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이 책은 2008년 제12회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 수상작입니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되었고 환호와 절찬이 끊이지 않았다는 소설입니다. 크게 보면 형사물이구요. 출판사 홍보 내용에는 예순 여섯 구의 시체가 냉동 컨테이너에서 발견된다는 부분이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제목과 표지를 보면 그리 끔찍해보이지는 않거든요.
우선 예순 여섯 구의 시체가 등장한다는 면에서 가졌던 선입견과는 다르게 조금 말랑말랑한 소설입니다. 형사물이지만 여자가 주인공이거든요. 아무래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추리물의 경우 좀 감성적으로 흐르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의식을 하고 그렇게 쓰는거 아닌가 싶죠. 동일 작가의 남성 주인공일 경우 전혀 다른 것과 비교해보면요.
여형사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는 뻔한 내용은 역시 뻔합니다. 조금 감성적이고 마초적인 일부 동료 형사들에게 멸시 당하지만 유능하고 결국 미인이라는 설정 말입니다. 그런 뻔한 설정을 갖고 있는데도 이 소설은 재밌습니다.
감성적이지만 너무 개인적인 부분에 치중되진 않습니다. 감성적이라는 것이 뭔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거든요. 작품만의 특성이 되어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구로하는 유능하지만 특출나게 유능한 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추리를 강하게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덕분에 저는 재밌게 읽었지만 추리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독자에겐 조금 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좀 특별하진 않거든요. 그러니 '시체 예순 여섯구'라는 설정이라면 분명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 순위 좀 올라갔을 법한 쇼킹한 면이 있는데 신인상이니까요. 아무래도 신인상 수상작은 조금 허술한 면이 있지요.
그런 추리적인 면을 제외한 부분들이 참 괜찮습니다. 일단 초기 설정을 얘기해볼께요. 구로하는 기동수사대입니다. 시체가 발견되서 탐문에 참여하길 기대하지만 수사에서 제외됩니다. 임항서 경무과의 일을 도와 렌탈 컨테이너를 여는 일에 입회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투덜거리면서 도착하는데 사건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 렌탈 컨테이너 속에서 냉동된 시체 열 네 구가 발견됩니다. 합동수사반이 세워지지만 시체의 모습이 동반 자살인듯하여 그리 큰 이슈는 되지 못합니다.
시체가 발견될 즈음에 도착한 유서 메일과 이상한 첨부 파일이 발견되고 생존자의 행방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 렌탈 컨테이너 속의 냉동된 시체는 계속 계속 발견됩니다. 이로써 사건의 중대함을 알게되고 경시청이 움직이게 됩니다. 흔히 이런 형사물에서는 이 경우 경시청의 이야기로 옮겨갈 법도 한데 그쪽 이야기는 전혀 없이 관할 경찰 얘기들만 지속됩니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서의 만남과 진상들을 조사하게 됩니다. 이 과정들을 상당히 흥미있게 잘 끌고 갔는데 아쉬운 면은 추리물을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뻔히 알 수 있는 인물 설정들 덕분에 색다를 껀 없더라구요. 그런데도 재밌습니다. 아마도 구조적으로 잘 짜여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아쉬운 면은 너무 구로하 혼자만의 원맨쇼 같은 부분 때문인데 좀 더 동료 형사들과의 관계성을 세밀하게 다뤘다면 좋겠다는 정도랄까요. 아니면 파트너쉽이라던가 좀 더 부곽되는 인물이 나왔어도 좋았겠다 싶기도 하구요.
이야기는 진상에 도달하고 마지막 중요 인물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도달하면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으로 이 작품의 평가를 좌우하는 부분이 되지요. 갑자기 드라마틱한 면도 있었지만 드라마나 영화화하면 재밌을 것 같겠다는 생각은 들더라구요.
다 읽고 나서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삶을 지속하게 되는 이유란 또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고 정답도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명확한 생각을 갖지 못하고 허황된 것에 휘둘린 피해자들. 그리고 복수라는 이름 하에 가해자가 되지만 역시 자신의 인생도 파괴하게 되어 결국 역시 피해자가 된 가족.
정말 중요한 관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히 인터넷 상에서 만난 관계가 어디론가에 자신을 데려가줄 것 같고 대단한 사람이 되게 해 줄 것처럼 속인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주제이겠지요.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작가로 하여금 그저 글을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하는데 구로하라는 인물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어쩌면 뻔한 캐릭터일 수 있지만 뭔가 특이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후속작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되는 인물입니다. 형사물을 좋아하지만 시리즈가 의외로 없는 편이라 아쉬운데요. 형사물을 주로 많이 쓴다는 유키 미쓰타카의 다음 작품도 번역되길 기대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