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동화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서평

 

저만의 나쁜 버릇인지는 모르겠는데 작가가 독특하면 독특할 수록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상당히 시동이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난독증같은 느낌으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거든요. 열 페이지에서 삼십 페이지쯤 읽고 놔둔 후 그 세계관에 적응 기간을 두고 읽으면 단숨에 뒷쪽을 읽게 됩니다. 간혹 힘들 땐 열 페이지에 도달도 못할 때가 있고 재밌으면 오십 페이지까지도 읽게되는 등 천차 만별입니다.

 

온다 리쿠는 좋아하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다른 분위기의 소설을 써내기 때문에 늘 그렇습니다. 막상 읽기 시작하면 작가의 특징이 군데 군데서 베어나와 그 세계관을 맞춰나가는 재미는 있지요.

 

개인적인 얘기는 잘 쓰는 편은 아닌데 왜 이런 걸 풀어놓느냐하면 그런 온다 리쿠 글임에도 이 소설은 전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없었습니다. 역자는 후기를 통해서 온다 리쿠에 대한 호불호가 상당히 나뉜다는 얘기를 하면서 도저히 못읽겠다는 사람에겐 이 책을 추천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소설은 대중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 소설은 제목 이외에 '미모의 천재 여류 화가의 죽음을 둘러싼 호러 미스터리'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온다 리쿠는 항상 어느 정도 호러적인 면을 가미하기 때문에 어느 작품에서건 그 작풍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다지 호러스럽지는 않습니다. 물론 살인이 등장하는 소설이기에 그 사건을 생각해보면 무섭긴 합니다.

 

그런데 평소 온다 리쿠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무언가 기묘한 감정에 휩싸이거나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아서 불안할 때 한껏 분위기를 잡는 그 호러스러움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온다 리쿠스럽지 않은 소설이냐 물으면 또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방식, 소재, 결말 등은 전부 온다 리쿠스럽습니다. 딱 그의 세계관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다만 방식이 너무 담백해서 대중적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추리물에 가까운 기분도 들지요. 그래서 골수 온다 리쿠 팬들에겐 좀 가벼운 작품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선 화자는 이 부제에 붙은 '미모의 천재 여류 화가' 다카쓰키 노리코의 환생으로 추정되는 마유코입니다. 다카쓰키 노리코의 유작전에서 한 그림을 본 후 살해되는 순간의 과거가 떠오르면서 기절하게 됩니다.

 

이 마유코는 얼핏 평범한 여성으로 보이지만 신기한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인데요. 흔히 알려진 독심술이나 텔레파시 같은 흔한 쪽이 아니라 온다 리쿠의 다른 소설인 '빛의 제국'에서 잠시 등장했던 '서랍'을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독특한 능력이 있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나오고 추리를 한다는 점에서 '어제의 세계'나 '유지니아'가 떠오릅니다. 평범한 느낌인 것으로 치면 '도미노'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어린 시절 엄마를 잃어 엄마에 대해 잘 모르는 다카쓰키 노리코의 아들 뵤는 뒤늦게 유서를 발견합니다. 지인에게 그림을 넘기라는 유언입니다. 그래서 마유코와 대학 교수 우라타 다이잔, 마유코의 친구 이마이즈미 슌타로와 함께 그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유작전에도 방화 사건이 일어나면서 협박 편지와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아름답고 천재적이었지만 좋은 사람만은 아니었던 다카쓰키 노리코의 지인들을 만나면서 그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지만 대체 누가 협박을 하고 무엇이 숨겨져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합니다. 결국 한 인물에 의해 그 내막이 알려지고 예상 밖의 이야기들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관계들이 알려지게 되지요.

 

궁금해서 무척이나 열심히 읽은 소설이지만 아무래도 온다 리쿠 스타일을 생각하면 조금 의외라는 기분이 드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추리물을 써달라는 편집부의 부탁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거든요. 그렇다고 소설 자체가 별로였다는 것은 아니구요. 온다 리쿠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 '도미노'란 소설도 그렇긴 하지만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 정보

 

Fuanna Dowa by Onda Riku (1994)

불안한 동화 (미모의 천재 여류 화가의 죽음을 둘러싼 호러 미스터리)

지은이 온다 리쿠

펴낸 곳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년 8월 23일 초판 1쇄 인쇄

2007년 8월 30일 초판 1쇄 발행

옮긴이 권남희

 

 

 

   p. 108

   문득 고개를 들자, 계단의 층계참 위 유리창으로 도려낸듯한 여름 끝의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을 보았을 때, 이제 피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현실로 침입해온 지금, 내게는 달아날 곳이 없다.

 

 

   p. 119~20

   아무래도 최근 젊은 여자들은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무조건 자신을 타인과 차별화하고 '뭔가'를 추구하는 타입과 판에 박힌 '여자의 인생'을 걷는 타입으로.

   학창 시절부터 양측의 경계선상에 있었다. 친구도 양쪽에 모두 있었다. 그러나 각각의 주장이 나름대로 납득은 갔지만, 진심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p. 246

   바다가 보이는 순간은 참으로 신기하다.

   반드시 어떤 징조가 있다. 뭔가가 열리는 기척이 난다.

   창밖에 잿빛 바다 한 자락이 보였다.

   부옇게 은색으로 빛나는 바다가 나를 맞이했다. 파도가 거칠게 일렁인다. 그곳은 이미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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