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책 연습
박솔뫼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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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의 광주와 1982년 3월의 부산은 시간적으로도 장소적으로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이 신군부의 군대를 동원한 무력 탄합을 용인하였다는 정황이 드러나며 1982년 3월 18일 고신대 학생들이 부산 백화점에선 미국에 책임을 묻는 유인물을 뿌리고 미문화원에 방화를 하여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의 뜻을 널리 알리려 한 사건은 서로 연결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없을 것으로 예상한 밤 늦은 시간의 방화였으나 불행히도 미문화원 안에서 책을 보던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상황은 반전됩니다.

박솔뫼 작가의 [미래 산책 연습]은 부산 미문화원에 직접 방화를 한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여성 네 명 중 한 명인 윤미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수미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미래까지 모두 같은 프레임 안에 넣고 이야기는 진행 됩니다.

수미의 가족은 울산에 살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수미의 엄마는 수미와 수미의 동생을 데리고 부산의 친정으로 들어와 사는 중이고 윤미는 수미의 외가 친척의 딸로 수미의 외할머니가 어려서부터 데려다 키우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의 수미, 같은 반 친구인 정승, 윤미 언니와의 관계를 아는 학교 선생님들의 감시에 가까운 시선과 외가 식구들의 싫은 내색을 모두 관찰하고 직접 느끼고 그럼에도 윤미 언니를 믿고 지지하는 속마음이 시간을 반복해서 말하고 쌓이고 흩어집니다.

1929년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동양척식 주식회사 부산 지점이었던 곳이 1949년부터는 미국 해외 공보처로, 전쟁 중에는 미대사관 역활을 하고 그 이후로 1996년 철수 될 때까지 미문화원으로 존재하던 그곳은 이제 근대역사관이 되어 있습니다. 수미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과거에 예상했던 미래를 살고 있습니다. 옛미문화원이자 지금은 근대역사관이 보이는 부산의 호텔에서 문득 집을 갖고 싶어집니다. 호텔에서 보이는 목욕탕에서 만난 최명환, 수미의 집주인이자 여상을 졸업한 후 미문화원 근처 무역회사에 경리로 들어가 방화사건이 터지는 날의 그 시간에 타는 냄새까지 기억하는 그를 알게 되고 부산의 집에는 읽고 있는 중인 책 [티보가의 사람들]이 늘 그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수미가 회사를 그만 둔 해에 정승은 이혼을 하고 수미는 일본으로 늦은 유학을 떠납니다. 부산 타워와 도쿄 타워는 서로 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상징성을 띠고, 부산의 대학생 조윤미와 광주의 고등학생 조윤미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수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한 없이 이어지는데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를 긴 호흡의 글들은 처음엔 막연했고 나중엔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수미의 이야기인가 싶으면 수미를 둘러싼 시간의 이야기이고 수미는 어렸던 시대의 이야기 입니다. 아픈 역사와 더 고통 받았던 젊은이들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 이며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폭력의 흔적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부산을 여행하고, 그곳에 집을 얻어 살지만 이사는 안 한 수미의 산책길에 만나는 먹거리들, 사람들, 자연들, 그리고 자신의 유년시절의 흔적들, 잊혀진 기억들이 쉼표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 [미래 산책 연습]은 어쩌면 그날의 아픔을, 그이후의 고통을 잊지 말라는 경고처럼 다가옵니다. 오늘 새벽에 이책을 다 읽었을 때와 또다른 경계선을 넘어버린 지금이라 꼭 한번은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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