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트넛 스트리트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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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들어 묵혀두고 있던 메이브 빈치의 [체스트넛 스트리트] 읽기를 함께 하자는 얘기가 나와 책속에 실린 서른일곱 편의 단편들을 매일 하나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보름쯤 하루 한 편씩 읽다 다른 단편들이 도저히 궁금해 못참고 끝까지 읽습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가상의 거리 ‘체스트넛 스트리트‘는 서른 채의 집들이 말발급 모양으로 둘러져 있고 중앙에는 광장이 있어 축제와 행사들이 늘 열리고 있습니다. 메이브 빈치의 마지막 장편소설 [그 겨울의 일주일]을 읽으며 느꼈던 일상의 단조로움 속의 각 개인의 인생이 또다른이의 인생과 어떻게 연결 되는가 하는 서사 구조를 [체스트넛 스트리트]의 단편들 속에서도 발견을 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이 거리의 모든 이들은 때론 주인공으로 때론 이웃으로 때론 이야기 속의 영웅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이야기의 시간 폭이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큰 스팩틀럼을 가진 상태로,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과 성인이 되고 노년의 삶을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간혹 당황하기도 합니다. 읽고 있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단편속 누군가가 ‘배우인 로널드 레이건이 정말 대통령이 될까?‘라는 말을 했을 때 시간의 간극을 비로소 느끼게 되어 지금(2021년) 세상을 기준으로 등장인물에 대해 평가하던 자신을 발견하고는 홀로 웃습니다.

메이브 빈치 사후 서른여섯 편의 단편들을 모아 [체스트넛 스트리트]라는 제목으로 묶어 집필 원작소설에 ‘태라의 목마‘를 추가하여 서른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으로 우리나라에서 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하나 정말 읽고 슬퍼하기도 하고 화 낼 때도 있고, 뭔지 모를 쑥스러움에 고개 돌릴 때도 있었고, 앞으로의 행복을 빌 때도 있었는데 가끔은 진심으로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은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만일 단편 하나만을 추천해야 한다면 ‘일 년에 하룻밤‘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전작인 [비와 별이 내리는 밤], [그 겨울의 일주일]과 비슷한 구조의 소설로 1997년 마지막 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체스트넛 스트리트의 평범한 피시앤드칩스 가게인 잔니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합니다. 남편이 지난 여름휴가 동안 자신이 가르치는 5학년 여학생과 도망간 시시, 새해를 제프와 함께 보내기로 약속했으나 결혼을 바라는 가족들을 만나러 고향으로 돌아가 혼자가 되어버린 마틴, 채소가게를 여동생과 같이 운영하는 조시는 영악한 여동생이 애인의 부인이 아이들과 스키여행을 간 틈을 이용해 집에서 거한 연말 파티를 열겠다며 언니에게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합니다. 더블린으로 출장을 온 루이스 역시 레지던트 호텔의 딱딱한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다 평범해 보이는 가게로 들어옵니다. 아픈 아버지를 돌보며 연말 늦은 시간에도 가게를 연 잔니는 뜻밖의 손님이 네 명이나 온 것에 당황하면서도 그들에게 포장 대기하는 이들을 위한 작은 테이블에 모여 새해까지 2시간이 남은 지금 함께 하는 것이 어떤가 묻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충고도 해주다보니 헤어짐이 아쉬워 시시의 집으로 가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그리고 다음해 연말에도 서로의 연락처를 알아 모이자고 한 것이 아님에도 잔니의 친구들이 되어 하나둘 잔니스로 모여들고 이들은 편하게 입고 잘 옷들과 쇼파에서 잘 때 덮을 담요를 챙겨 왔습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지나 여전히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고 연애도 하고 시시는 교감선생님이 되었지만 일년의 하룻 밤은 마음 맞는 친구끼리의 우정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 체스트넛 스트리트로 옵니다.

소설 속에는 행복한 결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른 생활만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지도 않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음에도 애인과 더 다정히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있고, 동물들을 학대하거나 가족을 학대하는 사람들도 체스트넛 스트리트에 존재합니다.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인 사람도 있고 남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어려운 이웃들도 등장합니다. 모두들 개과천선해서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서른일곱 편의 단편들을 읽고 나면 왜 서른일곱 개의 선물을 받은 것 같은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인생이라고, 어둡고 힘든 삶은 어디에나 언제나 있었다고, 그 끝이 늘 희망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입니다.

더운 여름날, 창 밖을 바라보는 고양이가 있는 메이브 빈치의 서른일곱 개의 선물 [체스트넛 스트리트]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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