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공예 무형문화재 12인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집입니다. 배용준의 책인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으로부터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2편이 '한국의 시장'이고 이 책이 3편에 해당합니다. 에세이다 보니 작가의 추억 얘기라던가 취재차 나서면서 겪은 일들이 좀 자유롭게 써진 편입니다.
한산모시짜기, 염색장, 침선장, 옹기장, 사기장, 나주반장, 소목장, 염장, 나전장, 백동연죽장, 낙죽장도장, 배첩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사실 우리 전통 문화인데 낯선 단어가 많습니다. 그나마 들어본 단어들도 그것만 안다고 할 수 있지요.
01 한산모시짜기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 선생)
모시는 서천군 한사면이 유명해서 저자는 취재를 하러 갑니다. 모시는 습기가 있어야 안끊어지기 때문에 새벽장이 선다고 합니다. 한산모시짜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로 저자가 직접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소개합니다. 그냥 단순히 수확해서 실을 뽑는 것이 아니라 태모시를 이로 가늘게 쪼개야하는데 입술과 혀에 피가 나고 나중엔 굳은 살이 베길 정도의 힘든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모시 한 필을 짜는데 꼬박 석 달이 걸린다고 합니다.
언젠가부터 이상하게 모시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에어컨 잘 나오는 도시에 살아선지. 뽀얀 모시도 이쁘지만 색색 곱게 물들인 모시들도 새삼 이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02 염색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정관채 선생)
예로부터 귀하게 여기었다는 쪽빛인 파란색. 그 염색의 세계를 살펴봅니다. 모 광고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는 그 장인이었습니다. 어찌나 청아한 파란색인지 눈을 못뗄 정도네요. 게다가 한가지만으로 나오는게 아니라 농도가 다르게 염색된 원단들을 쭉 늘어놓으니 그 자체로도 예술인 것 같습니다.
03 침선장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구혜자 선생)
바늘 침에 실 선이라는 뜻으로 부녀자들이 규방에서 바느질로 할 수 있는 일과 복식 전반을 아우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바느질만을 잘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에 앞서 그 옷을 디자인해야하는 부분까지 생각해야하고 옷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편한지를 생각해야하고 옛것을 담아내야하는 전통도 함께 들어있는 것이 침선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04 옹기장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9호-나호 옹기장 백광훈 선생)
옹기는 오지그릇과 질그릇이 있는데 유약을 발라 굽는 오지그릇을 도기에 속하고 유약을 바르지 않는 질그릇은 석기에 속합니다. 옹기는 진흙인 차진 흙으로 만드는데 차지지 않은 매질을 반 섞어야 찢어지지 않고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옹기의 좋은 점은 숨을 쉰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실험으로 더운날 아스팔트 위에 놓고 신선도를 측정했다고 합니다. 플라스틱, 유리와 달리 물맛도 변하지 않고 열대어도 하루 이틀만에 죽는 것이 옹기는 열흘에 한번 물을 갈아줬더니 살았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쌀독, 김치독, 물독, 장독이 있었지만 요즘은 사용이 많이 줄었지요. 왠지 장독대가 늘어선 풍경은 애잔한 생각이 들곤하는데 우리 것이 너무 없어지고 세상이 달라져버린 것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 같습니다.
05 사기장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사기장 방곡 서동규 선생)
모래로 아름다운 그릇을 만드는 사기장. 조선시대 도자기하면 떠올리는 조선백자는 주로 경기도 여주와 이천등에서 하얗고 입자가 가는 모래 '백토'를 왕실과 관에서 쓸 용도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바스라진 '사토'가 지천이라 밥그릇, 사발 등의 식기와 요강 등 서민들이 쓰던 단단한 생활자기를 많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06 나주반장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 나주반장 김춘식 선생)
나주반인 소반을 만드는 무형문화재 선생이지만 지정되기 전까지는 공방에서 상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나주반은 임금에게 진상을 했던 명품 중 하나였는데 입소문을 듣고 나주반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해서 50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정말 상이 날렵한 느낌도 들고 소박한 느낌도 드는 것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판매보다는 연구에 치중해서 좋은 나무를 사기 위해 금전적 문제가 많았다는 솔직한 글도 기억에 남습니다.
07 소목장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소목장 김순기 선생)
우리나라 전통 창호를 만드는 장인이라고 합니다. 소목장은 가구, 창호, 문방구 등 세간을 만드는 것이고 궁궐이나 사찰을 짓는 대목장으로 목재를 다루는 장인을 나눕니다. 열네 살 되던 해에 대목장 밑에 들어가 집 짓는 일을 돕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목공소를 차려서 일을 하다가 12년동안 밑에서 일했던 아이에게 맡겼는데 1년 후 자기 가게를 차려 나간 후에 경쟁이 되지 않으려고 규모를 줄여 문화재 쪽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원래 아름다운 문살을 좋아하긴 했는데 이제는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08 염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조대용 선생)
'발 염(簾)'자를 써서 '발장'인 발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조대용 선생은 통영대발을 만드는 장인입니다.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실로 엮어서 만든 가리개를 대발이라고 합니다. 통영에도 대나무가 자생하는데 전통의 통영대발은 통영 해안가에서 자라는 '시릿대'로 만듭니다. 증조할아버지부터 4대째 이어져오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요즘은 도시에서 커튼이나 블라인드 덕분에 발을 보는 것이 뜸해진 것 같습니다.
09 나전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송방웅 선생)
소라 나(螺) 비녀 전(鈿)은 순우리말로 자개입니다. 주로 전복 껍데기를 가공한 것을 자개라고 합니다. 나전칠기는 대체로 목기를 사용하는데 나전을 붙이고 옻칠을 하기 전 뼈대에 해당하는 목기를 백골이라고 합니다. 백골은 소목장이 만들고 여기에 나전을 붙이고 옻칠을 합니다. 그리고 두석장의 손을 빌려 경첩, 자물쇠 등의 장신구를 달아야 완성됩니다. 그래서 나전칠기를 종합예술품이라고 합니다.
10 백동연죽장 (중요무형문화재 제65호 백동연죽장 황영보 선생)
잎담배를 칼로 썬 것을 살담배라고 하는데 담뱃대에 살담배를 비벼 넣어 피웠다고 합니다. 담뱃대는 입에 물고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물부리'와 담배를 담아 태우는 '대꼬바리' 그리고 물부리와 담배통을 연결하는 '설대'로 구성됩니다. 백동연죽에서 대나무로 만드는 설대를 제외하고 모든 금속은 백동(니켈과 구리의 합금)으로 만듭니다.
11 낙죽장도장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한병문 선생, 전수조교 한상봉 선생)
낙죽장도는 대나무로 만든 칼집과 칼자루에 불에 달군 인두로 글을 새겨 장식한 칼입니다. 호신용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가진 생각이나 사상이 담긴 글을 새겨 넣었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워낙 찾는 이 없고 잊혀져 가는 낙죽장도여서 도구를 만드는 것부터 힘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무형문화재 심사를 한 전문가가 낙죽장도는 처음들어 본다고 퇴짜를 놓은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단 하나의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낙죽장도 하나를 만드는데 약 한 달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12 배첩장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 배첩장 홍종진 선생)
사람이 직접 책을 매고 꾸미는 일로 흔히 북아트라 하는 장정(裝幀, 裝訂)은 제본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전통 장정은 두루마리 식의 '권자본', 병풍식의 '선풍장', 나비 날개 모양으로 책으로 엮은 '호접장'과 익숙한 전통 서책인 '선장본'이 있습니다. 배첩도 재료가 좋아야하는데 요새 시중의 종이는 100년도 채 못 돼 바스러지는데 우리 전통한지는 200~300년이 지나도 깨끗하고 잘 보관하면 1,000년도 유지된다고 합니다. 한지는 한 차례 펄프가 단 1퍼센트도 섞이지 않은 오직 닥나무로만 뜬 것을 주문해서 쓴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사진에 짧은 글이 실린 페이지가 몇 장되는데 괜찮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열심히 장인들을 취재하고 글들을 담아내고 난 후에 읽게 되는 고즈넉한 페이지라 더 그랬습니다. 장인들은 단순히 한가지만을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한가지만이 아니라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것을 거치면서 완성해나가는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요.
너무도 눈에 익은 것들인데 최근에는 보기 힘들어진 것들도 있지요. 우리의 것이 소중하다는 것도 점차 그 수가 줄어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을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냈고 인정받은 그 분들의 치열함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과 내가 전수받는 사람은 아니지만 늘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점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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