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서평

수상작도 다양하고 이름도 유명한 작가이지만 개인적인 취향과 맞지 않는 줄거리 탓에 늘 후순위로 밀렸던 작가였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시도해보게 되었습니다. 얇은 분량 탓에 가볍게 보려고 선택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제목대로 내용은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읽으면서 이 소설은 서평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을 정도로 불유쾌한 인간의 감정들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이 소설로 작가는 2004년 제17회 시바타 렌자부로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야기는 소설가의 남편이 원고와 함께 편지를 편집부로 보내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아내가 실종된 상태이고 이 원고는 실제 경험담을 쓴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녀는 16살에 파격적인 작품으로 데뷔를 한 소설가이지만 밝히지 못했던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1년간 감금을 당했던 피해자였습니다. 이 소설 속 사건이 실제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고 하네요.

자전적 소설인듯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르포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에세이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문체적으로 봤을 때 독특한 점은 상당히 담담하게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사건을 담담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술자의 강한 감정 표현이 종종 등장하는데도 어딘가 냉정한 어조로 그것을 설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 소설에 대한 서평을 쓰고자하는 마음이 들었던 대목은 마지막에 한번 더 덧붙여진 남편의 편지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물론 진실이긴 하지만 지금껏 읽어온 이 이야기가 사실은 소설가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고 덧붙여지기도 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입니다. 그 부분을 읽고 나서 여태까지 읽었던 앞의 내용들이 재구성되면서 사건에 대한 인식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작가가 참으로 단순한 방식을 써서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다시 상고시키게 만드는 힘을 보인 것인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극중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했던 '상상'을 써내는 소설가의 힘을 이렇게 작가 스스로가 독자에게 느끼게 했던 면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소설 속에서 사건 자체의 묘사보다는 다른 부분들이 훨씬 많이 등장합니다. 한 소녀가 유괴되기까지의 과정이나 그 이후 사람들의 시선, 자신의 변화같은 것들을 진득하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이런 스타일의 소설이 취향이 아닌 분이라면 좀 지루할 법할 것 같습니다. 검색해보니 역시 이 작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더라구요.

또 다른 독특한 면은 유괴범의 정체가 소아성애자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을 것 같습니다. - 물론 그의 정체에 대해서 확실히 규정해놓지 않아서 단언할 수 있으지는 모르겠습니다. - 흔히 이런 사건들에는 그런 범죄로 이야기되기 마련이고 극중에서도 되려 범인이 아닌, 선량한 일반 시민인 구경꾼들이 더 추악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스톡홀름 증후군(범인과 인질이 동조하는 현상) 같은 심적 변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마지막을 읽고 나면 이 주인공은 그런 '스토리'를 원하는 추악한 다수의 구경꾼들에게 이 이야기를 먹이처럼 던져주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에 옮길 정도의 자신은 없었겠지요. 결국 그런 그녀가 이 원고를 편집부에 전달하기를 원하면서 실종이라는 선택을 한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 속에는 '소설'이 주는 상상에 관한 모호함만이 등장합니다. 실제 사건을 겪은 피해자 본인이 사건을 기술하면서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곳곳에 허구의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그녀의 실종은 무엇을 원하며 그 결과는 어찌되었는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너무 슬픈 사건과 가해자가 실제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과 더 잔인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괴롭기 때문에 별은 3개 정도로만 매겨봅니다. 

 


책 정보

Zangyakuki by Natsuo Kirino (2004) 
잔학기
지은이 기리노 나쓰오 
펴낸곳 (주)황금가지 
1판 1쇄 찍음 2007년 5월 10일 
1판 1쇄 펴냄 2007년 5월 15일 
옮긴이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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