세상으로의 길을 발견한 듯한 충만함을 얻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체스 이야기 ㆍ낯선 여인의 편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한번쯤은 읽어보시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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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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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는 읽어보겠다고 결심만 했지만 [노인과 바다]는 결심하고 드디어 읽어냈습니다. 왜 번역 된 본문이 133쪽 뿐인 소설을 겁을 먹고 시작을 못했는지... 한 시간 반만에 읽고 헤밍웨이의 연보까지 살펴볼 여유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미루고 있었던 과거의 나에게 화가 날 지경입니다.

[노인과 바다]는 노인이 나오고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청새치)를 잡고 소년이 나오고 다행히 다시 노인은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었고 노벨상의 영광도 그에게 선사했습니다.

˝우리, 끝번호가 팔십오인 복권을 한 장 사야 하지 않겠니? 내일이면 팔십오 일째니까 말이다.˝
˝그것도 괜찮겠죠.˝ 소년은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최고 기록인 팔십칠 일은 어떻게 하고요?˝
˝그건 두 번 다시 안 깨질 기록이야. 팔십오번 복권을 구할 수 있을까?˝
˝주문하면 되겠죠.˝ - 노인과 바다 (18쪽)

최장 팔십칠 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한 기록의 사나이, 노인은 이번에도 벌써 팔십사 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팔십오 일째, 그래서 더 먼 바다로 나가기 위해 새벽녘 맨발의 노인과 소년은 어둠 속의 항구로 걸어갑니다.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사자 꿈을 꾸는 노인은 소년이 준 미끼고기를 잘 챙겨서 바다 위로 배를 띄우고 떠오르는 태양과 팽팽하게 드리운 낚싯줄을 바라보며 다만 더이상 운이 없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33쪽)라며 생각을 합니다. 날치들이 긴 공기 중 유영을 하고, 만새기 떼가 이리저리 사냥을 다니고 해파리가 떠다니고 날아가다 지친 휘파람새가 배에 잠시 머물고 밤과 낮이 지나는 사이 거대한 청새치가 노인의 낚싯줄에 걸려 서로가 지칠 때를 기다립니다. 동쪽으로 북쪽으로. 왼손에는 쥐가 나고 오른손도 다치고 거대한 물고기도 지친 그때 죽음의 냄새를 맡은 상어들은 노인의 배에 포획 된 청새치를 야금야금 뜯어내 먹습니다. 노인은 소년이 곁에 있었다면 다친 손을 치료해 주고 달려드는 상어들과의 싸움에서 좀더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독백을 합니다. 마지막 남은 고기조각까지 먹어버린 상어들을 뒤로 하고 노인은 지치고 다친 육체를 이끌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단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사투를 벌인 끝에 고기는 모두 떨어져 나갔으나 머리부터 꼬리까지 5.5미터에 이르는 뼈를 배에 묶고 살아 돌아왔습니다. 소년의 도움을 아쉬워는 해도 결코 포기 하지 않는 모습, 거대한 바다의 암흑속에 있음에도 길을 잃지 않는 지혜로움, 양손을 모두 다치고 노 마저 부서지는 상어와의 싸움에도 좌절하지 않는 그 정신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헤밍웨이의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 [노인과 바다]는 자연으로부터의 위험과 공포에도 꿋꿋이 승리하는 노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는 위로를 건내주고 있습니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세계적인 바이러스와의 치열한 전투였으나 서서히 우리는 이제 한번 겪어본 사람들이 되어 갑니다. 살아남는 것이 승리인 오늘 입니다. [노인과 바다]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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