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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다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모음집입니다. 완전한 별개의 이야기들이지만 각각은 '바벨 클럽'이라는 동호회가 동일하게 나온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클럽은 대학 내 동아리 같은 모임인데 부잣집 자제들로 구성되어 있고 추리 소설을 읽고 서로 나누는 모임입니다. 그래서 이 책 제목 아래 'The Babel Club Chronicle'라는 소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그간 행보를 보면 요네자와 호노부는 청소년을 위한 가벼운 추리물 이외의 어른들을 위한 추리물은 다소 섬뜩한 장르로 선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 소설집도 그런 편입니다. 바벨 클럽이 동일하다는 특징 이외에 전부 일본 전통적 가문의 아가씨와 하인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습니다. 정확한 연대를 추정할 수 없게 시대는 등장하지 않지만 넓게는 쇼와 시대부터 현대까지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는 아가씨를 모시는 하인의 시점, '북관의 죄인'은 전통적인 가문의 외방 자식으로 혼자가 된 후 이 집안에 들어와 하인처럼 살게되는 이야기, '산장비문'은 새로운 가문의 별장지기를 맡게된 하인의 시점, '타마노 이스즈의 명예'는 가문의 외동딸로 자신을 섬기는 하녀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 '덧없는 양들의 만찬'은 졸부 집안의 딸로 츄냥이라는 대단한 요리사를 바라보는 주인 딸의 시점입니다.
다양한 화자를 설정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단편을 볼 때 새로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다양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단편들의 특징은 모두 마지막 부분에서 특이한 점을 깨닫게 된다는 면입니다. 으스스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때문에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좀 더 미스터리물에 가깝지만 마지막 반전(혹은 진상)을 통해서 추리물에서 느낄 수 있는 스타일을 접목한 것 같습니다.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어린 유우히는 고아로 탄잔 가문에 거두워집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가씨는 가문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추리물이나 정상적이지 못한 책들은 숨겨두고 유우히에게만 빌려주는 등 가깝게 지내는 사이로 나옵니다. 그러나 문제아였고 후계자에서 밀려난 아가씨의 오빠가 나타나 살인을 하고 이후에도 살인이 일어납니다. 유우히는 자신이 혹시 그런 것은 아닐지 두려워합니다. 결말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으로 놀래킵니다.
북관의 죄인 무츠나 가문의 외방 자식으로 태어난 아마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가문으로 가게됩니다. 따로 돈을 마련해주지만 갈곳이 없다며 그녀는 머물게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별채인 북관에 머무르며 손님을 돌봐주게 되는데 그는 죄인처럼 북관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알게되는 내막과 그가 그린 그림은 마지막에 그 정체가 밝혀지게 됩니다.
산장비문 마에후리 가문에서 일을 하다가 가문이 기울어 야시마는 타츠노 가문의 별장인 비계관으로 옮기게 됩니다. 거절을 하러 갔지만 그 집에 반해 머물게 된 야시마의 일상이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부상당한 조난자를 발견하고 도와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나선 등산회 일행들이 머물게 됩니다. 이 소설의 결말은 좀 알쏭달쏭합니다.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을 써서, 어느 쪽을 상상하던지 독자에게 결말을 맡긴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타마노 이스즈의 명예 오구리 가문의 외동딸로 태어난 스미카는 엄격한 외할머니 아래서 자랐습니다. 열다섯 살이 되는 날 타마노 이스즈라는 하녀를 할머니는 소개합니다. 겨우 할머니를 설득해서 대학에 다니게 되었는데 돌아오라는 할머니의 전보가 도착합니다. 백부의 살인으로 인해 할머니는 가문의 이런 피를 가진 자는 필요없다고 아버지를 내치고 스미카 역시 가둬두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남동생 때문에 할머니는 행복한데 죽어가는 스미카에게 이 모든 상황이 변화됩니다. 과연 타마노 이스즈가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일까요.
덧없는 양들의 만찬 한 여학생이 온실 안에 놓여진 책을 보게 됩니다. 그곳에는 '바벨의 모임은 이렇게 소멸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오데라 마리에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의 일기가 적혀 있습니다. 회비를 못내 제명을 당한 마리에는 아빠에게 얘기를 합니다. 대단한 가문의 자제들이 모여있다는 모임이란 소리에 돈을 듬뿍 안겨줍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가문은 신흥 재벌이라 그런 인맥을 원하고 있습니다. 집안에는 츄냥이라는 일류 요리사 나츠가 들어오게 됩니다.
아버지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 딸에게 이것저것 묻는데 마리에는 거실에 '메두사 호의 뗏목'의 복제화를 걸어두라 주문하고 요리사 나츠에게는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에 소개된 아밀스탄 양을 준비하라고 부탁합니다.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아밀스탄 양과 약육강식의 규칙을 따른 자들을 그린 그림이 자신의 식구들에게 딱 맞다고 생각합니다.
츄냥의 정체는 바로 이 오데라 가문과 걸맞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는 아밀스탄 양을 먹기 전에 끝나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벨의 모임이 부활되는데 단순히 이 오데라 마리에의 일기가 바벨의 모임에서 지은 소설일지도, 혹은 실제 경험담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앞의 이야기들이 혹은 이들이 만들어낸 소설이 아닐까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추상오단장'이라는 소설을 통해 여러 추측을 하게 만들었던 작가답게 이번 소설도 여러 결론을 낼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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