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타 행진곡' 은 '제2차 대전 이전에 있었던 마쓰다케 키네마 가마타 촬영소의 소가(所歌). 노래 가사에 영화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과 사랑을 담았음ㅡ옮긴이(p. 47)'이라고 역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 86회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제목에서 활기찬 느낌이 들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교토의 영화 촬영장이 주무대이고 주인공은 '긴짱'이라고 불리는 주연 배우입니다. 그리고 화자는 '야스'와 '고나쓰'로 두 개의 장으로 나눠져있습니다.
긴짱은 정말 최악의 인간입니다. 아주 대단한 배우도 아니면서 주연이라고 거들먹거리고 인심쓰는 듯 엑스트라 배우들에게 고기를 사주지만 얼마나 먹는지 야채는 먹는지 계란을 더 시키는지 이런 세세한 것을 꼼꼼히 봐뒀다가 폭군으로 변신합니다. 게다가 먹는 양까지도 이래라 저래라할 정도로 이상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따릅니다.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추켜세웁니다. 철저하게 신봉하고 희생합니다. 그 중에서 야스는 정도가 심합니다. 그는 나름 대학도 나오고 시나리오도 쓰는 인물인데 긴짱에게 설설 깁니다. 그리고 다른 역할 제의는 무조껀 거절하고 오직 긴짱을 돋보이는 엑스트라역만 자진합니다. 게다가 그 역도 두들겨맞는, 얼굴조차 나오지 않는 역이고 긴짱도 그를 정말 때리고 칼로 찌르는데도 그는 마치 하나의 종교처럼 그를 맹신합니다.
긴짱은 한자도 제대로 모르는 중졸입니다. 그의 연기가 대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의 추종자들 이외의 반응이 조금 등장하는데 그다지 오래갈 배우일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겸손함조차 없고 노력이나 깊이있는 연기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클로즈업되느냐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여성편력은 어찌나 심한지 그러다가 한 여자를 야스에게 데려옵니다. 한 때 잘 나가던 배우였던 고나쓰. 그녀도 이제는 나이가 들고 몇 번의 여성편력을 경험하면서 야스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임신을 하고 긴짱은 어린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그런 그녀를 야스에게 인심쓰듯 넘깁니다. 야스는 그녀의 팬이었지만 아무 흑심없이 그녀를 호적상 부인으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고나쓰는 긴짱을 그리워하고 당연히 야스를 싫어하지만 점점 야스의 성실함과 안정된 생활에 적응해갑니다. 그러다가 긴짱은 어린 여자와 결혼이 잘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긴짱 때문인지 여자쪽 때문인지 나오지는 않지만 긴짱이 고나쓰를 잊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고나쓰는 긴짱에게 가지 않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긴짱은 휘청이게되고 야스와도 맞지 않게됩니다. 야스는 이상하게도 고나쓰와 함께 행복해지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긴짱과의 관계만 생각하고 긴짱만을 우선시합니다. 그래서 결국 긴짱을 위해 생명보험까지 들고 위험한 스턴트을 강행합니다.
우선 내용으로만 보면 지독히도 우두머리에 설 수 없는 가련한 한 남자가 보잘 것 없는 한 남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랑도 명예도 의미없이 오로지 한 남자를 위한 삶만을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행복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안주합니다. 그리고 죽을지 몰라도 그것이 마치 인생의 신념인듯 맹목적으로 돌진합니다.
자신만의 기쁨을 위해 살았던 폭군 주인공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보내게 되고 현실에서의 길을 어느 정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는 이제 곧 추락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스가 있는 한 그는 자신의 추락도 인정하지 못한채 계속해서 폭군의 연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 소설은 지독하게도 어이없는 인물들이 출현하여 서로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서로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만 보면 별 다를 것 없는 이야기이지만, 이 모습이 바로 일본의 가부장제도를 상징하고 더 나아가 천황을 상징한다고 역자는 표현합니다. 사실 소설만 놓고 보면 그런 상징성은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의미는 부여가 되어야 비로서 더 한 결과를 낳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제일교포 2세로 태어나 일본에서 많은 연극을 통해 각본가와 천재 연출가로 명성을 얻었다고 합니다. 1970~80년대 '쓰가 붐'이라 불릴 정도로 연극계에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장본인이며 필명도 언젠가 공평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의 'いつか公平'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역자나 평론가들의 평가를 떠나서 단순히 한 인간으로써 정말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커다란 문제나 사회 현상이 아니라 단순히 내 자신은 어떠한가를 항상 생각해보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한 인생의 한 몫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간은 서로 기대어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쓰여진다는 그 한문 이야기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좀 더 자신의 것을 바르게 세워서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면 함께 파멸로 가는 길은 없지 않을까란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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