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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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하는 일인칭 단수의 세계를 펼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소설 [일인칭 단수]에는 여덟 개의 나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어딘가 하루키를 닮은 주인공이 있는 소설들 입니다.

열아홉 살에 대학교 2학년인 내가 만난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언하며 시작 되는 ‘돌베개에‘에는 단카를 짓는 스무 살 중반의 여자와의 일화를 떠올리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정신질환 이랑 비슷해.˝(15쪽)라고 말하는 그녀, 어느날 집으로 날아 온 ‘28번‘ 가집에서 기억에 남는건
‘벤다 / 베인다 / 돌베개
목덜리 갖다대니 / 보아라, 먼지가 되었다‘ (25쪽)
정도뿐, 다른 말과 생각은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두번째 단편 ‘크림‘ 역시 한 여자애에게서 피아노 연주회 초대장를 받고 공연장으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 산꼭대기 콘서트홀에 도착했지만 10월의 일요일 오후의 쌀쌀함 만큼이나 굳게 닫혀 있는 철문 뿐 입니다. 초대장에 적힌 날짜와 시간을 재차 확인해도 맞는데...속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길 때쯤 벤치에서 만난 노인은 ˝중심이 여러 개 있는 원˝ 이야기를 꺼냅니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접고 생각을 거듭해 보지만...역시나 어렵다는 생각만 들 뿐입니다.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크림이 된다는 노인의 말을 곱씹는 나의 이야기가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도 똑같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크림 중의 크림은 무엇인가 하고.

세번째 단편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는 불가능한 두 세계의 융합, 믹스를 만들어 냅니다. 뉴욕의 중고 레코드가게에서 발견한 레코드의 타이틀이 바로 단편소설의 제목과 같다면, 레코드는 누군가 개인적으로 만든 해적판처럼 보였고 학창 시절 내가 상상으로 만든 곡명과 참가자가 그대로 있는 레코드를 발견한다면 누구라도 신기해 하겠지만 절대 살 생각은 못하는 그런 레코드를 발견한 나의 이야기 입니다. 믿을 수 없지만 실제로 겪은 일이라고 하는 소설을 읽고 있다보면 여기가 소설 속인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변형 된 기억 속인지 궁금해 집니다.

‘위드 더 비틀즈‘와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에 이어 ‘사육제‘는 비슷한 환상속 나의 이야기가 주류라면 가장 특이한 단편은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입니다. 사람 곁에서 시중을 들고 말을 하는 온천 여관에서 일하는 원숭이는 좋아하는 여자의 이름을 훔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이름의 한 조각을 잃어버린 상대방은 아주 가끔 자기 이름이 낯설거나 생각이 안 날 수 있다는데 또 그걸 범죄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을 고백 받은 나는 다음날 원숭이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시간이 오 년이 흐른 뒤 자기 이름이 생각 나지 않아 오히려 내게 ˝이상한 질문인데, 제 이름이 뭐였죠?˝(209쪽) 질문을 받고 나서야 이름을 훔친다는 원숭이가 한 짓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작가의 세상을 훔쳐보는 독자가 되어 상상 만으로도 즐거운 대혼란의 세상을 만납니다. 원숭이가 이름을 훔치는 세상을 만나기도 하고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뮤지션이 보사노바를 추는 세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상은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바다와 같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만이 가진 자산입니다. 그 기억에 생긴 오류 역시도, 간섭 역시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없던 세상도 만들 수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엉뚱한 모험 같은 세상을 [일인칭 단수]에서 만났습니다. 사소한데 또 중요한 느낌이 가득한 [일인칭 단수]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춤을 추는데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치 않듯 책속 세상으로의 여행에도 허락은 필요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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