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아래 봄에 죽기를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서평

 

이 소설은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및 연작단편집 부문 수상작입니다. 권위있는 미스터리 분야의 문학상인데다가 장편상보다 수상작이 훨씬 적인 단편 부분이라 더욱 눈에 띕니다. 표제작을 비롯해 총 6개의 연작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입니다. 도쿄 신타마가와선 산겐자야 역에서 좀 걸어 세타가야 거리의 좁은 골목에 위치한 바 '가나리야'. 서로 다른 4가지 도수의 맥주가 있는 작은 맥주집입니다.

 

국내에서 흔히 생각되는 호프집이라는 느낌보다는 안주가 무척 맛있는 좀 더 조용한 선술집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인데요. 이곳의 주인인 구도 데쓰야는 굉장히 박식하고 어떤 수수께끼든 꿰뚫어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묘한 이야기들이 이 '가나리야'에서 자주 회자되곤 합니다.

 

처음 이 소설에 대해 평을 읽었을 때만 해도 '안락의자형 탐정'(직접 나서서 현장을 보지않고 한정된 공간 내에서만 존재하며 추리하는 형태의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는 설명에 공간의 제한성을 둔 SF적인 특징을 가졌거나 혹은 코믹쪽이 아닐까라고 지례짐작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저자의 스타일은 좀 더 문학적인 편입니다.

 

소설 뒷부분에 '고하라 히로시'의 해설이 덧붙여있는데요.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단편의 문체는 장편과 달라 간결해야한다고 합니다. 분량이 짧다보면 아무래도 생략과 절제, 이미지 환기성이 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 소설의 특징은 단순히 문체만 명확하고 짧은 것이 아니라 그 절제에서 오는 잔상이 상당히 강력한 소설이라는 느낌입니다.

 

흔히 추리물이 아닌 순수 문학의 작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인데 추리물과 순수 문학을 잘 결합한 기분이 드는 그런 소설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정통 추리물을 선호하는 분들에겐 좀 시시할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공간의 제한성을 둔 SF적인 특징'이라는 표현을 잠시 언급해보자면 SF는 새로운 세계를 작가가 재구성하게 됩니다. 혹은 창조하곤 하지요. 그러다보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어 글로 묘사되지 않는 부분은 암흑과도 같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을 묘사하는 작가는 화자와 독자 사이에 '우리의 세계'라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기 때문에 묘사되는 이외의 공간 자체가 독자의 세계로 무의식적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감상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질 수 있는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의 재구성이 작가마다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을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하게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 기반을 둔 소설들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지요. 이것은 단순히 소설 자체가 그렇다는 특성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이 화자가 될 경우 더욱 두드러지게 됩니다.

 

이 소설을 예를 들어 일반 사람들과 다른 시각을 가지고 굉장히 박식하여 흔히 상상하지 못할 세계까지 넘겨볼 수 있는 '구도 데쓰야'란 인물이 화자였다면 느낌이 또 달라졌겠지요. 그러나 화자는 각각의 단편 속에서 다른 손님들이 각각 맡고 있구요. 가나리야의 주인 구도가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추리를 하는 맥락을 취합니다.

 

종종 이 바에 모여드는 아저씨들의 조금은 주책맞은 듯하면서도 추리에 열을 올리는 코믹한 모습이 곁들여지기도 해서 심각한 상황들이 잠시 환기가 되곤 합니다. 첫 번째 단편에서는 자유율 하이쿠 모임 '자운률'의 동인인 가타오카 소교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같은 동인이었던 이지마 나나오는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가타오카 소교가 본명이 아니고 살아생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연이 있었던 것을 알고 유골이나마 고향으로 보내주고 싶어 그 사연을 좇게됩니다.

 

다음 단편인 '가족사진'에서는 긴자선 아카사카미스케 역의 개찰구에서 서고가 마련되어 책을 빌릴 수 있는데 그 중 일부 책에서 동일한 가족 사진이 발견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노다 가쓰야는 피곤함을 물리치고 가나리야에 종종 들리게 됩니다.

 

'마지막 거처'에서는 보도 사진상을 받은 쓰마키 오부히코가 화자입니다. 상을 받아서 기쁘기는 커녕 어두운 걱정이 있어보여 구도가 그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살인자의 빨간 손'에서는 사사구치 히즈루가 화자로 나오며 가나리야가 있는 주변에서 돌고 있는 도시 전설도 아닌 괴담같은 이야기의 정체에 대해 추리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일곱 접시는 너무 많다'에서는 히가시야마 도모오가 들은 초밥집에서 매일 참치만 먹는 이야기에 숨겨진 암호를 찾아내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물고기의 교제'에서는 첫 단편에서 등장했던 이지마 나나오가 다시 화자로 등장해서 가타오카 소교의 또 다른 행적을 좇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소설을 추리물로 분류하기엔 조금 시시한 감이 있고 그렇다고 순수 문학이라고 하기엔 구도 데쓰야란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다고 소소한 이야기라고 하기엔 다루는 소재들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그렇지만 2%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기타모리 고'라는 작가의 작품 세계가 상당히 궁금해지는 한 권의 소설인데요. 저자가 살아있어 더 많은 작품을 써주지 않은 것이 상당히 애석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 번역 출간되기를 바래봅니다.

 

 

 

 

 

 

책 정보

 

Hana no Moto Nite Haru Shinamu by Ko Kitamori

꽃 아래 봄에 죽기를 

지은이 기타모리 고

펴낸곳 피니스 아프리카에

초판1쇄 발행 2012년 5월 1일

옮긴이 박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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