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조용한 폭탄'이군요. 다 읽고 보니 확실히 원제가 잘 맞는다는 느낌이네요. 요시다 슈이치의 연애물입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그 쪽 이야기도 종종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 반하게 됩니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급격히 사랑하게 되고 연애를 시작됩니다.
남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서 남자의 연애에 관한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는 편입니다. 뒷면에 홍보용 소개로는 '다큐멘터리 제작가로 취재를 통해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 일인 슌페이와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평생 소리 없는 세계에서 살아온 교코. ... 교코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되는 일이 반복되자 슌페이는 지쳐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좀 달랐습니다. 일본에서 간간히 쓰이는 소재인데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는 남자 쪽이, 만화 '당신의 손이 속살일 때'는 여자 쪽이 청각장애인으로 나옵니다. 보통 이 소재의 패턴은 사랑하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에 오해를 낳는 것으로 가는 편인데 이 요시다 슈이치 소설은 좀 다릅니다. 그저 연애 소설의 장르에 넣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남자는 여자로 인한 적막감에 낯선 마음을 느끼고 괴리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되려 중요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오고간 시끄러운 술집을 그리워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생각해보면 사실 그 시끄러운 술집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그 부분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 부분을 그토록 그리워하다니요.
이것은 단순히 그 부분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안한 부분을 갖고 있는 남자의 사랑에 대한 얇팍함 같은 것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삶이 고달플 때, 일로 바쁠 때 과연 그가 그 술집의 떠들썩함을 그리워하게 될까요? 그녀와 함께하는 것으로 그 술집에 가는 것을 맞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순히 한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불안함 같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코 대신 그 일을 택합니다. 그러나 그는 교코를 찾으러 들어간 야구장에서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을 보고 망연자실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자세한 해석은 나오지 않지만, 제 생각에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보여도 자신이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낯선 자들을 위해, (대의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지만 그 목적을 상실한 것은 아닐까요. 정말 사랑하는 한 여자를 잃고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느낀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서 다큐를 그토록 열심히 만들었지만 대중들이 그 가치를 알아줄지, 그 진정성을 알아줄지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듯,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것도 바로 그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진실되게 얘기했고 사랑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
요시다 슈이치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감정이지요. 이 불안함이 자칫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고, 불안함을 지속적으로 담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내용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둘 중의 한 모습으로 끝날까봐 걱정되었습니다. 다행히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교코가 한동안 연락을 끊은 것은 상당히 현명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변함없이 잘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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