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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쇼와 46년(1971년)부터 60년(1985년)까지를 배경으로 한 연작 경찰소설입니다(띠지에 적힌 설명은 잘못됐네요). 그러나 시간 순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약간의 다른 시대감을 갖고 있어서 소소한 재미가 있더라구요. 저자는 '얼어붙은 송곳니'로 제115회 나오키 상 수상작가 입니다. 유려한 문체가 상당한 사실감을 전해줘서 실화라고 해도 믿을 법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원제는 '자백 형사 · 도몬 코타로' 입니다. 주인공인 형사 도몬의 이야기이지만 각 에피소드 앞에는 범인이나 피해자의 이야기가 등장해서 연작 소설이지만 매 부분 새로운 기분으로 읽게 되는 독특성이 있습니다.
낡은 부채
한 아줌마가 젊은 청년에게 자신의 살인을 도와주면 돈을 건네주겠다는 제의를 해옵니다. 그리고 사건 자체의 이야기가 없이 시체가 발견되어 형사들의 수사 부분으로 넘어갑니다. 시점은 디즈니랜드가 개장을 앞둔 쇼와 58년(1983년) 4월. 도몬의 두 딸이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입학한 때입니다.
시체가 발견되고 너무 허술한 면에서 쉽게 범인을 추측할 수 있었지만 뒤끝이 좋은 사건은 아닙니다. 살인 사건이란 것이 다 그렇겠지만요. 과학 수사가 나오지도 않고 범인의 범행 스타일 같은 것들은 평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80년대가 떠오르는 묘한 느낌들이 산재해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이 '2010년에 작가가 쇼와시대를 그리워해서 이런 소설을 쓰게 된 계기였을까' 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단순히 범행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청년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되는 면이 있어서 좀 감탄을 했습니다. 청년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런지요.
돈부리 수사
택시 안의 기사와 손님. 그러나 손님은 내리자마자 택시로 돌아와 살인을 하게 됩니다. 큰 딸이 중 3이라는 것을 보니 시대는 앞선 이야기의 1년 전인 것 같습니다. 작가는 당시에 있었던 실제 사건들을 이야기 속에 삽입함으로써 시대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소설 자체가 일상을 얘기한다거나 소시민적인 부분이 있어서 마치 실화같은 기분이 들게하는 것 같습니다.
피의자의 이야기는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배고픈 시절 돈부리(덮밥) 한 그릇으로 범인들이 자백을 하게 되었다는 그 이야기도 아마 인간미 넘치는 시절이었다는 면을 드러내고 싶었던 작가의 취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데루미와 하루오는 커플로 보입니다. 데루미가 뒤늦게 임신임을 알았는데 그다지 성실해보이는 여자는 아닙니다. 장면이 바뀌어 형사들은 이 둘을 좇고 있습니다. 빈집털이범인데 400건이 넘게 도통 잡지를 못해서 골치가 아픕니다. 시대는 도몬의 둘째 딸이 태어나기 전입니다. 쇼와 46년(1971년) 전후입니다.
시대가 그렇다보니 앞서 유능했던 도몬이 아니라 탐문 수사 때에 융통성이 조금 없는 젊은 도몬의 모습이 보여서 재밌습니다. 그리고 맞지 않지만 수사만은 제대로 잘 하는 배태랑 형사와 함께 하는 이야기도 눈에 띕니다.
아메리카 연못
버스 차장으로 일을 하는 30대 골드 미스 후사코는 여행도 잘 다니고 우아하게 삽니다. 후배의 비싼 목걸이를 강탈하다시피 빌려가서는 시체로 발견됩니다. 도몬은 경시청 수사 1과의 계장으로 발령이 나게 되고 이 사건을 맡습니다. 큰딸이 중 2라는 것으로 보아 두 번째 이야기보다 1년 전인 1981년으로 추정됩니다. 야구 이야기나 음식들로 시대감을 알려줍니다.
시체가 나체에 교묘한 자세로 있었다는 점에서 여러 추측들이 오가고 미군들이 많이 오는 일대라 그들에게도 의심이 향하지만 의외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 변호사도 등장합니다. 자백을 강요해서 무리하게 취조하지 않았냐는 점입니다. 그러나 범인이 감사히 여긴다는 편지를 증거로 제출하면서 잘대응합니다.
사실 화려한 형사물이랄지 빈틈없는 트릭과 조금은 상대하기 힘든 사이코패스의 범인같은 자극적인 이야기가 이 소설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강력한 형사물을 찾는 분들에게는 시시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소소한 스타일의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물론 화려한 형사물도 좋지만, 되려 이런 소소한 류의 형사물이 더 쓰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갖고 있으니까요.
그리 뛰어난 노하우를 지닌 자백 형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밋밋하기만 한 자백의 소설은 아닙니다. 1980년대의 시대감을 잘 드러낸 작가의 80년대 사랑을 엿볼 수도 있고 조금은 바보같은 범인들의 모습도 등장해서 되려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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