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함께 걷기 - 인디언 어른들이 들려주는 지혜의 목소리
조셉 M. 마셜 지음, 김소향 옮김 / 문학의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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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가장 큰 오만은 과거의 지혜를 망각하는 것이다.

p.11

 

할아버지는 진정으로 겸허한 사람은 좀처럼 발부리가 걸려 넘어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런 사람은 고개를 어머니 대지를 향하도록 해서 걷기 때문에 길을 똑바로 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교만한 사람은 영광의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고개를 높이 쳐들며 걷는다. 앞길에 무엇이 놓였는지보다 그 순간에만 관심을 더 쏟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고꾸라지기 십상이다.

p.33

 

나의 모습과 내 존재는 언제나 진행 중인 작업이다. 삶은 우리를 날마다 끊임없이 새롭게 만든다.

p.37

 

나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를 근본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모습만을 보게 될 것이다.

p.41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은 오만이다. 오만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실재하는 여러 다른 측면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p.53

 

네가 때때로 삶을 지키지 않으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어진단다.

p.75

 

그대의 목숨을 앗아 가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그대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p.114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고,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 네가 그 결과에 기꺼이 맞서겠다면 말이다.

p.164

 

 

조셉 M. 마셜 3세, <할아버지와 함께 걷기> 中

 


+) 조셉 M 마셜 3세의 글은 정말 마음 깊이 다가온다. 희망을 어떻게 꿈꾸는지 알려주며, 긍정적인 생각의 발단이 무엇인지 전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힘, 그것에서 희망은 시작된다. 그의 말대로 둥근 원처럼 모든 것을 생각한다면 평등한 삶의 기본 원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인디언 잠언이 마치 명상록처럼 머리를 정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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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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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 해도 결단코 바뀌지 않는 것을 진실이라고 부를까? 알 수 없었다. 세상은 진실의 외피를 둘러쓴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아이가 짐작하는 건 겨우 그것뿐이었다. 타인을 겨냥한 악의는 어쩌면 입구를 단단히 동여맨 풍선 같았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쪼그라들지 않았다. 뻥 터져버리는 순간을 기다리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p.163

 

돌아보면 지금껏 비겁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덧없는 틀 안에다 인생을 통째로 헌납하지 않을 권리, 익명의 자유를 비밀스레 뽐낼 권리가 제 손에 있는 줄만 알았다. 삶은 고요했다. 그 고요한 내벽에는 몇 개의 구멍들만이 착각처럼 남았다.

p.199

 

 

정이현, <너는 모른다> 中

 

 

+)   추리소설 같다고 할까?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바탕에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깔려있다. 고전적으로 말하는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개념이다. 그러나 현대가 핵가족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혈연 관계가 다르거나 부모 중 일부만 같다거나 했을 때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한다. 이 소설에서 가족이라고 보기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은 흔적이 많은 사람들이 가정이라는 한 둘레 안에 살고 있다. 그들이 가족 중 한 사람을 잃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소설이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그것은 좀 더 확실해지는데, 기존의 자신만이 타인과 같다고 생각하며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거부하던 이들도 가족이 실종되었을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정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그들끼리 뭉치게 된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바탕에는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품 길이에 비해 결말이 좀 식상하지만, 글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잘 쓰여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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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워리 마미
신중선 지음 / 청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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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이 바로 엄마 불행의 핵심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적응해서 살아가는데 왜 내 엄마만 유별난지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내 엄마는 서글프고 시시때때로 불행하다. 엄마가 빨리 현실을 깨달아서,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거기서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찾길 바란다.
 그나마 금이 간 연립조차 구할 돈이 없어 단칸방에서 사글세를 사는 사람도 지천에 널려 있음을, 또한 비바람을 피할 집마저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엄마가 하루 빨리 자각해 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당치도 않은 꿈은 하루 빨리 버리고(내 유학도 포함하여) 비디오대여점 아줌마로서의 역할에서 보람을 찾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p.75

 

모든 일의 발생에는 반드시 조짐이란 게 있다. 다만 그 초기증상을 간과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정작 일이 벌어지고 나면, 어,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기지? 하는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서 급작스런 불행을 던져주는 질병이란 없다. 멀쩡하게 먹고 있던 인절미가 기도를 막아 급살을 한다든지 길가다 불한당 만나듯 자동차에 받히는 경우 혹은 생면부지의 미친놈에게 칼침을 맞는 재수 옴 붙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신체에서 이상을 일으켜 나타나는 질병인 경우 반드시 사전 예고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 몸은 적어도 그 정도의 예의는 갖추고 있다.

p.79

 

"우리 결혼할까?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 하재, 결혼 까짓 꺼 하자더라. 그래서 물었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하려고 하느냐고."

"그랬더니?"

"대답이 예술이었어. 한 여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싶대. 거짓으로라도 내가 좋다는 마은 끝내 하지 않더라. 나도 여잔데, 좀 야속하더라."

p.272

 

 

신중선, <돈워리 마미> 中

 

 

+) <돈워리 마미>의 화자는 엄마의 딸이다. 그러니까 딸의 시선으로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유지한다. '나'의 엄마는 수많은 딸 중에서 가장 촉명하다가고 착각한(?) 할아버지 덕분에 중학교를 세 번이나 재수하고, 몇 개월의 짧은 유학을 경험했는데도 대학을 못간 여자다. 결국 젊은 시절 엑스트라로 살다가 결혼식에 들어선 신랑이 하루만에 부조금을 들고 나르면서 혼자 살기 시작한 여자다.

 

언제부터였을까. 부모의 기대로 인생을 망쳤다고 믿는 엄마가 자신의 딸에게 기대를 하기 시작한 것은. 쉰을 넘긴 나이에도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엄마는 능력이 안되는데도 딸을 유학 보낸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듯, 그녀의 딸을 통해 자신의 꿈을 대리만족 하려고 한다. 허영심이 대대로 내려온다고 해야 할까.

 

엄마와 같이 살고 있는 남자 김동민씨는 백수다. 엄마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날 위인도 못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남자는 사랑하는 첫사랑을 만나 엄마 곁을 떠난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남자.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던 남자랑 같이 살다가 결국 그와도 헤어지게 된다.

 

이 소설 속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왜 타인에게 의지하려 들까.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본인의 삶임에도 자신과 관계된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엄마의 모습이 답답했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말이 있다. 나를 중심으로 주변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이 할 일을 정해야 한다. 자신의 꿈을 딸에게 투영시키는 것도 안되고, 자신의 사랑을 남자에게 요구하는 것도 안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있어야 후회가 없는 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안타깝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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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야 (양장)
전아리 지음, 안태영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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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면 확실하게 하든가!"

누구에게나 언어적인 급소가 있다. 나는 인상을 쓰고 대거리를 하려다가도 '확실'이라는 한 마디를 듣고 나면 비 맞은 개처럼 기가 죽곤 했다. 확실, 이라는 단어는 내게 계기판이 고장 난 연료통이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기준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확실한 삶'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

p.29

 

"기왕 하려면 주인공이 낫지 않나?"

"사람들이 기대가 높아지면 정작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잊게 될 때가 있잖아. 잃는 것도 많고."

p.148

 

나는 그때 커피 자국으로 얼룩진 티스푼을 내려다보며 다짐했다. 결혼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평가받아야 한다면 차라리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일생을 솔로로 보내겠노라고.

p.200

 

나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을 끝내지는 않았다. 그에게 더는 마음을 줄 자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끝이었다. 그 예감은 요란스럽거나 격하지 않으며 홀로 잠에서 깬 새벽녘의 푸른 어둠처럼 그저 서늘하게 다가왔다.

p.223

 

 

전아리, <팬이야> 中

 

 

+) 기존 전아리의 작품에 비해 구성 부분에서 살짝 끊김이 느껴지는 것이 좀 안타까웠지만, 여전히 전아리라는 소설가는 실력있는 작가란 생각에는 변함없다. <팬이야>는 계약직 여성의 연애와 정신적인 성숙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하루하루를 큰 책임감없이 짤리지 않을 만큼만 일하며 지내던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고, 연예인을 좋아하던 막연한 사랑에서 자신이 주는 만큼의 사랑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되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이야기이다.

 

혼기가 꽉 찬 여자들의 고민, 계약직으로 회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고민들을 하나로 모아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전개하는 소설이다. 깔끔한 전아리의 문체로 단정적인 종결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일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연애에 대해 고민하다보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은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되고 그렇게 스스로를 보면서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점을 잘 정리하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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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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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 우리는 무엇엔가에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 테지. 지금 여러분은 당장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나 뗏목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 실어나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p.62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만 떠오른다. 진실과 선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올바름과 정의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폭력적이거나 부패한 사회는 상호간의 소통을 막는다.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

p.183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가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 만큼 밖에는 담지 못하지.

p.241

 

내가 윤이랑 명서 학생보다는 이 세상을 조금 더 살았으니까.....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된다면,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생각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라고 생각해요.

p.286

 

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p.341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다른 모양으로 변화할 것을 예고하는 일이고,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희망이라고 했던 윤교수.

p.347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中

 

 

+) 이 소설은 비극적인 시대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통해 사랑과 젊음의 의미를 탐색한다. 본인들이 선택한 시대 현실이 아니나 그 한 가운데 존재하는 그들의 정신적인 방황기라고 해도 좋다. 어찌보면 그들의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청춘소설이나 연애소설 같기도 하다. 인물들 각자가 간직한 가슴 깊은 상처에 대한 기억이 그들을 엮고 있는데,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에게 조차 상처를 남길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면모가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자유와 열정을 꿈꾼 청춘들의 방황 속에서 친구를 잃고 언니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읽기도 하는 사람들. 그들의 쓸쓸한 모습은 내일에 대한 희망 보다 '오늘을 열심히 살자'는 것에 더 잘 드러난다. 신경숙 작가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안개 같이 뿌연 시대상황의 배경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른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윤 교수의 대사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당연한 것인데, 왜 얼른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영혼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임을 모르고.. 그렇다고 이 소설이 잃어버린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잃어버린 상처를 간직한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지, 어떻게 내일을 생각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처럼 성의있는 소설을 읽었다. 나는 이렇게 소설의 대가라도 한 편의 소설을 쓸 때마다 성의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작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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