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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사라지던 날
유르겐 도미안 지음, 홍성광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만을 보고 '태양은 왜 사라졌을까?' '태양은 다시 돌아올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갖고 이 책을 읽게 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류의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읽는 것이 실망감이 적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다른 분 서평을 통해 이 책의 내용을 조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독일 저자라는 점에서 조금 예상한 부분이 있었지요.
제 선입견인지 모르겠는데 유럽 쪽 소설들은 대게가 철학적인 사유와 연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내의 소설 시장에서 그렇지 않은 - 쉽게 읽을 수
있는 - 일본 소설의 시장이 커진 것은 아닐까.. 란 생각도 하게되네요.
그렇지만 이 책 자체는 어렵거나 무거운 사고를 필요로해야하는 문체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역자의 이야기처럼 유럽쪽 고전들을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일부분들이 어떤 책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것과 연관시켜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내용 안에서 책 이야기도 종종 나옵니다.
40살의 프리랜서 사진작가 로렌츠.
3년 전에 너무 사랑했던 마리를 잃고 무감각하게 살아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상 기온 현상이 생기더니 빛이 없어지고 사람들이 사라집니다.
빛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의 일기를 적어둔 것입니다.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지고 계속 눈이 내리는 현상이 지속됩니다.
무서워서 다른 곳으로 갈수도 없고, 필요한 물건들은 다른 집에서 조달해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겪는 절망과 자살 충동, 시도. 그리고 적응.
이런 내용들이 진행됩니다. 사실 앞부분은 조금 지루한 면이 있긴 했어요.
마치 동일한 하루 하루의 반복이, 내가 로렌츠가 된듯하게..
절망감과 지루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듭니다.
너무 사랑했던 마리와의 일을 추억하고
그 안에서 이 주인공은 너무나도 올바르지 못했던,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더더욱 혼자라는 절망감을 내세웁니다.
결국 마리의 무덤에 가서 죽으려고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다른 생존자를 만나게 됩니다.
핀 이라는 남자인데 자신과 정 반대되는 성향을 갖고 있고
이 일들을 대처해왔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온 세계에 자신 밖에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자살을 하려고
갔다가 만났고, 핀 또한 식량이 없어서 자살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같이 돌아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둘은 너무도 잘맞아서 혹시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여깁니다.
그리고 고열에 시달리는 어느 날, 약을 가지러 갔던 핀이 사라집니다.
며칠을 더 견디던 로렌츠는 온도가 올라가고 있고, 빛이 점점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후 남쪽으로 떠날 결정을 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과거'에 매여있지 말라는 메시지인듯 합니다.
작가에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있는 그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닌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심리 상태랄까요, 절망의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고,
마리에 대한 그리움이나 죄책감, 그리고 핀과의 즐거움이나 행복감.
결국 그들이 없어도 자신은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아닌 '태양'을 더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겪으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이 '제대로 살아가는 것'
임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누군가와 만나고 존재해야하는 것이기에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수는 없지만, 당연히 있어야할 것이
없는 세상 속에서는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결국 마리도 핀도 이 로렌츠에게는 과거입니다.
그리고 빛이 없었던 과거 또한 이제는 지나갔습니다.
괴로움과 절망이 지나가고, 앞으로 나아갈 자신만이 남은 것입니다.
+ 우연히 이 책과 오사키 요시오, '아디안텀 블루'를 같이 읽게 되었는데
내용이 참 비슷합니다. 아디안텀 블루의 경우엔 세상은 그대로 있긴 하지만요.
사랑을 잃고 살아가기 힘든 남자 주인공의 얘기랄까요.
그래서 관련책으로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