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서평에서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은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그다지 무겁진 않은 청소년 대상의 소소한 탐정물이었습니다. 이 후 '인사이트 밀'을 통해서 작가의 필력을 다시 보게 되었고 '추상오단장'을 통해 처음 읽었던 작품과 전혀 다른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는 작가입니다.
최근 번역 출간한 이 책을 읽고 싶어했을 때는 처음 읽었던 책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추측해봤습니다.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노란색이라 훈훈한 이야기일꺼라는 이미지가 있었거든요. 게다가 시작 자체가 영 힘이 없고 나른한 캐릭터가 주인공이거든요. 그런데 읽을 수록 처음 느낌과 다르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가는 기분이 들어서 읽는 내내 '인사이트 밀'이나 '추상오단장' 쪽이구나 라는 생각이 확고해지더라구요.
주인공 고야 조이치로는 바로 어제까지 은행원 출신의 백수였습니다. 나름 엘리트로 잘나가다가 병 때문에 지치고 도시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되살려 소소한 소일거리 삼아 개를 찾아주는 일을 하고 싶어서 '고야 S&R'을 차리게 됩니다.
원래는 '서치 & 레스큐'라고 적으려고 했는데 창이 작아서 약자로 쓴 덕분인지 아무도 사무실의 방향성을 모르고 개를 찾는 의뢰는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신은 탐정을 표방하지도 않건만 첫날부터 한 할아버지가 손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친구인 오미나미 히로시의 소개였습니다.
이 친구는 자신의 공무원적인 위치 때문에 도와주는 척 하며 골치아픈 거리를 친구에게 넘겼다고 할까요. 요양을 하는 동안 나른해진 성격 탓인지 전혀 임팩트 없는 주인공의 속마음 얘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동일한 상태가 되게 만들정도로 이 소설은 전혀 탐정물스럽지 않은 초반부를 장식합니다.
의뢰인의 손녀 사쿠라 도코는 도쿄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퇴사하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실종이라기보단 자의적인 느낌이 강한 상황인 것같은데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이상해서 거주지인 고부세로부터 30~40분 거리의 이 야호시까지 의뢰를 하러 달려온 것입니다.
한편 사무실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납니다. 고야의 고등학교 검도부 후배인데 자신은 어릴 적부터 탐정이 꿈이었다고 제발 써달라고 애원합니다. 한다 헤이키치, 한페로 불리우는 이 후배는 탐정 사무소의 일원이 됩니다. 친구 오미나미는 또 다시 고야를 소개하는데 그 일은 야나카 마을의 고서적의 유래에 대한 조사입니다. 거절하기엔 친구의 상황이 안좋아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한페에게 이 일을 맡기게 됩니다.
기본적인 사건의 골격은 위와 같습니다. 한페의 캐릭터로 인해서 상당히 코믹한 요소들이 종종 등장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캐릭터와 서술 방식 자체가 상당히 무거운 면이 있어서 묵직하게 이야기가 깔린 기분이 드는 소설입니다.
흔히 생각하게 되는 실소를 머금게하는 엉뚱한 탐정물은 한페라는 캐릭터가 적절할 것 같은데 반대로 작가는 전혀 탐정에 대한 꿈도 없고 패기도 없는 고야라는 인물을 중심에 둡니다. 이는 탐정물의 형식을 취하지만 조금은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일반인이 추리를 하는 방식에 더 가깝달까요. 아무래도 사건과 일반인과의 갭을 크게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실종 조사는 목격 정보에까지 도달하면 그다지 심각한 사건이 아닐까, 가벼운 이야기로 흘러갈까 시종일관 독자를 고민에 빠뜨리지만 진상은 상당히 무거운 이야기였습니다. '아니 갑자기 하드보일드로 직행을 하는건가'라고 놀랬을 정도니까요.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본격적인 미스터리 소설로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분량은 그렇게 많은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충분히 호평받을만한 소설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추상오단장'에서 느꼈던 완성도를 생각하면 이 소설과 '인사이트 밀'은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살짝 받긴 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진상을 너무 급하게 파헤친 느낌이라 전후반의 속도감이 너무 순간적으로 달라진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렇다고 별로였다는 감상은 아니고 살짝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진상과 결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주인공이 그런 성격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결론을 순간적으로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고 비로소 탐정으로 거듭난 순간이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금 무거운 이야기지만 '고야 S&R' 의 후속작도 계속 되면 재밌지 않을까란 기대도 해봤습니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은 누구에게나 고민해봐야할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평을 쓰면서 스포일러를 마구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긴 하지만 전혀 모르는 상태로 진상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굉장한 여운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그 부분의 내용을 생략해서 심층적인 책의 이야기는 하지 못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무거운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은 역시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을 읽은 후 '인사이트 밀'을 읽었을 때의 그 충격이 떠오릅니다. 이 두 소설 가운데 이 책의 집필 기간이었다는 점을 보면 작가의 의식 흐름을 조금은 추정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읽고 나서 상당히 마음의 파문이 이는 작품이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을 평범하지 않게 다뤘다는 점에서 역시나 작가의 필력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주목하고 싶은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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