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에쿠니 가오리.가쿠타 미츠요.이노우에 아레노.모리 에토 지음, 임희선 옮김 / 시드페이퍼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서평


이 책은 나오키상 수상 작가 4인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유럽을 무대로 요리와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가쿠타 미츠요의 스페인 바스크 지방, 이노우에 아레노의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모리에토의 프랑스 브르타뉴, 에쿠니 가오리의 포르투갈의 알렌테주가 배경이 됩니다.

Yes24의 설명을 보니 '이 책은 일본 최고의 여성작가 4인이 2010년 10월에 방송된 일본 NHK BS하이비전 기행 프로그램 「프리미엄 8」에 출연, 각각 유럽의 슬로 푸드와 소울 푸드를 찾아 여행을 하고 그곳을 배경으로 쓴 이야기를 엮은 단편소설집이다.'라고 하네요.

나오키상 수상 작가들은 워낙 유명하니 잘 알고 있지만 정작 모리 에토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만 봤더라구요. 그래서 아는 작가는 그 작가의 특징을 찾거나 혹은 다른 점을 생각해보았고 새롭게 접한 작가는 기대감으로 읽었습니다.

일본인이 유럽을 간 이야기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느끼는 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선지 작가 특유의 성향이 그리 크게 묻어나지는 않았는데 다 읽고 나니 역시 자신의 취향대로 쓰게되는구나 싶은 면도 있더라구요.

역자 후기까지 214 페이지로 짧은 단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 짧은 분량 안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는지 놀랄 정도로 감동이 가득한 4편의 단편을 수록해놓았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해서 썼지만 결국 사람과의 관계성이 더 두드러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에는 내가 부족해서 깨닫지 못했던 그 사람의 행동을 이제는 성장해서 깨닫게 되는 모습이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다지 취향은 아닌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봤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꽤 재밌게 읽었습니다. 일본에서 기획하는 이런 단편 모음집이 아무래도 구색갖추기식의 형태를 취해서 겹치는 부분없이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각각의 느낌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각기 다른 사랑을 모습을 보여줘서 다양한 즐거움을 줍니다. 짧은 단편 안에 꽤 많은 이야기가 들은 것 같아서 그리 짧은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화려한 요리의 표현력 때문이기도 할 것 같네요.

그런데 제목이 조금 와닿질 않네요. 일본에서 어떤 상징이 있는 단어들인건지 그저 소박함을 표현한건지 잘 모르겠어요.


신의 정원, 가쿠타 미츠요 (스페인 바스크)
주인공 아이노아는 그야말로 신에게 선택됐을 정도로 맛있고 화려한 음식을 만드는 아버지를 두고 있습니다. 화려한 만찬 앞에 모두 모인 가족들에게 어머니의 병세를 알리는 회의가 시작됩니다. 이런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소박함이 좋은 아이노아는 가족과 잘 융화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죽음 이후 바르셀로나로 대학을 진학하게 됩니다. 스페인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이라는 인식이 강한 바스크 지방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남자와 여자의 할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전통이 아직도 강하다고 합니다. 그런 문화가 숨이막혔던 아이노아에게 바르셀로나의 모든 것이 신선합니다. 불평 불만이 가득했던 그녀는 마치 고향을 피해다니듯 온 세상을 여행하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NGO 단체인 어스 가든의 직원이 되어 사무국에서 일하다가 1년에 두 번 정도 각지의 난민 캠프에서 난민들을 위한 식사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만난 남자친구의 이별 통보 속에서 그녀는 아버지의 만찬을 떠올리게 됩니다. 왜 아버지가 그렇게 했는지를 깨닫고 고향에 아주 오랜만에 가게됩니다.

그토록 싫어서 떠났던 가족과 고향 풍습을 깨달음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에 좀 더 넓고 포근한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유, 이노우에 아레노 (이탈리아 피아몬테)
남편 카를로를 사랑하는 이유를 떠올려보다가 미네스트로네를 만드는 알리다. 그녀의 이야기는 어째 우울해보입니다. 14년 전 학생 때 선생님이었던 남편과 열렬한 사랑에 빠져 졸업을 함과 동시에 결혼을 한 부부. 스무살과 쉰 살의 만남이었습니다. 14년을 꼬박 미친듯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지내왔지만 카를로는 쓰려져 의식 불명 상태에 있습니다.

불안과 우울함이 가득한 이야기 안에는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기 보다 그녀의 자포자기 함을 더 찾아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녀도 행복해지지는 않을까라는 결말이었습니다. 

 


블레누아, 모리 에토 (프랑스 브르타뉴)
프랑스 브르타뉴에서도 최서단에 있는 피니스테르가 고향인 장은 파리의 별 두개짜리 레스토랑에서 디저트 담당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위독하단 연락을 받고 지긋하게도 싫어했던 고향으로 급하게 가게 됩니다.

그들은 프랑스인이 아니라 브레튼 사람들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하고 즐기기 위한 식도락이 아닌, 살기 위해 먹는 소박한 사람들입니다. 메밀가루로 만드는 짭짤한 맛의 갈색 갈레트를 크레이프라고 먹는데 도시의 달콤한 디저트를 무시하곤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장의 직업도 멸시받을 수 밖에 없지요.

게다가 미신의 종류는 어찌나 그렇게도 많은지 정말 지긋지긋한 고향을 등지고 파리로 돌아옵니다. 점점 고향의 그런 인식을 이겨내고자 철저하고 강인하게 주방장의 자리에 오르게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맞고 괜찮은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고향에 돌아가 타블 도트(식사를 제공하는 프랑스식 민박)를 운영하지 않겠냐고 제안합니다. 그토록 싫어했던 브르타뉴의 가족들이 꼭 브르타뉴의 여자를 만나야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너무 싫었던 그에게 이 운명과도 같은 사람은 브르타뉴 여자였습니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을 하고 타블 도트를 열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알게된 이야기들은 그가 알아왔던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적개심 가득하고 너무 괴롭게 했던 고향 사람들과 어머니의 다른 일면을 보게 된 것이지요. 홀로 자신을 키워야만 했던 어머니는 자신을 버리고 고향에 동화되어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싫어했던 메밀가루 크레이프도 어머니의 바람을 담아서 그의 타블 도트의 주요 상징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결말이었습니다. 어딘가 모리 에토 같지 않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에 울컥하고 감동을 주는 느낌은 다른 소설에서 느꼈던 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가 유명한 주방장으로 파리에서만 살았었다면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알지 못했겠지요.


알렌테주, 에쿠니 가오리 (포르투갈 알렌테주)
리스본에 살고 있는 게이 커플 마누엘과 루이스는 알렌테주로 미식 여행을 떠납니다. 상당히 조용한 시골 지방인 것 같습니다. 4년 반을 만나오면서 마누엘은 워낙 박애정신이 강해서 바람도 피고 여러 사람들에게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독점욕이 있는듯하고 예민해보이는 루이스는 그런 마누엘으 못견뎌합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루이스가 폭발해서 둘은 헤어지려나 했는데 이야기는 다른 방향성을 갖더라구요.

처음 만나 너무도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친구같은 연인으로 지내왔지만 안맞는 것 투성이고 점점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 루이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알렌테주에서 그런 모습이 점점 누그러들어 어딘가 편안해지는 루이스가 됩니다. 어떤 큰 깨달음이나 특별한 상황이 없이 그저 일상을 그대로 적은 듯 흘러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어떤 것보다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행위라고 하는 루이스는 이런 힘든 과정들을 딛고서 이제는 좀 더 성장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밤에 똑같은 곳을 나란히 서서 보고 있는 여덟명의 할머니는 무엇을 했던 것일지 너무 궁금하네요. 그저 같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모른 채 담아두라는 것 같아서 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전혀 다른 네 명의 작가의 다른 나라들, 다른 음식들의 이야기가 마치 조화로워보이는 것은 아마도 사랑이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살아가면서 힘든 때도 있지만 역시 그런 과정을 딛고 얻게 되는 행복감은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 음식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 나 자신이 있고 그 안에서 깨닫지 못한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삶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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