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사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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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모든 집들이 허름하고 비틀리고 시끄럽다면 아마도 이렇게 동떨어진 별천지 취급을 당하진 않겠지요. 더이상 시 외곽이 아닌 개발 붐의 광풍이 휩쓸고 간 마을에 유일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 공장과 집, 그리고 재하 오빠의 목공방만 남아 사람들의 날것 같은 시선과 비난과 멸시를 애써 무시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역앞 광장에 나타난 ‘우산씨‘의 푸른 우산은 접히는 날이 없습니다. 해가 쨍쨍한 날에도 우산을 쓰고 또 하나의 우산은 얌전히 다른 손에 걸려 있습니다. 때론 새벽에 우산을 짚고 광장으로 등장하는 ‘우산씨‘, 작년 여름 태풍에 무너진 담에 붙어 있는 아버지의 경고문과 십삼 년 전 여름방학식 날 도시락만을 남겨 놓고 집을 떠난 어머니, 죽음을 노래하는 여동생 영주, 자신의 목공방 마저 떠나면 홀로 남을 해주를 위해 곁에 버티고 있다 말해주는 재하 오빠까지 사람이 곁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목장갑을 만드는 공장의 편직기가 24시간 돌아가는 소음을 품은 실 먼지의 사막을 마음에 품은 해주에게 다시 어느날 우산씨는 말합니다.

˝해주씨, 숨이, 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4쪽)

소음과 실 먼지는 민원으로 구청에 접수 되고 외딴섬과 같은 공장 겸 집과 목공방은 사람들에게 눈의 가시처럼 여겨집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사라진 엄마의 그림자를 봤다는 소식이 오면 낡은 차를 끌고 찾으러 가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그제와 어제의 밀린 피로는 오늘을 지친 상태로 맞이했고, 오늘의 피로는 내일과 모레를 마중나가는 피로의 중첩 된 나날들에 해주의 마음 속 사막은 그 범위를 넓혀만 갑니다. 그 때 아르마니 정장에 고급 구두와 멋진 가방을 들고 펼친 우산을 절대 접을 수 없다 답하는 ‘우산씨‘는 편직기의 소음을 잠재워 줄 비를 기다리듯 광장에 나타나 다른이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서 있거나 앉아있거나 책을 읽습니다. 잘게 부순 과자를 비둘기들에게 나눠주고 정갈한 도시락과 해주의 집밥 도시락을 바꿔 먹으며 여전히 우산은 펼쳐들고 있습니다. 전자 담배를 피우던 영주는 ‘우산씨‘가 가난하고 고단한 우리에게만 보이는 유령은 아닌지 의심을 합니다. 자신이 만든 음악 속에 죽음이 살아있 듯이. 하지만 역 광장을 지나는 이들이 ‘우산씨‘를 기이하다는 듯 쳐다보는 것을 보니 우리 눈에만 보이는 것은 아님을 알지만 그의 정체는 늘 미스테리로 남습니다.

외로운 등대처럼 키큰 ‘우산씨‘가 펼친 우산이 더이상 이상하지 않도록 비가 내리길 바랬으나 집이 물에 잠길 만큼의 태풍을 기다린 것은 아닙니다. 도로가 만들어질 위치에 버티고 있던 공장과 목공방이 물에 잠기고 습한 그 기운에 쓰러졌던 담의 건너편 담도 쓰러져 다시 세워지기는 요원한 상태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사랑이 스며들었습니다.

불행은 외로운 걸 싫어해서 혼자 오지 않습니다. 집 나간 엄마를 이해해보려 막나갔다는 영주에게 음악의 영감을 주던 동물원의 코끼리가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 곁으로 돌아온 엄마, 그리고 마침내 답을 찾은 듯 접혀진 우산씨의 우산으로 두근거리는 사랑이 다가옵니다.

장은진 작가님의 ‘감성 연애소설‘이라는 타이틀에 혹해서 발을 담갔더니 급류에 휩쓸려

˝우리는 행복해질까요?˝
˝행복해질, 겁니다.˝
˝언제요?˝
˝내일.˝ (227쪽)

이라는 답에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순간순간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그저 나아갈 뿐입니다. 소설 [고도를 기다리며] 속 대화처럼, 동화 [어린 왕자] 속 여우와 장미처럼 여운으로 남아 비가 오는 계절에 피어오를 것 같습니다. 사막을
품은 해주의 가슴이 두근거릴 때 이책을 읽는 독자인 저도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렸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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