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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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단편 ‘두부‘를 읽고 급히 ‘작가의 말‘을 찾아 갑니다. 조금이라도 힌트가 있을까, 두부는 진짜 두부일까 의문을 품고 찾아간 곳에서 발견한 작가의 고뇌는 이런 대답을 합니다.

여기에 묶인 소설들은 모두 산책을 좋아하고 풀기 어려운 생각에 빠져 있다. 답은 없고 해답은 더 없는 오늘과 내일을 해결도 해소도 못하고 살고 있다. -작가의 말 중 (267쪽)

그럼 다시, 묶인 소설들 속으로 달려가 답이 없다니 질문이 무엇인지라도 찾기 위해 다음 단편 ‘사라지는 것들‘로 다가 갑니다. 아니, 처음으로, 우린 아직 ‘두부‘도 해결 못했으니 돌아가야 합니다.

바다가 보이는 철도 건널목에 서있는 남자와 개, 그리고 그 개는 엄마와 산책 나갔다가 사라진 두부를 닮았습니다. 엄마가 죽고 두부가 사라졌는지, 두부가 사라져서 엄마가 죽었는지 모르지만 두부로 보이는 개는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습니다. 곁에 서있던 남자가 부르는 ‘승희‘라는 이름에는 반응을 보이는데. 뜨거운 여름 오후에 사라졌던 두부는 전혀 다른 계절에 돌아왔지만 동생은 두부가 아니라는 말만 합니다.

두번째 단편 ‘사라지는 것들‘에서 엄마는 어느날 그만 살기로 했다고 선언을 합니다. 양화대교 위 선유도공원 버스 정류장에 서서 큰 아들에게 강화도에 가고 싶다고 전화를 하는 엄마를 만나러 갑니다. 속마음은 툴툴거려도, 물이 빠져 바다 구경을 못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꽃게탕이 아닌 엄마가 좋아하는 걸 시키라고 말하면서도, 동생이 있는 교토에 연락도 없이 갔다가 새벽 출근하는 둘째 아들의 좁은 방에 잠시 머물다 왔냐는 질문을 하면서도 시원한 답은 듣지 못하고 이혼한 아내가 연애할 때 좋아했던 노래의 가사 ‘두려워하는 건 반드시 찾아와‘가 맴돌 뿐입니다. 여기저기 자식을 잃은 상실의 아픔과 슬픔이 짙게 배어 있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알기에 그저 외면하고 살았을 뿐인데 툭 던지듯 아무렇지 않게 산책하듯 이세상에 왔다가노라 말하는 엄마가 있습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선릉 산책‘은 2016년 황순원문학상 대상 수상작품으로 헤드기어를 끼고 가끔 습관적으로 침을 뱉고 괴성을 지르는 스무살 청년 한두운을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나의 이야기 입니다. 선릉과 정릉이 있는 공원을 백팩 가득 책과 아령을 짊어지고 산책을 하는 한두운과 그 모습에서 이 사람에게도 ‘자아‘가 있을까 의구심을 갖는 내가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겉모습은 오히려 정상이라 이해 받지 못하는 장애인, 실제 짐을 어깨에 메고 남에게 떠맡겨지는 이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청년이 걷는 한적한 선정릉 산책길은 결국 상처뿐인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나머지 단편들 역시 늪에 이미 들여놓은 발처럼 시간을, 일상을 잠식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 중 하나이기도 한 ‘미스터 심플‘ 역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이 언급 되며 그로 인해 피폐해진 개인의 이야기, 그럼에도 스스로 회복하여 자생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깊은 겨울 밤 진득하게 읽어 볼 책으로 추천합니다. 너무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여유로움을 장착하고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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