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평점 :
제목만 봤을 때 왠지 괴기스러운 느낌보다는 코믹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었습니다.
이런 제목을 정말 무서운 소설에는 쓰지 않을 것 같아서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네요.
코믹 소설은 아니고 그렇다고 무서운 소설도 아니었습니다.
이 소설은 화려한 수상 내역들을 담고 있습니다. 제5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이런 화려함이
표지에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읽고 나서 별 5개를 줘도 아깝지 않을 작품이었는데
무언가 임펙트가 강력한 류의 소설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심심한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뒷맛이 좀 깔끔한 느낌이 들었기에
별 5개를 과감히 던져봅니다.
소설 속에 시체는 등장하지만 주요 내용은 '시체'를 가지고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닌 점 때문에 지나치게 끔찍한 이야기는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물론
살해, 시체가 등장하기 때문에 행복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선 내용은 조각가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화자는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이름을
가진 소설가이면서 탐정도 하는데 탐정 쪽이 본업은 아닙니다. 경찰인 아버지를
두고 있습니다. 후배의 사진전에서 우연히 대학생의 아가씨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의 동행이 자신의 지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그 지인의 조카로 유명한 조각가 가와시마 이사쿠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각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유작이 된 작품인 딸의 석고상의 목 위쪽
머리가 없어진 것을 알게되고 노리즈키 린타로가 조사해주게됩니다. 유명 조각가
여서 매스컴에 알려지는 것이 싫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습니다.
조사되는 과정에서 이 가정의 과거가 드러나게 되고 사건이 발전해서 더 심각해집니다.
그리고 결국 경찰도 개입을 하게 되서 수사물의 형태도 띄게 됩니다.
석고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관련 용어들이 종종 나오는데
다른 것보다 중요한 점이 되는 것은 사람을 직접 본으로 해서 석고상의 틀을
뜰 때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는 점에 대해서 조각가가 고뇌했다는 것이 모티브가
됩니다.
석고상의 머리는 왜 없어진 것인지, 사건은 왜 더 확장되는 것인지 모두 밝혀질
때까지 독자는 스스로 추리를 하게되는데 반쯤 지나면 대충 모순들을 이해하게
되고 본질을 추측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호락호락하게
범인은 그 사람이다. 라고 찍을 정도의 소설은 아니지만요.
흔히 추리 소설의 패턴 중에서 정해진 공간 속에서 일정 인물들 중 누가 범인인가
에 대해서 끝까지 카드를 안보여주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카드를 몇 장
으로 좁혀놓고 진행시키는 작가도 있고, 잘못된 카드로 유인하는 작가도 있지요.
중반쯤 지나면 대체적으로 좁혀지기 때문에 좀 장황하거나 황당한 추리물은 아니구요
꽤 흥미진진합니다.
전부 범인이 치밀하게 계획한 트릭이라고 생각했던 면들을 조금 비틀어버림으로써
조금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면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찰의 수사물이나
사회파 추리소설 형태들은 자칫 지루하다던가 조금 딱딱한 이미지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경찰이 아니라 경찰 조직에 얽매여있는 것도 아니고
탐정 노릇을 하지만 탐정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경직된 틀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추리 소설'을 추리 소설 작가가 아닌 사람이 쓴 것 같은 면이 있습니다.
그만큼 괴기스럽거나 경악스러운 부분들을 화자의 시점에서 적절하게 정상적으로
걸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야베 미유키 소설도 비슷하면서도
이쪽이 좀 더 감성적이랄까, 유연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명의 카드로 의심을 하게 만들기는 합니다만 소설을 만들기 위한 뜬금없는
트릭이나 의외의 인물로부터 몰랐던 숨겨진 진실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조금 기분 좋은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차근차근히 추리를 해 나갔기 때문에 거기, 결말에 닿았다는 충실함이 있습니다.
후에 기시 유스케와 작가의 인터뷰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그 속에서 작가의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원래 200페이지 원고였던 이 소설을 다시 고심하고 써서
트릭을 연구하고 재완성시켰다고 합니다. 확실히 순식간에 하나의 목적을 -트릭-
가지고 쓰지 않았다는 점이 느껴집니다.
꽤 두꺼워서 550페이지를 넘어갑니다. 군데군데 조사를 할 때는 충실한 경찰들의
수사일지 같은 면도 있습니다. 이틀만에 다 읽었으니 오래 걸리진 않구요. 하루 종일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니라서 꽤 빨리 보는 편입니다. 추리 소설이라 본격적인 내용은
모두 숨겼더니 조금 자세하지 않은 서평이 되었지만 읽으신 분들은 공감할 것 같습니다.
예술가의 고뇌와 인간의 추악한 면, 사람 간의 오해로 빚어지는 불신, 그리고 욕망
그런 것들을 담아냈기 때문에 단순한 책은 아니라 사회파 미스터리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