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 정교하게 짜놓은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과거로의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 이름 ‘히라이스(HIRAETH)‘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뜻하는 웨일스어 입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과거로 떠나고 싶습니까?

2011년 크리스마스이브, 서울 A호텔 스위트룸 807호에선 여고 동창들끼리 모여 즐거운 파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름, 미림, 세정, 연영, 스물다섯 살의 그녀들은 가져온 졸업앨범을 보다가 자신들 이외에 낯선 인물 ‘황하주‘가 함께 찍힌 단체사진을 발견하곤 잊고 있었던 과거의 사실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주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 하는 친구에게 보름은 코웃음 치며 ˝알아서 살겠지. 설마 죽었겠냐?˝라고 하자, 미림이 ˝그때 죽었잖아. 크리스마스이브에...˝라고. 그제야 친구들은 작년 봄 이후로 연락도 안하고 지내던 보름과 미림이 언제 화해를 해서 이런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미림은 자신을 초대한다는 단톡방 채팅창까지 보여줬지만 친구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합니다.

미림은 어느 날 부터 시작 된 황하주 사건의 주범을 향한 누군가의 저주 때문에 자신이 아닌 보름이 주동자였음을 증명하고자 친구들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였으나 보름은 아예 황하주가 죽었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었음이 드러나자 화가 납니다. 급히 호텔방을 벗어나려던 미림의 가방에서 녹음 중이던 아이폰이 떨어지고 친구들이 미림의 의도를 눈치챌 무렵 호텔 직원이 침구 추가요청연락을 받았다며 찾아와 네 명이 보는 앞에서 세팅을 하고 나갑니다. 그리고, 연영이 갸웃거리며 중얼거립니다.
˝우리 중에 침구 교체해달란 사람 없었다고!!!˝(27쪽)

소설의 도입부는 드라마 ‘더 글로리‘의 장면들이 연상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등장하는 201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장, 1651년 윤춘옥과 박선, 1982년의 제비 다방,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1968년 강원도 홍천 설악면에 위치한 홍천보육원의 어린 남매 민동식과 민동녀, 요양보호사인 내가 돌보고 있는 별명이 이태백인 이개년 할머니의 과거로의 시간여행 동행까지 둘러보다 역사의 비극 사건들을 막기 위해 과거여행사를 찾는 블랙리스트 상의 고객들 일화까지 빠져들어 읽다보면 각기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일이라 여겼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도미노처럼 연결 되어 나비효과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과거에 저지른 범죄의 댓가를 미래 어느 시점엔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 만큼이나 의도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베픈 선행 역시도 미래 어느 날엔가 보답을 톡톡히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소설이었습니다.

고호 작가님의 소설을 처음 읽었습니다. 타임머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하는 과거로 갈 수 있다는 상상력에 놀라고, 하나의 사건을 각자가 바라보는 입장에서 서로 다른 서사를 만들어내는 솜씨에 감탄했습니다.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미래를 바꾸려는 사람들 속에 저도 있었기 때문에 더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 조언을 한다든지, 딸이 자신이 못태어나더라도 좋으니 과거를 반복해 되돌아가 엄마의 결혼을 막으려 한다는 상상력에 기꺼이 별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재밌고, 슬프고, 쓸쓸한데 또 흥미진진합니다. 강추합니다.

#과거여행사히라이스 #고호 #장편소설 #델피노 #한국소설
#미스터리소설 #시간여행_소설 #타임머신 #책추천 #책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