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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에 앞서 온다 리쿠를 좋아하고 이 책을 읽은 예정인 분은 본 서평을 읽지 않으시기를 추천합니다. 추리물은 아니지만 독자로 하여금 시간 순서나 관계의 재각색을 필요로하고 그 과정을 통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정리된 관계를 읽으시게 되면 재미가 반감될 염려 때문입니다.
제 글 역시도 그렇지만 검색으로 볼 수 있는 출판사 소개나 누군가의 설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온다 리쿠의 소설은 아무래도 스스로 읽어내는 과정 속에서 찾게되는 감각을 믿어야할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표지의 그림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세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청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자가 온다 리쿠이기 때문에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류의 청춘 소설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사고를 하게끔 만드는 면이 있고 등장 인물의 관계를 재각색하게 만드는 면에서 추리물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제목은 세 명이 함께 봤던 영화의 제목과 같습니다. 소설가인 니레자키 아야네는 자신이 언제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단편이 먼저 시작됩니다. 이시자카 요지로의 소설 '그애와 나'와 동명 제목입니다.
이어 도자키 마모루는 대학 때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의 성격답게 재즈 동아리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현재의 이야기를 합니다. 제목인 '파란 꽃'의 의미는 모르겠네요. (검색해보니 일본의 록 밴드 '블랭키 제트 시티'의 곡 제목이라고 합니다. 책에서는 그려지지 않지만 도자키 마모루가 훗날 록 밴드 카피를 하게되는데 그 곡이 바로 이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코자키 하지메는 영화감독이 되어 인터뷰를 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 '젊은이의 양지'가 제목입니다.
처음 아야네의 글을 읽다보면 저자의 에세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설가의 이야기가 쓰여져있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담담한 한 문학소녀의 대학 때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성에 '자키'가 공통되게 들어가서 고등학교 때 '자키자키 트리오'로 불리웠던 세 사람. 그 셋은 한 영화를 같이 봤습니다. 그 영화가 공통되게 등장하지만 각자가 느낀 바를 전혀 다릅니다.
아야네는 하코자키 하지메에 관해서는 종종 등장시키면서 사귀었던 마모루는 정작 그리 많은 부분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영화 속에서 알몸뚱이로 큰 문 앞에서 밝은 빛을 향해 무방비하게 걸어가는 그 인물과 마모루를 겹쳐봅니다. 이것은 무방비하게 본인이 모르는 세계로 살아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자신과 반대로 그 미래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 마모루를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이에 대한 감각은 도자키 마모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셋 중 유일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마모루는 과거를 떠올리는 일도 많지 않고 미래를 고민하는 일도 없는 '미래는 가도가도 미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결단이나 과거의 감정을 내비취기 부끄러워하는 자신의 선이 뚜렷한 아야네와 다르게 그저 단순히 현재를 살아가는 마모루랄까요.
그래서 마모루는 아야네와의 접점이 있었지만 과거를 위해서라거나 미래를 위해서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 않고 그저 흐르는대로 놔두기만 합니다. 그에게는 모든 열정이 재즈 음악에만 관통되고 있는 대학 시절의 그 현재만이 그려지고 있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하코자키 하지메의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아야네가 설명했던 하코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오히려 그는 마모루와 비슷하다는 기분이 듭니다. 냉정하고 어딘가 부정적입니다.
연극을 보여줬던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영화를 보는 것 같았던 '여름의 마지막 장미'가 떠오르는 스타일입니다. 영화 감독이 된 하코는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왜 영화감독이 되었고 무엇을 찍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단호히 자신을 얘기했던 앞의 두 이야기에 비해서 상당히 머뭇거리고 모호합니다. 그래서 더욱 영화같은 영상입니다. 그렇게 그는 목적에 도달합니다.
아야네와 마모루와 함께 했던 그 때를 영상화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문장으로 써보면 과연 그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온다 리쿠의 소설이 늘 그래왔듯이 정답은 없고 스스로 그 답을 정해보라는듯 하지요. 그래서 제가 정한 이 소설의 정답은 바로 이 소설 자체가 하코의 영화라는 점입니다.
아야네와 함께 했던 그녀의 방에서의 한 장면을 시작으로 그는 아야네와 마모루와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인생의 아주 단편적인 접점이 있는 세 명이지만 결국 모두 다른 인생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그런 결말을 가질 세 사람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금융기관에서 함께 일했다는 하코의 부인은 아야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답이 없는 문제를 홀로 풀어보면서, 결국 이런 성격의 하코는 사실 아야네를 좋아했고 본인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마모루는 알고 있었다는, 어쩌면 이 이야기는 하코의 사랑 이야기는 아닐까라는 결론에 도달해봅니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하코는 영화 '젊은이의 양지'를 보면서 마음에 새겼고 마지막 대사인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난 거군요.'에 마음이 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야네와 마모루와 자신이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고 오히려 사귀는 둘 보다 더 아야네와 가까운 듯하게 느껴졌지만 정작 그 관계를 그대로 두었던 하코.
뒤엉켜있다가 뿔뿔이 흩어진 뱀 세 마리처럼 언젠가 자신들도 그러한 때가 올꺼라는 예상을 했던 그에게 세 명이 가진 영상이 참으로 강력했음을, 그러나 그것을 자신이 영상화하고 싶다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했던 자신. 유일하게 마모루만이 하코에 대해 느끼고 있었지만 마모루는 그 어떤 과거도 미래도 움직이지않으려하는 인물이기에 그대로 두었겠지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난 세 사람에게 이제 접점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온다 리쿠는 늘 답을 주지 않는 소설을 쓰니까요. 그 뒷 이야기에 대해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너무도 사랑했지만 그것을 견딜 수 없었고 그 이야기도 자세히 쓰지 않는 아야네, 그녀가 미래에 대해 느끼는 강력한 두려움. 아야네가 느꼈듯이 미래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나아가는 마모루.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지만 영화를 통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한 하코.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그저 활자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하여금 그들의 감정을 재각색하게 만들고 추측하게 하는 그런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얼핏 청춘 소설 같기도, 혹은 연애 소설 같기도한 이 소설은 생각해보면 인간 관계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한 때 엉켜있었지만 뿔뿔이 흩어져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처럼 갈망해도, 갈망하지 않아도 결국 자신의 인생을 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모습을 각기 다른 형태로 그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야네와 마모루는 상당히 냉정한 인물입니다. 함께있음으로 느끼는 그 버겨움은 어쩌면 자신들을 냉정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정열적으로 사랑할 수 없음을 알기에, 서로에게 선을 그어놓는 자신과 상대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쪽도 관계의 발전을 위해 움직이지 못함을 알기에.
고등학교 시절에 그들 사이엔 하코가 있었기 때문에 그 둘의 관계가 문제있음을 알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대학 때 그 둘은 그저 그 둘만이었기에 그 관계가 잘 되지 않았겠지요. 하코는 자신을 냉정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야네의 관점에서 그려진대로 따스한 면이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감정적인 부분은 냉철하지 못하지요. 그것을 마모루는 꿰뚫어봤구요.
자신의 이야기 속에 살짝씩 드러내는 마모루에 대한 아야네의 감정을, 전혀 아니었던 것처럼 살았지만 사실 강하게 사랑했던 아야네를 마치 한 편린으로만 끼워둔듯한 마모루를. 그리고 깨닫지 못했지만 너무도 소중해서 결국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아야네와 함께했던 그 장면을 떠올리는 하코.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과거도 미래도 어쩔 수 없으니 담담히 살아가기도 하고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어떤 때를 회상하면서도 살아갑니다. 같은 때를 공유하면서도 결국 이어지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처럼 이 소설은 그것을 표현해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인생이 있었다는 단지 그 이야기를 했을 뿐인지도요.
174 페이지의 짧은 소설을 읽고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추측을 한듯 하네요. 덕분에 전혀 짧은 소설이 아닌 기분이 듭니다. 관계의 이야기라던가 각자의 시점이 다른 점은 꼭 '흑과 다의 환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마음을 강하게 울리고 과거를 떠올리는 그런 소설을 읽은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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