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에 해당됩니다. 1785년에 태어난 토머스 드 퀸시는 상류층으로 편승하고자하는 부유한 상인을 아버지로 두었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어 이후로 상당히 힘겨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편'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아편 중독에 관한 부분보다 자서전적 부분들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자서전의 형태를 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뛰어난 소년이었지만 거듭되는 가난으로 인해 지속적인 학업을 유지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수반된 위장장애와 치통으로 인해 시작한 아편 중독 덕분에 상당히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아직 아편이 위험하다고 금지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아편 중독 자체의 문제점은 그리 대두되지 않았을꺼란 생각이 듭니다.
제게 문학 작품을 통해 만났던 '아편중독자'라는 이미지는 중국에서의 처절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며 사는 그런 노골적인 중독자가 있었고 유럽 일대에 조용히 퍼져있던, 안그런척 하면서 사실은 알게 모르게 다들 아편을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시대는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전이고 아편이 금지되기 전이기 때문에 상당히 편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이들이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울면 한방울씩 먹이고 상비약처럼 사용되었다고 하니 지금처럼 '양귀비에서 추출한 마약'이라는 정의와는 또 다른 이미지였겠지요. 술보다도 더 저렴했다고 하니까요. 대체로 1810년 전후를 기술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 글은 '런던 매거진'에 익명으로 연재되었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적은 분량입니다. 왜 아편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그 다음은 아편이 생각보다 위험한 반응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관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편중독으로 인해 겪은 환영, 꿈 속에서의 불안과 우울, 공간과 시간 감각적 문제, 과거 회상등의 일들을 기술합니다.
이 분량들이 1/3씩 차지하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아편 중독에 의한 문제점은 그다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고 그의 좋았던 시절들을 회상하는 부분과 아편의 좋은 점을 설명하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아편이 술보다도 나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기술할 때에 상당히 자기 방어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술이 감성적으로 사람을 만든다면 아편은 이성적으로 만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아편중독으로 인해 고통 받은 부분들은 앞의 자세한 기술과 달리 상당히 적어서 요점 정리를 해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가 결국 중독을 이겨냈다는 것으로 마무리 하면서 부록으로 그것이 쉽지 않았다는 또 다른 고백의 글이 이어집니다.
그는 평생을 가난에 시달렸고 덕분에 육체적 고통을 맛봐야했습니다. 그가 일부 학자들에게 문학적으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고백'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에 박수를 받지만 결국 이후에 자신의 이름으로 이 책을 내었을 때부터는 '아편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차라리 이 글을 에세이가 아닌 소설로 만들어냈다면 더 극찬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리얼리티를 지닌 소설과 저널리스트의 글은 확실히 독자의 평가가 다르니까요.
수많은 문인들이 극찬을 했다고 하지만 저는 사실 그들이 비난한 도덕성에 더 치중해서인지 그다지 감명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좀 더 약삭빠르게 인생을 살지 못한 '토머스 드 퀸시'라는 인물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했다는 그가 그 능력을 살려 좀 더 유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면, 그리고 자기 고백이 아닌 좀 더 쉬운 방법을 쓰지 못한 그의 일생이 참으로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아편을 복용하지 않은 사람이 없던 시절에 당당히 스스로의 경험담을 엮어낸 글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이 책에도 등장하지만 없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표현들에 많은 인용들이 사용되어 그 시대 이전의 작품들을 어떻게 인용했는지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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