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저자의 소설을 읽지 않아도 이름은 익숙한 작가일 것 같습니다. 일본 작가들의 인터뷰에서도 그렇지만 일본 드라마를 보면 마쓰모토 세이초 원작을 드라마화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더라구요. 저도 몇 편을 봤었는데 이번 기회로 처음 읽어보게 되었네요. 책 날개의 설명을 보니 10년동안 좋아하는 작가 1위를 할 정도이고 41살의 늦은 나이에 데뷔해서 '사회파 추리소설'의 붐을 일으켰다니 추리 소설 작가들에게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었구나 싶더라구요.

 

개인적으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을 읽지 않아왔던 이유는 너무 무겁다는 단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그의 원작을 드라마화한 것만 봐도 원작의 대단함은 짐작이 가지만 나이를 한살씩 먹어갈수록 이상하게 동화적인 면이 있는 픽션에 더 관심이 가더라구요. 그만큼 세상이 동화적이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는데요. 결론을 먼저 언급해보자면 '아 정말 그토록 사랑받는 작가의 위력은 단 한편의 단편으로도 알 수 있구나'라는 문장으로 다 표현될 것 같습니다.

 

종종 책을 읽다보면 읽은 책에 관해 논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완벽하면 그럴수록 쓰기 힘들어집니다. 구구절절한 수식어가 필요없으니까요. 이 책 역시 제게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간혹 좋아하는 소설을 만나더라도 개인적 취향이 적용되는 것이지 모든 이에게 대작인 책은 그리 흔치 않죠. (인기도나 대중성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표제작인 '잠복'을 시작으로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 모음집입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출판사 모비딕과 북스피어에서 세이초 시리즈가 나온다고 하네요. 소설과 논픽션 시리즈가 있구요. 이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총 여섯 권으로 나눠져있는데 (더 예정된건지는 모르겠네요.) 크게 세 범주로 나눠 추리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을 1, 2편으로 현대소설을 3, 4편으로 에도 역사소설을 5, 6편으로 묶었다고 합니다.

 

추리 소설이지만 트릭 중심이 아닌 추리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잠복'이었다고 합니다. 잠복은 크게 분류하자면 경찰 수사물인데 그리 길지는 않은 단편입니다. 어떤 화려함이나 강렬한 인상을 가지지 않는데도 상당히 수작이라 느꼈고 이 한 편으로 왜 대단한 작가인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이 단편집 '잠복'에 나오는 문체의 특징은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작가의 특징인지는 확언할 수가 없네요.) 약간 거리감이 있는 관찰자의 시각으로 쓰여진다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단지 '잠복'같은 수사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도 어딘가 감정이 절제되어 있고 캐릭터 자체가 잣대를 갖다대지 않는 면이 있달까요.

 

설명하자면 범인을 확신하고 쫓는 상황에서도 어딘가 제 3자가 서술하고 있는 듯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좀 독특한 기분이 들고 너무 독자로하여금 그 감정에 함께 휘둘려주기를 원치 않는 기분도 들지요. 철저히 저자 자신이 독자로써 글을 쓰는 기분이랄까요.

 

단편 '잠복'의 스토리라인은 그리 독특하진 않습니다. 범인과 관련이 있는 인물을 관찰하면서 그 범인을 기다리는 형사를 그립니다. 반전이나 특별한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있을 법한 한 사건을 기술할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단순하지 않은 감정이 생기는 것은 바로 그 문체 자체에서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관찰하면서 알게되는 인간의 냉정함이랄까 안타까움이랄까 덧없음 같은 것에 공감하게 되는 면이랄까요.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열혈 형사가 아니라 이런 인생도 있다는 좀 더 어른의 시각 때문이랄까요. 그가 그려낸 소설이 드라마화되어 누군가의 각색을 거쳤지만 이런 면은 공통적인 것 같습니다.

 

한 사건의 관련자로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물과 목격자로 스친 인물의 관점이 번갈아 나와 긴장감을 자아내는 '얼굴', 인쇄소를 운영하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것과 같은 이야기인 '귀축', '잠복'보다는 '얼굴'과 좀 비슷한 면이 있는 단편입니다. 죄짓고 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마쓰모토 세이초식의 교훈이 아닐까요.

 

벌거 아닌 일로 신문사를 그만두고 어쩔 수 없이 작은 동네에서 기자 일을 재계하는 주인공은 예상 밖으로 진정한 기자로 거듭납니다. '투영'은 오히려 가장 추리물 같은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화 교환원으로 한 목소리를 듣고 사건에 연루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목소리'는 경찰 수사물의 일종입니다.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에서는 한 작가로 하여금 사건을 추리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가장 흔한 추리물에 가까우면서 평범한 기분이 들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일 년 반만 기다려'는 한 인물의 인간성은 보여지는 것과 다른 본성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카르네아데스의 널'에서는 긴급피난의 문제입니다. 내가 살기위해 상대를 죽이는 것은 정당한가에 대한 법률입니다. 이야기는 성공한 사학과 교수가 이제는 힘없는 은사와의 관계를 통해서 함께 파멸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 자체로 생각해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드는데, 그 은사로 하여금 자신의 허영을 채우고 교만하기 위해서 파멸을 자초한 주인공의 모습은 흡사 비논리적인 선택을 감행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단순히 미스터리의 분류에 있기 때문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이 어두운 것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미스터리의 장르 속에서도 충분히 어두운 면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면을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은 (적어도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이야기들 속에는) 추악한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그렇다고 희대의 범죄자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나와 주변이  파멸로 들어가는 그런 암흑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런 류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냉정할만큼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그의 관점으로 쓰여졌기 때문인건지 독특하다는 인상과 함께 어떤 감수성을 느낍니다. 독자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거나 안타까움을 느끼라고 강요하는 저자가 아니라 이런 선택을 통한 이 사람의 인생을 보라는, 얼마나 비정한 인생을 살았느냐는 기분이 그 멀찍히 쓰여진 시선 속에서 느껴진달까요.

 

소재나 반전, 트릭같은 면이 아니라 바로 이 부분이 그의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제된만큼 모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저자의 필력이 담겨있는 고전의 힘이 보이는 단편집이었습니다.

 

 

 

 

 

책 정보

 

Harikomi by Seicho Matsumoto (1965)

잠복

마쓰모토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1

지은이 마쓰모토 세이초

펴낸곳 모비딕

인쇄 2012년 6월 20일

발행 2012년 7월 1일

옮긴이 김경남

디자인 조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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