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픽션으로 실존하는 개인이나 단체,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 는 명시에도 불구하고 2002년 미쓰비시 자동차의 대형 트럭 타이어 분리에 의한 사상 사건과 리콜 은폐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역자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습니다(p. 606). 얼마 전에는 실제 도요타 자동차 리콜 사태도 있었지요.
저자 이케이도 준은 실제로 소설가가 되기 전에 미쓰비시 은행에서 근무를 했었다고 합니다. 국내 출간된 그의 단행본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을 통해 은행의 소소한 모습들을 자뭇 미스터리인지 외로운 현대인의 모습인지 모를 독특한 감각으로 그려냈습니다.
이 소설을 엄청 인상적이고 독특한 느낌으로 괜찮게 봤기 때문에 신뢰가 가는 작가이긴 했지만 본 소설은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데다가 역자의 후기까지 608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입니다. 그래서 읽기 전에 나름의 각오와 숨고르기가 필요했지만 많은 후기들을 통해서 호평 받았던 저력은 역시 읽어봐야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을 비롯한 광고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소설의 중심은 트럭에서 빠져나간 타이어 때문에 한 주부가 죽는 사건이 중심이 됩니다. 그로 인해 위험해진 영세 운송 회사의 사장이 주인공입니다. 선대를 이어 사장이 된 그는 정말 매달 몇만엔 수준의 이익밖에 남지않는 작은 운송 회사를 경영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의 의구심을 다 버릴 수 있을만큼 정비가 잘 되어있고 트럭이 낙후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강점은 단순히 한 사건을 통한 리얼리티적인 과정을 그린 곳에서 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의 등장인물들은 다양합니다. 문제의 트럭을 만들어내는 호프자동차. 그 안의 사원들과 경영진. 그리고 같은 계열사이며 영세 운송 회사인 아카마쓰 운송의 주거래은행인 도쿄호프은행, 훗날 아카마쓰 운송에 힘이 되어 주는 하루나은행, 호프자동차의 트럭을 구입하여 꾸려가는 수많은 운송 회사들. 문제를 발견하고 기사를 좇는 주간초류 기자와 경찰, 피해자 그리고 주인공 아카마쓰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도 또 다른 세계로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제가 처음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강한 인상을 받은 소설이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였습니다. 아무래도 지면의 한계로 인해 단 몇명의 용의자로 한정되는 이야기완 달리 실제 사건이 발생하면 수많은 목격자와 관련 인물들이 등장하는게 사실이지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 캐릭터에 집착을 하게 마련일 것 같은데 단순히 몇 주요 등장인물에 한정 시키지 않고 끝도 없을 것처럼 쏟아져드는 관련 인물들로 인해 정말 질리면서도 놀랍더라구요. 이 소설도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좀 더 그들의 관점을 살리고 있습니다.
크게는 아카마쓰 운송 사장이 주인공이고 그를 상대하는 호프 자동차의 사와다, 아카마쓰 운송의 거래를 담당하는 도쿄호프은행과 반면 호프 자동차의 거래를 담당하는 본점의 이자키가 주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의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처신을 하는 것으로 각 직업에 따른 직원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형사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도덕성'을 전면에 내세워 중시되지 않습니다.
아카마쓰 운송 사장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여태까지 주거래은행에 매달 내어야할 금액을 어긴적이 없을 정도이며 회사 직원들에게도 따스한 사장님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집에서도 그렇고 억지로 떠맡은 아이 학교의 학부모회장도 성실히 이행합니다. 그의 성격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사건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아카마쓰 운송의 트럭은 정비에 이상도 없고 3년째 트럭을 몬 것이기 때문에 노후될 일도 없습니다. 그 문제의 조사를 호프자동차에 맡겼는데 정비 불량으로 결론낸 호프자동차를 믿지 못합니다. 그런 의문을 가진 아카마쓰는 다른 곳에 의뢰를 하기 위해 - 국토교통성 - 트럭 타이어를 연결하는 허브를 돌려달라고 요청합니다. 그것을 대응하는 것이 호프자동차의 판매부 고객전략과 과장 사와다입니다.
그는 상당히 똑똑한 남자로 꼬투리잡힐만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유연하게 빠져나갑니다. 그런 그에게 자사의 문제를 감지하게 되고 '정의감'이나 '도덕성'이 아닌 단순히 자신의 위치나 팀의 권력 문제 때문에 조사를 해보게 됩니다. 이 호프 자동차는 이미 3년 전의 리콜 은폐를 통한 이미지 추락을 겪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3년동안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와 달리 정말 정의감을 가진 직원도 등장하고 반대로 최악의 직원도 등장합니다.
한편, 또 다른 배경인 은행원들은 냉철하고 잔인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한 회사의 자금을 대어주고 함께 망하느냐 냉철하게 잘라냐느냐에 관한 이야기는 앞에 등장했던 두 주요 인물을 통해서 봤던 인정이나 도덕성과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거래 회사의 정보를 다뤄서 함께 죽느냐 우리는 사느냐를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은 조금 다른 이면을 보여줍니다.
아카마쓰 운송의 주거래점이 아닌 호프자동차의 주거래 점인 본점의 이자키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은행원도 각기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인정없이 더 큰 거래를 위해 작은 거래를 매몰차게 버려버리는 악독한 은행원이나 반대로 도와줌으로써 더 나은 회사를 함께 만들어 보자는 신뢰를 주는 은행원의 모습도 그려집니다. 이자키는 흐름을 지켜보고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흐름을 돌리는 대단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는 호프자동차의 사와다와 비슷하지만 이자키가 더 대단한 인물임을 마지막에 깨닫게됩니다.
이런 세 가지 공간의 이야기가 '호프자동차 리콜 은폐'의 과정과 내막, 폭로까지 함께 진행됩니다. 사실 실제 이런 일이 있다면 대기업을 넘어설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호프자동차 리콜 은폐의 가장 중심에서 명령을 내린 가노 상무의 생각처럼 유능한 변호사 여러명을 붙여서 트집을 잡아 재판 기간을 늘리게 되면 영세한 회사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정확한 증거가 없어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은 것도 그렇습니다. 전혀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낸 부분이 아니라 실제 살아오면서 뉴스를 통해 봤던 일들과 비슷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물론 두꺼운 책과 대단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읽었다는 만족감은 듭니다. 그러나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책입니다. 회사를 너무 사랑해서 자사가 더 발전하기를 바랬기에 그런 결정을 했다는 스기모토. 자신의 꿈을 이루기위해 도덕성 같은건 내던졌지만 자사는 결국 그 꿈을 실현해줄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옳은 결정을 내린 사와다. 법으로 판결받지 않았지만 세상 모두가 의혹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저 회사의 탄탄함을 믿어주고 도와준 하루나 은행 신도. 비록 회사의 방향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잘못된 회사는 막을 내려야한다고 생각했던 이자키.
한 사건을 위해 범인을 좇고 잡아 법의 심판을 받게하는 그런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소설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 자신의 자리에서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추구해나가는 인물들이 빛이 났던 소설입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도 하루를 더 치열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따스함이 들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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