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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평점 :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의 일화에서 나온 단어 ‘모순‘을 제목으로 한 1990년대 말에 쓰여진 소설을 읽었습니다. 비로소 그때와 지금의 ‘모순‘을 발견합니다. 아니, 어쩌면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한 문장에서 소설을 통해 무엇인가를 정말로 알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사실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 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296쪽)‘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안진진‘은 이름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주어지기까지 과정을 알고 나면 안쓰럽기만 합니다. 부모가 처음 합의했던 딸의 외자 이름은 ‘진‘이었습니다. 동사무소에 출생신고하러 간 아버지가 진지함을 나타내는 한자를 한 번 쓰는 것은 무거우니 두 번으로 하자고 즉흥적으로 말을 바꿔 출생신고서의 이름란에 ‘진진(眞眞)‘으로 기록 되기 전까지는. 다만 아버지는 자신의 성을 그 이름에 붙여 ‘안진진‘이 된 딸 아이의 삶에 대해선 고민을 덜 했던 것 같습니다. 둘째 딸은 선선, 셋째는 미미라는 이름을 계획까지 했으니. 다행히 남동생 ‘진모‘ 이외에는 형제가 없다는 것에 안도를 하며. 일란성 쌍둥이로 4월 1일에 태어난 어머니와 이모가 똑같은 4월 1일에 동시에 결혼식을 하고 서로 사는 곳 만큼이나 다른 삶을 살며 내 어머니를 대신해 이모를 ‘어머니‘라고 반 아이들에게 소개했던 안진진의 스물다섯 살에서 여섯으로 넘어가는 그 해의 일들이 소설 <모순> 안에 박혀 있습니다.
슬픈 일몰에 대해 말하고, 콩 한쪽도 나누며 공범이 되길 바라던 아버지가 사라졌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벌써 5년이란 세월 동안 부재하는 가운데 어머니는 일탈의 일탈을 감행하다 감옥에 간 아들 뒷바라지를 하며 출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고, 또 읽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혹한이 찾아와 사랑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한 남자와 모든 것이 계획적이고 부족함이 없는 또다른 남자 사이에서 너무나 완벽해 보이고, 불행이란 모를 것 같은 이모가 오히려 불행 속에 살고 있는 엄마의 삶을 부러워했다는 사실을 편지를 통해 읽으며 그녀도 ‘모순‘에 가까운 결정을 내립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시간을 거슬러 1990년대 말로 회귀를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공중전화가 거리 곳곳에 있고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 앨범이 나오던 그 시간속으로.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그 땐 다른 의미였다는 걸, 삶의 어디에도 정답은 없고, 남들의 입을 통해 듣는 교훈은 결코 내 삶의 체험처럼 다가 올 수 없다는 걸.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그런데도 이 모순 덕분에 또 살아간다는 걸.
오래 된 소설을 읽으며, 그리 오래 되지 않는 몇십년 전을 떠올리며, 또 먼 미래의 삶 어딘가에서 오늘을 떠올릴 ‘나‘를 상상하며 보름 간의 책 읽기를 끝내고, 작가 노트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하는 바람을 적은 작가님의 바람을 접하고 나니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읽어 볼 책의 목록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는 책들에는 어떤 이유가 분명 존재한다는 걸 알겠습니다. 지난 보름 동안 낯설고 흥미진진한 여행을 한 기분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이 벅차다면 이런 소설 한 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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