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추정 시각
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서평




이 소설은 오인 체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법정 소설입니다. 왜 이것부터 밝히냐하면 소설의 홍보 자체가 형사물이나 추리물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 표지 뒷면의 설명에서도 딸의 유괴, 살해로 인해 과연 살해 시각은 몸값을 달라는 시간 전인지 후인지에 관해서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 소설은 그 사망 추정 시각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 부분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갈 것이라고 예상하여 보게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가 초점입니다.




우선 작가 이력을 언급해보겠습니다. 작가를 지망하던 한 청년(?)이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 조사로 법쪽을 연구하다가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변호사가 됩니다. 그리고 현직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필명으로 이 책을 출판합니다. 왜 필명으로 했지는지 책을 읽어보면 이해가 갑니다.




흔히 형사물은 형사 이외의 변호사, 범인 등이 악인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형사물 안에서도 내부 비리 같은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변호사 중심의 법정 소설 속에서는 경찰의 무능함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후자의 패턴으로 이 소설은 현직 변호사가 한 사람의 인생이 '법'의 교묘한 이용을 통해 어떻게 쉽게 망가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경찰 뿐만 아니라 판사, 검사조차도 무능하게 나옵니다. 조직 사회에서 그 조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진실'은 은폐되며 자신들의 생각대로 일을 진행시키는 추악함이 보여집니다. 물론 변호사만이 유능하고 깨끗하다고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추악한 그들과 똑같은 변호사도 물론 등장합니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한 프로그램 속에서 얄미운 범인을 취조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쩔쩔매는 경찰은 무능하다기보다 불쌍해보입니다. 그런 지능범들이 있는 반면, 이 소설에 나오는 '범인(으로 지목된 자)'은 너무도 불쌍합니다.




알려진대로 이 소설은 야마나시현의 지역 유력인사인 와타나베 쓰네조의 외동딸이 유괴됨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몸값은 1억엔인데 돌아가는 상황이 좀 이상합니다. 여느 형사물, 탐정물 등에서 등장하는 음성 변조라던가 몇 가지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이 쓰네조는 지역의 어두운 세력들과 손을 잡고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 적이 많은 인물로 나옵니다. 부인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국 경찰의 지시로 몸값은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딸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한편 '범인(으로 지목된)' 고바야시 쇼지는 제대로 된 일도 없이 빈둥거리고 세 건의 절도 전과를 갖고 있는 26살 청년입니다. 그는 아부라를 캐러 갔다가 피해자 미카의 가방을 발견하고 지갑에서 돈을 훔칩니다. 그리고 시체를 발견하는데 무서워서 도망치게 됩니다. 그가 가방에 남긴 지문을 통해서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고 경찰의 무자비한 협박조의 취조를 통해 자백을 하게 됩니다.




이 상황은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그러나 상당히 리얼리티가 강해서 정말 작은 도시의 경찰서에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무서운 기분이 듭니다. 그는 국선변호사도 배정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건의 증거 자체도 이상합니다. 지문이 완전히 지워진 가방에서 딱 이 청년의 지문만이 발견되었습니다. 깨끗하게 죽인 시체에서도 이런 허술한 청년의 범행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차, 집, 범행 현장이라고 강요해서 알아낸 곳에서도 전혀 피해자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추어라도 그를 범인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범인이 됩니다.




그것도 사망 추정 시각을 피해자 아버지가 무서워서 바꾸는 짓을 하면서까지 경찰은 한 청년을 사형 선고까지 만들어갑니다. 원래 음성 변조를 하지 않았던 범인의 목소리는 중년 남성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은 범인을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아버지는 경찰에게 화도 내지 않고 그 범인에 대한 응징 같은 것도 없습니다. 이 부분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이야기는 르포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마치 실화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극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치밀하지 않아서 되려 현실 같은 느낌입니다. 1부에서는 결국 사형으로 판결이 납니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 경찰 비리도 등장합니다 - 사망 추정 시각을 변경하고 변호사는 전혀 변호하지 않고 판사와 검사도 이 허술함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내용이 좀 달라져서 국선변호인으로 새로운 변호사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런 치졸한 현실 속에서 영웅과도 같은 훌륭한 변호사입니다. 그는 사건들을 짚어가면서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분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호락호락하게 판결을 뒤집는 결말을 내지 않습니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경찰의 비리와 판사, 검사, 변호사, 범인, 피해자 가족 전부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범인을 잡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실'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망가졌습니다. 이 소설이 추리물이라면 마지막 반전을 통해서 범인이 드러나고 피해자의 복수라던가 원한 같은 감정들이 드러났겠지요. 그렇게 진상이 드러났을테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모두를 고발하는 이야기이기에 슬픔만이 남습니다. 그리고 다음 항소에서는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게 되는 형태의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됩니다.




오인 체포, 사형 제도에 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입니다.


 


 

 








책 정보




SHIBO SUITEI JIKOKU by Saku Tatsuki (2004)

사망 추정 시각, 사쿠 다쓰키


펴낸곳 (주)태일소담 (소담출판사)


옮긴이 이수미


펴낸날 2010년 9월 10일 초판 1쇄









   p. 294


   ... 이 범죄는 모두 이 피의자가 저지른 것으로 완전히 굳어져 있었다. 그렇게 만든 경찰이 이제 와서 그 조서는 모두 거짓이며 피의자는 범인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혀도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p. 350


   "그런 변호사도 있어요. 모든 변호사가 다 '윤리적'이진 않다고요."

   가와이보다 두 배 정도 경력이 많은 사무원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p. 399


   "아뇨, 이것만큼은 꼭 받아주십시오. 이건 저의…… 뭐랄까, 오기 같은 것입니다."

   "오기?"

   "예. 뭐랄까, 이런 불합리한 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없애고도 태연한 사람들, 그런 세상이랄까, 사법제도랄까. 그런 것에 대한 제 오기입니다."


 



   p. 426


   재판장은 빈정거리는 듯한 어투로 말하고는 회의를 마쳤다.


   '이 재판관은 왜 그저 빨리 끝내는 데에만 정력을 쏟는 거지?'

   도쿄 고재 형사부는 한가했다. 그렇다면 사건을 충분히 해명하기 위해 배려해 줘도 되지 않나 싶었다.


 


   p. 525


   선생님, 어제는 죄송했어요. 사실은 다 알고 있었어요.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재판관이 나쁜 거예요. 선생님은 내 목숨을 구해줬어요. 고마워요. 정말로 어제는 죄송했어요. 나, 괜찮아요. '무기'라도 좋아요. 사형은 안 될 테니까. 목숨은 구했으니까. 오늘부터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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