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아무 버스에나 올라 노선 종점까지 간다. 그런 날에 볼일은 없고 볼 일만 있고, 옮아갈 때마다 처음으로 대하는 그 어떤 장소, 그러나 왠지 이미 지나온 것만 같은 그 어떤 시간. 바로 그때 그곳에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향하는 길은 평평하다, 오르락 내리락하다, 너르다가, 좁다가. 그런 길을 어쩌다 같이 쓰게 된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 옆에서 나는, 내 눈에 입장하는 이 모두에게 소리 없이 이런 말을 들려준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러시아의 시인 안나 아흐마트바가 한말. 그러니까 너희를 지금 죽게 하지 않겠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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