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라 - 하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첼로로 고등학교를 나온 주인공 쓰시마 사토루는 상권에서 2학년 여름까지의 이야기로 고행과도 같은 첼리스트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속에서 철학에 대한 애정과 사랑,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며 힘든 일상이 그려졌지만 단기 유학을 계획하는 등 그래도 희망찬 미래가 보이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하권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책 표지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고통스럽고 첼로를 놓아버린 이야기는 하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기대를 품고 떠난 독일행이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달라서 정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연락이 온 미나미의 편지도 뭔가 이상합니다.
 
돌아와서는 그토록 어렵다는 곡이 오케스트라의 11월 발표곡으로 정해집니다. 수준 낮은 학교에서 이 곡을 할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입니다. 결실을 맺은 것 같은 사랑도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고 결국 미나미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쓰시마는 결국 그 모든 힘겨움을 당사자가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 풀어버립니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보니 이 소설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가나쿠보 선생님을 위한 소설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데도 가지 마!'라고 절규하던 그 문장이 떠올라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저자도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미나미가 단순히 불행한 운명에 휩싸였던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결혼을 결심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나름 고귀한 영혼이라고 자부했던 소년에게 그 사건은 너무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당사자를 탓했으면 좋았을텐데 사랑한다는 상황 아래 화풀이는 다른 사람에게 하게된 것이지요.
 
마지막에 선생님을 만나러 갔을 때에도, 지금 돌이켜 이 소설을 쓰게되기 까지도 저자는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고 얼마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을지 공감이 됩니다. 오히려 미나미보다도 자신을 아껴준 사람은 가나쿠보 선생님이셨을테니까요.
 
자신의 실력이 더 낫다고 자부하고 자신의 가정 형편에 불만을 갖던 미나미가 쓰시마에게 했던 언행이나 미나미가 이후 선택한 행동을 보면 그녀의 모습이 보입니다. 쓰시마를 통해 그려졌던 그 열정적인 인물은 어디론 간 것일까요.
 
쓰시마 또한 자신에게 실력이 없어서 음악을 그만둔다고 했지만 첼로를 지속했다면 어땠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철학을 다 이해했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화풀이 도구로 이용한 쓰시마의 젊은 혈기는 그의 인생 전체를 망치고 허무한 바다에서 정처없이 방황만 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쓰시마는 예술가도 아니었고 철학자도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는 예술가였고, 철학자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더 이상 예술가이기도 철학자이기도 포기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가 그 때의 아픔을 견뎌내고 이기고자했다면, 좀 더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생각했다면 그의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여 지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꺼란 생각은 들지만요.
 
이 소설을 쓰고 나면 편해질꺼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결국 자신을 옥죄고 있는 것은 자신의 기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좋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편치 않는 삶을 살아온 저자가 이제는 좀 더 많이 털어버리고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책 정보

 

Fune ni Nore! by Osamu Fujitani (2008)

배를 타라 (하)

지은이 후지타니 오사무

펴낸곳 (주)미래엔 (북폴리오)

초판 1쇄 인쇄 2012년 3월 10일

초판 1쇄 발행 2012년 3월 20일

옮긴이 이은주

디자인 김지혜, 김아름

 

 

 

p. 346

모두 한 번 연주를 한 덕분에 우리는 가부라기 선생님이 지휘봉이 다시 내려갔을 때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전체인 음악이었다. 조금 전과 같은 오케스트라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유카와는 솔리스트처럼 상체를 흔들면서 '좀 더 소리를 내, 좀 더 소리를 내' 하며 무언으로 악기를 격려하고 있었다. 그 열기는 바로 모두에게 전해졌다. 이토의 플루트에도 전해졌고 호른의 1학년과 다부사에게도, 그리고 요시오카와 나에게도 전해졌다.

수준 높은 연주라고는 할 수 없었다. 고교생에게 모차르트는 역시 무리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그런 냉정한 평가를 내릴 여유는 없었다. 어떤 음이나 평안했다.

거기에는 자유가 있었다.

 

 

p. 347

자유는 시간에 쫓기는 현실 속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음악은 그런 삶에도 자유는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자유는 추상적인 상상이 아니다. 진정으로 존재하며 지금 이 장소에서 공기를 진동시키고 있다.

 

 

p. 351

명멸하던 사고의 파편 속에 그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곳에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파괴해버린 사람의 모습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연주하는 독주에도 청중은 있다.

왜냐하면, 너를 보고 있는 또 하나의 네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p. 366

나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철학자도 아니었다. 배를 타고 새로운 태양, 다른 세계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배를 타고 있었고 그 배는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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