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나쓰메 소세끼. 국내 표기법으론 그렇고 저는 그냥 나츠메 소세키라고
쓰렵니다. 제대로 심취해서 이 작가의 책을 다 읽은 건 '마음'이 처음 인것 같습니다.
책을 읽을 때 단순히 그 작품에 매료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당시 심적 상태나
주위 환경 같은 의외의 문제들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매번 읽으려고 마음 먹으면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이랄까요.

'마음'은 제목이 주는 상당히 단순한 느낌과 달리,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나츠메 소세키가 살아있을 당시
대략 1912년 쯤 이전의 이야기 입니다. 메이지 시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화자는 전반부에는 대학생이고 후반부에는 이 대학생이 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후반부는 그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골에서 도쿄로 와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주인공은 우연히 이 선생과 만나게
되면서 관계를 이어옵니다. 그러나 그 선생이란 사람은 참으로 독특해서
일도 하지 않고 지내며 그렇다고 딱히 무슨 다른 것을 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부인과 사이가 좋아보이면서도 이 선생이란 자는 인간을 싫어합니다.
부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그의 고뇌가 숨겨져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인도 이 화자인 대학생도 선생의 의중을 파악할 수는 없으나 무언가 필시
숨겨진 것이 있다고 추측은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달 누군가의 무덤에
들리곤 하는데 상당히 진지합니다. 산책 겸 동행하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절대 산책 겸으로 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이 대학생은 졸업을 맞이하고 선생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취직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병세가 급히 안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잠시 돌아갑니다. 도쿄는 너무 더워서 9월에나 돌아올
심산으로 그렇게 인사를 하고 떠납니다.

아버지는 대학 졸업 한 아들의 그럴듯한 출세를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어머니 또한 그런 아버지에게 희망이나 안심을 주기 위해 아들을 채근합니다.
일전에 말해뒀던 그 선생의 실제 생활은 알지 못하고 어느 대학의 선생 정도로
여긴 어머니는 직장을 추천이라도 받으라고 얘기를 합니다.

화자는 어머니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답은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오라는 전보가 오지만, 아버지 병세가 위독해서 갈 수
없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그 때에 바로 두꺼운 선생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는 마지막의 내용을 보고 놀래서 도쿄에 서두릅니다.

그리고 그 기차 안에서 읽게 되는 편지의 내용이 후반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왜 그런 마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소상히 적혀 있었습니다.

소설 중간 중간 공부를 좀 했다는 사람들은 돈을 쓰려고만 한다고 당시
지식인 층의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이러한 어른들의
비판은 세대를 거듭해도 아랫 세대에 대한 비판과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지식인 층은 더더욱 출현이 시작되던 때이기 때문에 그 괴리감이
꽤 컸을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이 '선생'과 그 선생은 좋아하는 '나'와
세상 사람들의 시작으로 나눠져 다르게 평가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선생'은 죽은 것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고
'나'는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닌, 선생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그의 본질을 봅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은 세간에서는 형편없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평가는 직접적으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선생'은 자신의 철학대로 살아가는 한 지식인의 전형적인 단면이며
'나'는 그런 선생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도 지식인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겪는 젊은이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의 인간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게 된 그 일 또한 지독했었지만
- 찾아보면 책 소개에 충분히 나오는 내용이지만 스포일러가 될 내용들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만을 믿을 수 밖에 없게된 한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위해서
누군가를 기만했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결과를 감당해내지 못했으며
그러나 부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만을 위해서 살아왔던,
그렇지만 천황의 죽음을 통해 메이지 시대는 끝났다고 결론지은 한 지식인의
마음을 소상히 다루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결과를 내었든지 간에
멀쩡히 살아가고 있을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글의 화자가
자신이 그 어떤 학자들보다 선생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았다고 적었듯이
이 선생은 인간에 대한 비뚫어진 본성을 꿰뚫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기에
염세적이 아니라 더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순진한 사람에게 조언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싫어했던 그 인간의 본성에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도 외롭고
괴로웠지만 사랑했기에 살아왔고 그러나 그것도 순수히 행복해하지 못했습니다.

지식인은 너무 이론적이라는 어느 인물의 비꼼처럼 단순히 생각해보면
훌훌 털어버리고 나 자신을 위해 살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너무도 잘 들여다보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선생은,
바로 그 너무 이론적이기만한 자신의 추악함을 결국은 내 던짐으로
결단을 내립니다.

그가 그냥 그대로 결단을 내렸다면 그의 선택은 그저 죄책감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이 화자에게 이렇게 적습니다. 자신의 심장을 찔러 이 화자의 얼굴에
끼얹고 그래서 화자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선생이라 부르며 따르는 한 학생의 의문에 일주일이 걸려 소상히
알려주었으며 단순히 자신은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는 비록
순간 순간 잘못된 선택으로 이런 고통을 당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자네는 그러지
말라는 그의 스승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너무도 사람의 마음을 생각지 못하고 행해지는 범죄들이 있습니다.
큰 범죄만이 그렇겠습니까만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선생의 우정과 사랑과
신의 같은 것들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단순히
자신의 이기심이나 사랑이라는 마음 때문에 정당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 자신의 잘못을 평생을 놓고 곱씹으며 괴로워한 것입니다.

일본의 세익스피어로 불리워져 한 때 지폐에도 얼굴이 들어갔던
그의 소설은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이 현대 소설의 소재였다면 좀 더 진흙탕 싸움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습니다. 혹은 그의 사랑도 현대문학에서는 그렇게 지고지순한 느낌으로
그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기에 참으로 '지식인'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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