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학기'를 읽고 나서 기리노 나쓰오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적잖은 거부감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얼굴에 흩날리는 비'는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미스터리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소설은 좀 평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수하다던가 지루하다는 의미의 '평범'이 아니라 대조적으로 그렇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추리물이 지니고 있는 강점은 궁금증 때문에 빨리 읽게 되고 마지막까지 읽고자 하는 호기심이 강해진다는 것이지요. 이 책도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추리물의 요소로 꼽는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마지막까지 범인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들이 여러 명이 있어야 하고 조사 과정에서 그 용의자들의 요소들이 조금씩 등장하며 범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당위성이 잘 분포되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사람의 스토리는 이러해서 죽였을 것이라는 부분이 각자에게 필요하지요. 너무 생뚱맞은 범인이어서도 김이 새고 동기가 마지막에 등장하면 중간 과정이 무시되기 때문에 재미가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그런 점을 잘 살리고 있다고 봅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꿈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전남편의 자살과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 무라노 미로. 아버지는 전직 탐정이었는데 야쿠자와 관련된 조사를 한 덕분에 평범한 일이 끊겼다는 과거를 지니고 있고 지금 그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르포라이터인 친구 요코가 갑자기 실종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이끌어져 나갑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조폭과 관련이 있는데 그들이 맡긴 자금 1억 엔이 요코와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친구인 미로에게 들이닥쳐 숨겨주고 있다든지 공범인 가능성을 의심하는 이들과 요코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요코의 인간관계나 진행되고 있는 일의 내용, 요코의 남자친구인 나루세의 전부인과 그 뒤에 있는 조폭들의 이야기가 뒤죽박죽 등장합니다. 이런 큰 스토리 라인도 결코 평범하지는 않지만, 종종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네오나치와 관련된 옛 동독 지역의 문제, 트랜스베스타이트(이성의 옷을 즐겨 입는 복장 도착자), SM이나 시체 사진 애호가들 등 평소 전혀 접할 수 없는 별난 소재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단순히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다는 점 이면에 한 여성의 일그러진 욕망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처지에 콤플렉스를 갖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날카로워진다던가 그 취재대상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상황도 낳게 됩니다. 그리고 겉치레가 중시되다 보니 금전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이것이 또 다른 큰일을 원하게 되는 욕망으로 계속 반복되면서 결국 죽음에 닿게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흔치 않은 일들을 접하면서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주인공 미로는 정말 탐정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인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때는 조금 불합리할 만큼 요코에 대한 우정을 드러내고 또 어떤 때는 완전한 명탐정 같기도, 어떤 때는 평범히 상처입은 여인 같기도 한 모습에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기획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물의 잠, 재의 꿈', '로즈가든', '다크'로 여탐정 미로 시리즈가 이어진다니 다음 권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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