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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강 작가의 몽환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소설 [채식주의자]를 이제야 읽었습니다. [소년이 온다]와 함께 올해 5월에 읽겠다고 결심을 하고 두 권의 책을 함께 시작했는데 [채식주의자]를 먼저 비가 오는 석가탄신일에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이 책이 어느 시점의 우리나라를 그리고 있는 지 궁금했습니다. 아파트 값이 몇 개월 사이에 오천만 원이 오른 것에 놀라워하던 시절은 과연 언제쯤일까 하고.
표제작인 ‘채식주의자‘는 어느 날 꿈을 꾸고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아내 ‘영혜‘의 남편의 시각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영혜가 꾼 꿈에 대해서는 정말 상세히도 나옵니다.
‘어두운 숲이었어. 아무도 없었어. .......혼자 길을 잃었나봐. 무서웠어. 추웠어. ..... 헛간 같은 밝은 건물을 발견했어. ..... 수백개의,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기다란 대막대들에 매달려 있는 걸. 어떤 덩어리에선 아직도 마르지 않은 붉은 피가 떨어져내리고 있었어. .....(중략)....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생략)‘(19쪽)
이 평범하고 내조를 잘 하던 아내의 어느날의 변화에 남편은 처음엔 화를 내고 나중엔 처가 식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자신의 직장 상사가 큰 성과를 낸 그를 특별히 부부동반으로 식사 자리에 초대를 했을 때 나오는 코스 요리 대부분을 ‘채식주의자‘라는 이유로 거절하는 모습을 보며 그에게 아내는 더이상 이해할 수도 이해 하고 싶지도 않은 존재가 되어갑니다. 결국 장인, 장모와 처형, 손윗동서와 처남네 식구들이 모여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사단이 납니다. 가부장적인 장인이 둘째 딸에게 손찌검을 하고 고기를 입에 욱여넣으려 했고 영혜는 네살의 조카까지 있는 그곳에서 자신의 의지를 보입니다.
두번째 소설 ‘몽고반점‘은 영혜의 언니 ‘인혜‘의 남편이 화자로 등장합니다. 예의 그 사건이 있고 1년이 지났습니다. 어른이 되면 대부분 사라지는 ‘몽고반점‘을 여전히 가지고 살아가는 처제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어떤 스위치가 켜진 그가 고기 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날이 말라가는 아내의 여동생을 통해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작품의 실마리를 발견하면서 표출되는 광기 같은 어떤 것이 세번째 소설 ‘나무 불꽃‘으로 이어집니다. 소설의 화자는 또 바뀌어 완전한 채식주의자에서 신경성 거식증으로 한단계 더 상승한 영혜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 언니 ‘인혜‘ 입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폭행을 당하고, 결국 남편과 이혼을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연명치료와 같은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는 ‘영혜‘에게 가해지는 비난과 사회적 폭력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시절엔 당연시 되었을지라도. 그러다 우리가 즐겨 먹는 모든 고기들이 살해 된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수렵으로 생명력을 이어온 종족이라고 해도 그것이 육식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은 비건을 선택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영혜는 그저 침대의 길이에 딱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작위로 늘려지거나 손발이 잘린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억지로라도 생명유지 장치를 부착해 고통스럽게 살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도움일까, 고민이 계속 되었습니다. 타인을, 나 이외의 다른 생명체를 헤치지 않기 위해 모난 모든 것들을 삼키는 영혜는 작가님을 꼭닮아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를 지금 읽었기에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과의 인연도 운명인 것처럼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으로 이 책의 제목만 알던 이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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