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속 세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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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몬을 아십니까? 익숙한 이름임을 깨달으셨다면 '달의 뒷면'을 읽어보신 분이군요! 이 소설은 온다 리쿠의 '달의 뒷면'과 동시에 출간되었는데 '다몬이 주인공인 소설이라서 그랬구나!' 라고 읽은 뒤에 알게 되었네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읽는 재미를 위해서 소개글을 따로 찾아보지 않는 편이거든요. '달의 뒷면'에서는 관찰자로서 다몬이 등장했다면 이번엔 좀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2000년에 발표된 '달의 뒷면' 이후 10년간 쓰여진 단편 다섯 편을 묶어 출간한 소설이라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동명의 단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별개로 붙여진 제목이더라구요. 인디 밴드를 발굴해 데뷔시키는 일을 하는 쓰카자키 다몬의 다섯 가지 이야기입니다. 첫 단편 속에 결혼 전으로 추정되는 시기가 나오길래 부인과의 러브 스토리를 기대했는데 콕 찝어서 나오진 않더라구요. 여러 장소가 배경이 됩니다.

 

매번 주인공이 되는 캐릭터는 따로 있지만 다몬의 친구들이 고정적으로 나옵니다. 일본 오타쿠인 영국사람 로버트, 짙은 밤색 머리와 눈을 가져 프랑스인이지만 외국 사람 같지 않은 잔, 집안도 대단하고 본인 역시 그런 '최강의 일본 여성'으로 불리우는 미카가 다몬의 친구로 종종 등장합니다.

 

나무지킴이 사내

온다 리쿠가 늘 산책한다는 간다 천 변에서 보게된 집을 모티브로 쓰고 등장하는 꿈의 이야기 역시 본인이 꾼 꿈이라고 합니다. 다몬은 강가를 산책하며 여러 생각을 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주요 인물은 대학 선배로 삼십대 중반의 인기 방송 작가인 다시로입니다. 윤택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지만 낡은 집을 구입해 일주일의 일부는 다른 삶을 사는 독특한 사람입니다.

 

그와 종종 이 강가에서 만나곤 하는데 꿈 얘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나무지킴이 사내 이야기가 나오고 다몬은 그 기묘한 존재를 보게됩니다. 판타지적 요소와 사회파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섞여 있는 그런 단편입니다.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

윗 단편도 - 온다 리쿠 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듯 - 호러적인 요소가 섞여 있지만 이 단편은 특히 그렇습니다. '들으면 죽고 싶어지는 음악'이란 소재를 모티브로 합니다. 한 지방 방송에서 우연히 틀어진 아마추어의 노래 덕분에 줄줄이 사고로 연결되어 죽게된다는 소문을 조사하게 되는 다몬. 결과는 생각보다 만만치않은 끔찍한 이야기였습니다.

 

온다 리쿠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무서운 어떤 현상 자체를 무섭게 묘사하는 작가가 아니라 그 배경부터 분위기 자체를 무섭게 만들어 그 일대 전체를 공포감으로 휩싸는 그런 작가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이 소설이 그랬습니다. 나라에 있는 '꽃의 절' 코스를 산책하다가 구상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환영 시네마

다몬이 데뷔시키고자하는 인디밴드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베이스의 스기하라 다모쓰의 고향인 H현 O시로 결정합니다. - 오노미치가 무대라고 합니다. - 그렇데 이 다모쓰의 상태가 영 이상합니다. 어떤 징조가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꼭 죽는다는 다모쓰의 걱정을 해결해주기 위해 다몬이 나서게 됩니다.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였지만 잘해결되서 다행이랄까요.

 

다모쓰의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역시 몽환적이면서도 호러적인 단편입니다.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공포를 가미한 이야기는 온다 리쿠 특유의 장기이기도 하니 당연하겠지요.

 

사구 피크닉

돗토리 사구와 고쿠라가 배경이라고 합니다. 구스노키 도모에는 산업 번역, 기술 번역이 전문이며 그 밖에 트렌드를 예측하는 힘이 있어 굉장히 발은 넓은 인물입니다. 최근 번역하고 있는 사진작가 U가(앙리 베자르) 쓴 유작 속에 T사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묘한 이야기가 있어 다몬에게 동행을 부탁합니다.

 

T사구를 포함한 T현을 관광하는듯 이야기가 나오면서 동시에 U가 쓴 수수께끼의 이야기를 추리하게 됩니다. 다른 단편의 이야기들이 너무 스케일이 커서 이 소설은 조금 약하지 않았나 싶지만 몽환적인 느낌은 상당히 강했습니다.

 

새벽의 가스파르

이 책의 제목인 '불연속 세계'가 원본에서 역시 동일한 제목인데 이 단편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라는 저자의 글이 마지막에 있습니다. 가스파르(gaspard)는 프랑스어로 작은 악마, 교활한 녀석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종종 다몬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 특히 본인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야간 열차를 타고 다카마쓰에 내려 사누키 우동을 먹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다는 여행 계획을 세운 친구들. 단정한 정장을 입은 도쿄 지방 검찰청 검사인 구로다. 통통하고 빡빡머리에 반바지 차림인 오노에는 의외로 작곡가인 뮤지션입니다. 컬러 렌즈에 펑크스타일의 옷을 입은 빨간 머리의 미즈시마는 의외로 의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넷이 굳이 바쁠 때에 야간 열차 안에서 괴담을 나누자는 별난 사람들입니다.

 

온다 리쿠 스러운 설정이지만 이야기는 반전이 있습니다. '달의 뒷면'을 시작으로 이 소설 속의 여러 이야기 속에서 늘 평정심을 유지했던 다몬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는 이야기랄까요.

 

이런 내용의 단편들입니다. - 저자는 중편이라고 표현했지만요. - 과거를 회상하며 되새김질하듯 생각을 거듭하는 주인공의 독백은 온다 리쿠 특유의 방식이지요. 그것이 단순히 이 캐릭터의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기억으로부터 앞으로 대면할 사건과의 연속된 흐름을 가집니다. 단지 본인은 그 흐름을 지속적으로 깨닫지 못하지요. 그것이 바로 '불연속 세계'가 아닐까란 생각도 해봅니다.

 

분명 나는 시간의 흐름 안에 살아가고 있고 그 시간은 연속되어 있지만 나의 생각은 연속되지 못하고 불현듯 등장하니까요. 그 불연속된 세계가 연결이되고 인물들로 하여금 사건으로 연결되는 흐름을 갖지만 어디까지나 읽고 있는 독자에게 보여지는 흐름이지 본인들에게는 뜬금없는 조우일테니까요.

 

'엔드 게임'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의 이동을 보여줬던 것처럼 모든 생각은 나의 안에 있지만 그 생각이 시간의 흐름처럼 동일선상에 빼곡히 연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에 착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분위기나 선호하는 설정들이 반복되는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온다 리쿠의 이야기에 또 다시 감탄하고 즐겁게 읽게 되었습니다. 호러적인 면이 있어서 여름에 무척 잘 어울리지 않나 싶네요.

 

 

 

 

 

 

책 정보

 

Furenzoku no Sekai by Onda Riku (2008)

불연속 세계

지은이 온다 리쿠

발행처 도서출판 비채

1판 1쇄 인쇄 2012년 3월 9일

1판 1쇄 발행 2012년 3월 19일

옮긴이 권영주

cover illust 정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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