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끝에 사람이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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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바늘 끝에 서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 서서 오랜 시간을 버티고 견뎌야만 했던 이유는 있습니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약 7만 2천 킬로미터 떨어진 궤도 엘리베이터의 카운터웨이트 끝에 홀로 217일째 생존해 있는 김 주임, 나에게도 이유는 있습니다. 100년 전에 살던 사람들은 공상과학 소설 또는 영화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겼던 지구의 원심력과 구심력이 평행을 이루는 고도 3만 6천 킬로미터 상공에 궤도 엘리베이터 터미널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부터 지상까지 엘리베이터가 연결 되어 화물 운송이 가능해지자 85단으로 이뤄진 카운터웨이트의 건설도 가능해졌습니다. 이 모든 과정의 책임자였던 나는 왜 전기도 통신도 끊긴 이 바늘 끝 같은 곳에서 울분을 토해내야 하는지 제발 누구든 알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100년 후의 세상에도 첨탑 위에 스스로의 몸을 묶고 시위를 하는 이가 있습니다. 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직원에게 회사는 무상으로 기계팔을 부착시켜 주겠다고 하며,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강제로 멀쩡한 나머지 팔까지 기계팔로 교체했습니다. 망가진 폐와 심장부터 몸의 대부분을 기계장치로 바꿔주며 그들은 이 거대한 카운터웨이트를 지은 사람이 ‘나‘라는 것에 자긍심을 심어주더니 완성 된 카운터웨이터의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곤 쓸모를 다한 이들을 향해 회사는 해고 통지와 함께 그동안 회사가 제공한 모든 것은 남겨두고 떠나라고 합니다. 즉, 나의 몸의 75퍼센트에 해당하는 기계장치들은 회사의 물건이니 놓고 떠나라는 것 입니다.

책 [바늘 끝에 사람이]를 읽기 이전까지, 저는 타인이었고, 구경꾼이었으며, 그저 바늘 끝에 선 그들이 왜 그런 위태로운 선택을 해야했을까하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나는, 우리는 그들과 달리 언제까지나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을거란 커다란 착각에 빠졌었기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조심해도 언제든 사고를 만날 수 있음을, 부당하게 기계취급을 당하거나, 사람이라면 마땅히 받아야 할 인격적인 존중을 몰수당하고 분리수거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존재가 바로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순간, 머리를 강타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책에 실린 7편의 소설들은 미지의 미래를 끌어오기도 하고, 1940년대, 50년대, 80년대와 90년대에 이르는 우리 사회의 커다란 사건들을 전혜진 작가님의 색깔로 그려져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 광주 5.18민주화 운동, 첨탑에서의 농성과 군대 내에서 발생한 여성 장교 또는 사병에 대한 성적인 차별과 폭력 등에 대해 고전 설화를 빌어, 때론 잔인한 호러 미스터리의 형식으로 복수의 칼날을 세워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거대한 국가폭력 앞에 온몸을 꿰뚫리는 고통에도 그들은 꼿꼿하게 서 있습니다. 자신이 무너지면 다음 사람이 그 고통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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