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제124회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2000년 하반기에 야마모토 후미오의 '플라나리아'와 공동 수상했습니다. 연작은 아닌 단편집이지만 40대 전후의 가장이 주인공이라는 점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면에서 통일성이 있습니다.
작가는 흔히 얘기하는 비타민 A, B, C 말고 비타민 F를 정해서 F로 시작하는 단어를 키워드로 담아서 썼다고 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있는 '필수지방산인 비타민 F를 접어두고' 라는 언급도 후기에서 하고 있긴 합니다.) 그 키워드는 각각 Family, Father, Friend, Fight, Fragile, Fortune로 잡았는데 작가로서 결국 Fiction,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홈드라마 류의 훈훈한 이야기가 많이 읽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취향이 아닌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편이라 집중해서 읽었는데 반대의 경우에서 생각해봤을 때 이 이야기의 장점은 무엇일까하고 고민해본 결과 닿은 결론은 작가의 담백한 필력입니다. 문체 자체가 상당히 깔끔해서 군더더기가 없는 기분이 듭니다. 간혹 여기에 이런 문장은 굳이 쓰지 않아도 될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사실 줄거리만 놓고보면 그리 특별해 보일 것도 없는 이야기인듯도 한데 맛깔스럽게 잘 써놓은 인상입니다. 지나치게 정의를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멋있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가끔은 불행하거나 좋지 않은 때도 있었지만 결국 훈훈한 결말들 때문에 기분 좋아지는 소설인듯 합니다.
주먹
입사한지 16년의 마사오는 이제 술자리에서 흥분해서 놀지 않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동기가 그러는 것을 보면 서글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정의를 좋아했던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성가신게 싫고 젊은 아이들의 무모함이 겁이 나는 중년. 그런 그에게 같은 아파트의 문제 중학생이 다가오게 됩니다. 아버지를 때렸다느니 소문이 좋지 않은 요스케와의 이야기.
만약 안어울리게 운동으로 다져진 의외의 중년! 숨은 영웅이 등장하는 내용이었다면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솔직한 중년의 애환을 보이고 그린 것 같아서 사실적이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싸워서 제압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떨어진 복권
부인의 수술로 인해서 그간 잘 몰랐던 아들과 단 둘이 된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슈이치는 아들 유키와 어색한 상황 속에서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전혀 아버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회상하다가 늘 복권을 사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아 아들의 모습이 눈에 차지 않고 화가 나지만 결국 아들의 '아빠'란 표현만으로도 뭉클해지는 아빠의 마음을 잘 그린 것 같습니다.
판도라
귀엽기만 한 중학생 딸의 범죄에 놀라고 남자친구가 있음에 놀라고 첫경험에 놀라는 아버지.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 그 때문에 아내를 다시 보게 되고 괜시리 첫사랑의 연락처를 묻게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여자를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아내 덕분에 이 힘든 과정들을 극복해내는 이야기였습니다. 딸도 이런 경험들을 통해 성장했을 것이고 아버지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셋짱
유스케는 중학교 2학년 딸 가나코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학급 위원도 하고 똑똑해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부터 전학생 셋짱이 이지메를 당한다는 이야기를 종종해왔는데 그것이 자신의 딸의 경험담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딸이 자존심 상할까봐 내색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부모의 심정이 절절히 표현됩니다. 자신의 상처 대신 '대역 히나'를 강에 띄워보냄으로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모습이 잘 그려져있습니다.
바닷가 호텔에서
서른 일곱살의 다쓰야. 어린 아들과 딸이 있는데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부인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7년 전 부부행세를 하며 사귀었던 유키에와 머문 이 호텔은 17년 후 편지를 대신 보내주는 '미래 포스트'를 했습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자신이 걷지 못한 인생을 그리워하는 다쓰야. 결말에 조금 안도가 되었던 이야기였습니다.
부스럼딱지 눈꺼풀
재수생 아들과 중학교 입학 전의 딸을 가진 부부. 이제는 아이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짐작도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딸에게 문제가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 사립중학교 입시에서도 성공한 딸이라서 너무 성공만해 와서 실패에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은 사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딸을 위로합니다.
어머니 돌아오다
아들의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요구하고 다른 남자와 살았던 어머니. 아들은 그런 어머니가 미워 손녀들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죽었다고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재결합을 원한다고 합니다. 말도 안되게 화가 나서 고향으로 향하는데 바람을 피워 누나와 이혼한 전 매형이 되려 이 처남을 훈계합니다. 가족이 떠나고 돌아가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시각. 어쩌면 다른 이야기들 보다 가장 독특한 부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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