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남
신도 준조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서평

이 소설은 아주 독특합니다. 여러가지의 소설이 삽입된 액자 소설입니다. 화자는 영화 조감독으로 장소 섭외를 위해 거리를 헤매다가 우연히 지도를 들고 다니는 남자를 알게 됩니다. 그는 완전히 지도를 숙지한 듯 너무 쉽게 설명을 해줍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지도에 무슨 글이 빽빽하게 적혀 있습니다. 몇 번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그의 능력 덕분에 장소 섭외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되면서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는 지도에 소설을 적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날 때부터 음감을 타고난 천재 소년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 이야기 속에는 지명이 꽤 많은 항목을 차지하며 등장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도쿄 도 23개 구의 각각의 마크에서 착안해서 여러 경기를 통해 그 마크를 뺏는다는 조금은 하드보일드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독특한 점은 이야기의 장르가 완전히 변했다는 것입니다. 앞의 이야기는 동화 같았다면 이번에는 만화같습니다.

잠시 잠깐의 짧은 이야기들의 편린이 등장하다가 중요한 '무사시와 아키루'의 사랑 이야기가 꽤 많이 등장합니다. 혹시 이 이야기는 지도남의 실화일까 추측도 해봤지만 결국 지도남에 대한 점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추리적 요소를 취하고 있고 등장인물 두 명이 일부 추리해내지만 결국 그 이야기의 진상을 밝히지 않은 채 끝을 냅니다.

지도남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가 아니라 혼자 그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이 이야기의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 속에는 공통점이 있고 공통된 인물이 있습니다. 분명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그녀가 있습니다.

쉬지 않고 걸으며 쉬지 않고 읊어대며 쉬지않고 써내려가는 지도남. 호쿠사이가 자신의 그림 속에 늘 후지 산을 등장시켰던 것처럼 지도남에게도 그것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러브 스토리. 그러나 이야기들은 그녀를 숨기고 숨겨서 전혀 다른 공간 안에 놓이게 만들어놓습니다.

대체 지도남에게 그녀는 어떤 존재이길래 이렇게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요. 그녀는 죽었을까요. 그래서 그는 또 다른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지도에 새로운 이야기로 그녀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려나요. 의문 투성이의 소설이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몇 편의 지도남의 소설들이 흥미진진해서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독특하면서도 잔상이 강한 소설입니다. 


 

책 정보


CHIZU OTOKO by Shindo Junjo (2008) 
지도남 
지은이 신도 준조 
펴낸곳 (주)문학수첩 
초판 1쇄 인쇄 2010년 10월 1일 
초판 1쇄 발행 2010년 10월 7일 
옮긴이 이영미 

 


   p. 151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p. 160
   ... 현실에서는 이미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을까. 이별했을까, 죽었을까. 그건 지금으로서는 큰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지도남이 호흡하는 세계에서는 현실(이쪽)의 사정은 픽션의 파도에 삼켜져 버린다.


   p. 161
   "그녀에게 모든 이야기를 바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헌사적 뉘양스가 아니야. 그런 어중간한 차원의 얘기가 아니었어."

   지도남은 침묵했다. 그 순간 여기에는 존재했다.

   "그녀가 살아가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얘기하는 거야. 쓰는 거지."

   지도남은 침묵했다. 아, 지금 어딘가로 갔다!

   "지도첩에는 그녀가 있는 거로군."

   그래서 지도남은 돌아오지 않는다. 지도첩(그쪽)에 틀어박혀 지낸다.


   p. 162
   다양한 양식을 쓰며 해박한 지식과 비뚤어진 망상의 오버플로로 토지와 토지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지도남은 ㅡ 지도를 쇄신하고 있다. 반복하는 말, 집적되는 이야기. 등장인물들의 이동 선분과 감정의 궤적. 기록됨으로써 비로소 편재하는 이야기가 공간을 다 덮어서 ㅡ 세계는 쇄신된다. 정밀함에 흔들림이 없는 비상한 공간 파악 능력으로 풀어놓는 공간(그곳)에는 생생한 그녀가 잇달아 모습을 드러낸다. 어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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