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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ㅣ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평점 :
“갖고 가거라.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에게 이르듯이 말하며 사치에에게 두 손으로 오니기리 꾸러미를 내밀었다.
“예. 다녀오겠습니다.”
P. 35
평소 일본영화를 좋아한다. 그다지 클라이맥스도 없고 잔잔한 내용들이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실패했던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카모메 식당>이다. 영화를 초반부만 여러 번을 봤기에 내용은 핀란드에 있는 카모메 식당에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오타쿠 청년 토미가 찾아오고 그리고 지도에 아무 데나 손을 짚어 계획 없이 여행 온 미도리가 찾아왔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영화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내용은 확실히 알아두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용은 정말 별게 없었다. 맨 뒤 번역자가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 이 세 여성이 무슨 사연으로 핀란드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고 그 궁금증이 풀렸다라고 하는걸 보니 영화에서는 이들의 속사정이 나오질 않나보다. 이런 속사정을 빼면 영화에서처럼 세 여성이 이 가게에 모이게 되고 핀란드 사람들이 어린이 식당이라며 경계하던 카모메 식당에 점차 손님으로 가게 되며 그렇게 지낸다가 책의 내용 전부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치에는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라는 좌우명을 가지신 무도가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된다. 어머니를 대신해 요리를 하다 보니 그것에 취미를 붙이게 되고 나이가 들어 식품회사에 취직도 했다. 하지만 조미료에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방식에 실망을 하고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한다. 좋아하는 음식도 가정식 요리인 소박한 음식들이고 그런 음식에 맛도 있고 이웃사람들이 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가게를 꿈꾸었지만 일본엔 그런 곳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외국에서 그런 식당을 차리자고 결심을 하고 핀란드로 떠났다.
손가락으로 아무 데나 짚어 여행 온 미도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원하는 데로 살아왔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한 울타리에 있는 사립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 부모님이 원하시는 곳에 취직했다. 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월급은 정말 잘 나오는 곳이었고 시간이 흘러 회사를 떠나야만 했을 때 나이는 먹었지만 할 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부모님은 몸이 안 좋아져서 요양원에 가게 되었고 형제들은 아무도 미도리와 함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미도리는 분노의 찍기로 핀란드에 온 것이었다. 50대의 마사코는 지금까지 부모님 병간호를 하며 지냈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남동생이 부모님의 재산을 모두 저당 잡아 사업을 하고 마사코가 부모님과 살던 조그만 집조차 빼앗자 TV에서 보던 핀란드를 생각하고 핀란드로 여행을 왔다.
세 여자는 제각기 생각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핀란드로 왔다. 알고 있는 건 시벨리우스나 무민밖에 없었고 말이다. 이곳도 제각기 고민과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본과 별 차이 없는 곳이지만 그래도 두 여자는 핀란드에 와서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사치에는 늘 평안한 상태이다.) 아무래도 가장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가족도 없는 곳이고 먼저 자리 잡은 사치에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일본에선 할 줄 아는 것도 없어 마트에서 일할까 하지만 그 일조차 편하지는 않다는 사실에 그것마저 도전하기에 겁이 났었는데 이제는 핀란드에 자리 잡는 것에 겁을 내지 않았다.
가끔은 모두에게 이런 카모메 식당이 필요하다. 맛있는 음식에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나의 이야기로 나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그런 곳 말이다. 아니면 적어도 내가 내 주위사람들에게 카모메 식당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뭔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어주는 카모메 식당. 이 책을 읽고 나면 뭔가 고민해야 할 일도 없고 그냥 마음이 편안해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뭔가 마음이 소란스럽고 복잡한 날, 한 번씩 읽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