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랜드마크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그 도시를 상징하는 표식같은 건물을 가리키는 '랜드마크'.
요시다 슈이치의 '랜드마크'는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해서 펼쳐봤는데
너무 도시적이며 너무 어른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작가를 떠올릴 때 다양하게 써나가는 작가도 있지만
좀 대표되는 이미지로, 정형화된 타입도 있습니다.
저는 요시다 슈이치 소설을 '악인'을 시작으로 읽어서
선입견을 갖게 되어 노동자 계층에 대한 캐릭터를 내세우지
않는 책을 보면 좀 놀랄 때가 있어요. 그래도 잊지 않을 때쯤
한 명씩 등장하곤 하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두 명입니다. '오미야 역'에 세워지는 건물의
노동자 중 한 사람인 시미즈 하야토. 다들 도호쿠 지방 사투리를 쓰지만
그 만은 규슈에서 왔기에 이름대신 '규슈'라고 불리우며 기숙사에서
함께 지냅니다.
다른 한 명은 그 건물의 디자인을 맡은 이누카이 요이치. 이 쪽
일이 그렇듯이 일중독일 정도로 열심히 합니다. 독특하게 나선형으로
건물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 느낌을 고안해냅니다. 이 부분을 봤을 때는
건물 자체가 나선형으로 올라가는건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삽화를 보고
뒷부분을 읽으니 건물 자체는 일차 형태이고 내부가 회전하며 올라가는
형태인 것 같습니다. 건물 이름은 O-miya 스파이럴.
이 책의 제목이 그렇듯이 두 주인공이 연관되어 있는 이 건물은
두 사람에게 랜드마크('상징')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것 같습니다.
이런 건물의 구조는 상당히 불안정하여 고강도의 심리스 강관을
사용해서 기둥을 만들어 넣었는데 그 이야기도 이상하게 안정감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상징이 되는 느낌입니다.
하야토는 이야기 처음부터 정조대를 외국에서 주문해서 차게됩니다.
그래서 남자들끼리 공동생활 하는 곳에서 무언가 안좋은 일이 있었나
하는 추측을 하며 읽기는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아니라, 하야토에게는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문제의 표상으로 '정조대'를 선택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도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자꾸 불안해합니다.
여자친구인지 아닌지 모를 고즈에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는 또 다른 사람입니다.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녀와
결혼이 쉽게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건축에 대해 관심 조차 없는 이누카이의 부인과 만나던 시절,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건축가의 작품을 꼽은 것을 보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을 사서 살다보니 그 집에서 아무런 따스함도
느끼지 못하고 바람을 핍니다. 상대 여자 또한 죄의식을 갖고 있고
이누카이는 처가집으로 간 부인에게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던 건물을 올리면서도 만족감을 얻지 못하고 무언가 인생이
비어만 가는 것 같은 이누카이와, 자신 하나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정조대 열쇠를 복사해서 짓고 있는 건물의 매 층에
하나씩 넣어두는 하야토.
하야토는 여기서 이렇게 일만하다가 죽지는 않을꺼라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 일만하다가 자살한 사람의 일화로 이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이누카이의 꿈대로 건물은 올려지지만, 그 건물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나와서 아무도 여기에 살고 싶어하지 않을 꺼라는 누군가의 말이
마치 이누카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공허하고 공허한
두 사람의 마음이 완성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담고 있는
그런 건물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요시다 슈이치는 이 소설을 통해서 '소통의 부재'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통하는 것은 일부라고 하여도 완전히 상대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인데 그의 소설은 그 부재가 너무도 커서
사람을 잠식시키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안정감과 따스함. 그것밖에 없을텐데 말이지요.
그들이 조금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Randomaaku (2004)
도서출판 은행나무
1판 2쇄 발행 2006년 2월 25일
오유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