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1950년대에 여행을 하면서 1920년대 과거를 회상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저명한 저택의 집사로 일을 하면서 황혼에 사랑을 찾아 떠난다는 류의 홍보글들이 돌아다니는데 사실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인공은 아버지도 집사였고 자신도 그렇습니다. 오직 집사 일만을 하기 위해 살아왔기 때문에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이 아들에 대한 연민이 가득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서만은 철저했습니다. 아들 또한 아버지의 그 모습을 이어받듯 임종보다도 집사일에 더 우선시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예전 주인을 잃고 지금은 영국의 문화를 좋아하는 한 미국인에게 속한 몸입니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있는 동안 집사에게도 여행을 권유합니다. 그는 이 여행을 오직 자신이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이 저택에 필요한 일손을 만나기 위한 여행과 겸하려고 합니다. 미국인의 유머에 대응하지 못하는 불균형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결국 6일의 여행 끝에 예전에 일을 하면서 총무로 지냈던 켄턴 양을 만나게 되기 까지 지속적으로 회상을 하게됩니다. 이 이야기가 끝없이 자신만의 일을 위해 달려왔던 한 집사의 인생 이야기는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켄턴양은 그를 사랑했을지 몰라도 그는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런 일보다도 집사라는 일을 해야한다는 의식이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한 남성의 황혼에 느끼는 무력감만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시대상 때문입니다. 1920년대의 영국. 그 때는 세계 1차 대전 이후의 유럽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이야기 속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저명한 인사들이 영국 인사들과 함께 이 집사가 일하는 달링턴 홀에 모여 세계 정세를 의논했습니다. 그래서 이 주인공은 단순히 '집사'라는 직함 뿐 아니라 자신이 세계가 돌아가는 것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움을 지니게 만든다는 점 또한 보여줍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영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를 해둔 것 같습니다. 달링턴 나리는 자신이 세계를 움직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자만하고 그 아래 사람들은 - 집사도 마찮가지로 - 그런 일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오만함을 가진 인물입니다. 실제 그의 성격은 소심하고 유능하지 않았던 것으로보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의 마지막은 비참했습니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굉장히 부지런하고 똑똑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의 회상들만 놓고 봤을 때도 그는 세계의 돌아가는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해하지 못한 것도 없었고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답변들도 내놓았습니다. 그의 문제점은 자신의 그런 능력을 '집사'라는 직업의 틀 안에 가두어 자신보다 현명치 못한 주인에게 충성했다는 점입니다.




켄턴 양은 현대의 부조리함을 제대로 보고 있지만 자신이 그것을 넘어설 자신이 없어서 결국 타협하고 말고,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고 부차적인 것에 만족을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대변합니다.




데번 주에서 만났던 해리 스미스는 영국의 변화에 발맞추는 사람의 한명으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칼라일 박사는 지식층이며 사회주의 지지자이지만 그것으로 시대를 바꿀 힘이 없는 지식층으로써 해리 스미스 같은 평범한 인물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폄하하지만 결국 그들의 사회에서 조용히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이것은 당시 영국의 시대적 변화에 따른 모습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강에 속했던 대영제국이라는 이름 하에 거둬들였던 수많은 자산들을 민주주의나 인본주의라는 이름 하에 용서해야만 하는 시대에 직면했던 모습.




대단한 주인을 모시면서 자신의 능력도 그것으로 인정받는다는 생각을 했던 스티븐스는 주인의 끔찍한 오명 아래 죽음을 털어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대는 변화하여 영국인 주인을 모실 때의 그 상식과 전혀 다른 미국인 주인을 모실 수 밖에 없고 자신도 자유라는 이름 하에 인생을 즐겨야하는 숙제 또한 주어졌습니다. 경치를 즐기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목적지에 닿습니다.




그리고 그는 노을녘을 보면서 달링턴 나리에 대한 일을 이제는 털어버릴 수 있게 된 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해가 넘어간 후에 켜지는 불빛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단순히 삶을 즐기는 모습에 감명을 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점을 찾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라는 가즈오 이시구로. 일본인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하여 지금은 런던에서 영어로 소설을 써내면서 영국, 이탈리아, 미국, 독일에서 상을 받고 영국과 프랑스에서 훈장을 받은 작가. 자신의 일대기를 써 내려가듯 조곤조곤하게 담담히 한 집사의 인생을 써낸 것이 확실히 범상치 않은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책 정보




The Remains of the Day by Kazuo Ishiguro (1989)


남아 있는 나날


지은이 가즈오 이시구로


펴낸곳 (주)민음사, 모던 클래식 034


1판 1쇄 펴냄 2009년 7월 13일


2판 1쇄 펴냄 2010년 9월 17일


옮긴이 송은경


 





   p. 95


   "내가 이번 전쟁에서 싸운 것은 이 세계의 정의를 지키기 위함이었소. 게르만족을 상대로 하는 복수전에 가담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결코 없었소."


  


   p. 134


   "당신이 말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이란 것에 대해선 나도 꽤 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속임수와 조작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선과 정의의 승리를 희구하기보다 탐욕과 이익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지요. 선생이 말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이 그런 것이라면 나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굳이 갖추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p. 147


   우리에게 직업적 권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인의 도덕적 진가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p. 149


   자신이 봉사해 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위대한 신사에게 내 재능을 바쳤노라고, 그래서 그 신사를 통해 인류를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


  


   p. 159


   "송구하기 그지 없습니다만 나리, 이건 우리 나라의 방식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제 말씀은, 고용인이 옛 주인에 대해 논하는 것은 영국의 관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리."

  


   p. 294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p. 299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p. 300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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