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파 미스터리'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저는 미야베 미유키를 통해서 사회파 미스터리의 즐거움을 맛보았지만 아무래도 읽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면이 있습니다. 조금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곤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시체', '살인' 등이 나오는 미스터리물이 가벼운 것도 이상하겠지만 르포와 같은 스타일의 현실적이면서도 심각한 류의 사회파 미스터리라면 아무래도 읽기 전부터 긴장을 하게 됩니다.
왜 이런 얘기를 우선 꺼내느냐면 이 '허몽' 또한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문구가 처음 출간 되었을 때 홍보에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읽어보고 싶었지만 손이 잘 안갔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에 촛점이 맞춰져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소재 자체는 그렇습니다. 제 선입견일지는 모르겠지만 '사회파 미스터리'는 왠지 피해자 입장에서 기술되는 것 보다 수사를 하거나 기사를 쓰기 위한 입장이 좀 더 그 느낌을 극대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허몽'은 여러 의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 생각났습니다. 그 소설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극을 농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정말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읽을 수 밖에 없는 소설이었지요. '허몽'도 비슷한 느낌이긴 한데 무언가 상당히 절제된 면이 있습니다. '당장의 복수극'이 아닌 좀 더 냉정한 복수극의 느낌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범인'에게 정죄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법'의 잘못된 것에 호소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그런 차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흥미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히 재밌게 빨리 읽게 됩니다.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 한 청년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어서 보도도 되지 않고, 벌도 받지 않습니다. '정신분열증'이란 단어가 주는 위협 때문에 '통합실조증'라는 병명으로 바뀌게 되고 덕분에 벌을 받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완치될 수 있는 병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언제까지고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비극은 순환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소재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형사물 드라마에서 간혹 등장합니다. 그리고 악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혹시 그런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읽다보면 몇 가지 의심되는 일종의 서술 트릭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배경은 홋카이도. 삿포로 주변입니다. 피해자 가족인 미카미와 사와코가 등장합니다. 사와코는 딸이 죽은 후 남편과 이혼하고 이후에 재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미카미에게 전화가 걸려옵니다. 가해자를 봤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미카미의 시각으로 진행됩니다.
한편 다른 주인공도 있습니다. 집을 나와 카바레 클럽에서 일을 하는 유키. 힘들게 생활합니다. 이상한 손님 타시로도 나오고 후지사키와의 접점도 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얽히게 되는지, 복수는 하게 되는지, 이 비극은 어떻게 결말을 맺을 지에 대해서 궁금하게 하면서 단숨에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재밌고 잘된 이야기라고 생각은 드는데 (눈물도 좀 나오는 부분이 있었구요.) 마지막에 유키에 관한 이야기에서 뭔가 2%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배치하고 등장시켰는지는 작가의 의도는 알겠는데 이야기가 끝을 맺지 않는 것 같은, 그렇다고 열린 결말이라고 하기도 조금 부족한 것 같고. 그래서 별은 3개만 매겨봅니다.
숨막히게 답답하고 무거운 사회파 미스터리가 부담스럽다면 읽어보기 괜찮은 소설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진단할 수 있는가. 그 모순에 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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