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기사 출신의 저자 요코야마 히데오는 1991년 데뷔 이래 수많은 추리 소설을 써냈습니다. 많은 작품이 상을 수상했고 종종 드라마화되기도 하구요. 경찰 소설들이 눈에 띄지만 경찰 소설만을 고집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집은 표제작 '동기'를 포함한 4편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표제작 '동기'는 2000년 제53회 일본추리작가협회 단편부문 수상작입니다.
이 작가하면 경찰 소설이 먼저 떠오르는 면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사건이나 트릭, 해결 등을 초점에 맞춘 추리물이 아니라 좀 더 인간적인 갈등부가 두드러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경찰 내부의 조직 간의 문제를 탁월하게 그려냅니다. 그렇다고 너무 섬세해서 늘어지는 감정선을 갖는 것도 아니구요. 깔끔하고 담백한 문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뢰가 가는 작가이긴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너무 모범생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그래도 이런 면이 경찰 소설과 제법 잘 어우러지는게 아닐까 싶어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이번 단편 모음집에는 각기 다른 네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표제작은 물론 경찰이 주인공이지만 피의자와 피해자 가족, 기자와 취재원, 판사의 이야기로 다양합니다.
동기
J현경 본부 경무과 기획조사관으로 44세의 경시인 가이세 마사유키는 아버지를 이은 2대째 경찰입니다. 사건 정보가 기록된 중요한 경찰 수첩을 경찰서에 일괄보관 하자는 제도를 만들어낸 장본인인 그에게 보관 중이던 수첩이 일체 도난당했다는 연락이 옵니다.
이 안건을 낸 그의 경력도 흠집이 나게되고 더욱 문제는 경찰서 내부 사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신이 조사를 하고자 합니다.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와 달리 일개 직원으로 수사 흉내나 내고 다니지 말라는 무시, 경력, 조직 내부를 의심해야하는 상황 등을 세밀하게 잘 그려낸 수작입니다.
이 소재를 장편으로 끌고 갔어도 꽤나 역작이 되지 않았을까란 기대감도 품게 될 정도로 흥미진진한 소재이긴 하지만 역시 잘된 단편이 줄 수 있는 빠른 템포의 진행과 결말의 여운이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입니다.
역전의 여름
야마모토 히로시는 13년 전 살인사건의 피의자입니다. 계획 범죄는 아니었지만 범행 자체를 부인하는 입장은 아니라 쥐죽은듯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한편으론 억울하다고 남탓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보호감찰관 덕분에 직업을 얻고 아무도 모르는 외딴 동네에서 묵묵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있는 사장의 행동 변화와 함께 집으로 걸려온 이상한 전화 한통으로 그의 조용한 일상은 변화를 더해갑니다. 살인청부 의뢰를 부탁하는 낯선 인물, 전부인과 아들을 위한 돈에 대한 욕심 등이 뒤섞여 생각의 변화들을 차곡히 그려낸 작품입니다.
피의자와 피의자 가족,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되는 결말이긴 하지만 작품 자체가 진행되면서 느낄 수 있는 점은 유혹 앞에 강한 마음을 가져야하며 진실을 모른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란 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재원
미즈시마 마치코는 15만명의 시민이 있는 작은 도시의 '겐민 신문'사 기자입니다. 그녀가 쓴 기사가 발단이 되어 신문사의 불매 운동까지 벌어지게된 골치 아픈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다가 전국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옵니다.
시끄러운 상황 한 가운데 있는 자신을 스카웃하려는 단 하나의 이유가 바로 자신의 '취재원'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고, 다시 한번 취재원에게 정보를 얻어 더 나은 신문사로 이동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급박한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여자 기자로써의 조직 내 위치라던가 경력에 대한 고심들이 잘 그려진 수작입니다. 결말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대작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거운 결말이 아니기 때문에 더 괜찮았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드네요.
밀실의 사람
D지방법원의 49세인 안자이 도시마사 판사는 삶의 모든 부분을 판사로써 살아간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직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졸게됩니다. 원장 판사의 질책, 기자와의 대화 등을 통해 자신이 쌓아왔던 22년의 강직함이 하루 아침에 무능함으로 변화되고 그는 왜 졸게되었는지 추리를 이어갑니다.
그 끝에서 발견한 의외의 진실은 정말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과거가 어떠했든 그것이 추악한 것이 아니라 그 과거가 들통날까봐 '지금' 한 사람이 취하는 태도가 그 됨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흠을 상대탓을 한다던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동기는 상대에게 있으니 책임을 전가한다던가 그런 행동들이 그 사람 자체의 품성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리들 스토리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들의 절망은 어떤 방향이건 상관없이 탈출구가 없어 보입니다. 내면을 보지 못하고 외면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반한 그 자신의 탓이라고 해야할까요.
이상이 네 편의 단편에 대한 내용입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각기 다른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면은 '지금의 행동이 쌓여 나 자신을 이룬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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