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게임
카린 알브테옌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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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에는 주요한 부분을 제외하긴 했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림자 게임'은 스웨덴에서 노벨 문학상까지 받아 국민 작가로 존경받는
한 작가의 삶에 대해 쓴 작품입니다. 역자의 의견 또한 그러했는데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라고 평가받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추리 소설
매니아들에게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정한 패턴으로 비밀, 추리, 불륜, 이혼, 살인, 은폐 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추리 소설과 같아 보이지만 사실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다양한
인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순수 문학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추리를 시작하고 끝을 맺는 정확성이 없습니다. 단지 한 유명
작가와 얽혀있는 사람들의 진실이 파헤쳐집니다. 작가는 실제로 유명 작가를
집안 어른으로 두고 있는, 역시 본인 또한 유명 작가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반대로 실제 유명 작가는 추악한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점을 착안해서
1년 넘게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책 표지에서 출발합니다. 한 아이가 엄마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엄마는 오지 않고, 놀이공원 경비에 의해서 발견되는데 아이를 버렸음직한
쪽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서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한 장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것이 교대로 이 책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현재에서 과거로의
추적이라던가 그런 추리는 아니고 각자의 과거를 회상하는 면에서 과거의, 역사가
구성됩니다.

마리안네는 죽은 사람들의 집을 정리해서 연락을 하고 처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그녀가 일하게 된 집은 예르다 페르손이라는 할머니의 집입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기묘한 것을 발견합니다. 유명한 작가 악셀 랑네르펠트의 사인본들이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을 펼쳐보니 그다지 팬의 느낌이 아닌,
도리어 그를 증오하는 것 같은 메모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마리안네를 통한 추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 읽고 이 소설을 별 5개를 줄 정도로 대단하다고 여겼지만,
추리 소설적인 관점에서 마리안네가 탐정의 역할을 맡아 랑네르펠트 가문의
추악함을 다 파헤쳤으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해봅니다.

그녀는 예르다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연락할 사람들을 정리합니다. 토리뉘라는
사람은 오겠다고 연락을 했고 크리스토페르는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한편
악셀은 쓰러져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새끼 손가락만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잘되지 않습니다.

그의 딸은 15살때 죽었고 그의 아들은 지금 결혼해서 딸을 낳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병환을 숨기고 자신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강연을 다닙니다. 그리고
어머니 알리세는 혼자 살고 있습니다.

아들 얀-에리크는 작가는 아니고 부인 루이세는 작가였지만 전혀 글을 못쓰고
있습니다. '랑네르펠트' 가문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고 전혀 원만한 부부 생활을
못하고 있어서 절망합니다. 딸 또한 자신에게 애정을 보여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습니다. 얀-에리크는 한 때 열렬하게 사랑했지만 자신이 항상 가문의
이름을 등에 엎고 방탕하게 살아왔던 것을 다시 시작하면서 제대로된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악셀과 알리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알리세는 육아로 글을 포기
하고 남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악셀은 집필을 지속하지
못하는 절망의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갔던 낭독회에서 우연히
토리뉘의 동행인 할리나를 만나게 됩니다.
 
 
이야기는 대충 이런 인물들이 등장하여 숨은 과거가 드러납니다. 주인공
악셀 랑네르펠트가 유명한 작가이다보니 그쪽에 관련된 사람들의 여러
종류가 등장합니다. 악셀은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유명한 작가가
되기까지 항상 더 나아가고자하는 욕망을 품고 괴롭게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화려하게 데뷔한 알리세는 자식을 낳음으로써 육아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가정부를 들이지만 다시 작가로 재기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남편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지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크지 못한 아들 얀-에리크과 죽음을 맞이한 딸,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길게 가지 못하고, 아이러니
하게도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아버지를 위해서 살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인물
입니다.

얀-에리크의 부인 또한 화려하게 데뷔하여 열렬한 구애를 받는 행복한 여자
였지만 결국 행복하지 못한 처절하게도 불행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유일하게 이 고통의 끈을 끊으려는 자아를 가진 인물입니다.

할리나는 자신의 이야기처럼 외국인이 긍정받지 못하는 스웨덴 사회를
고발하고 더 나아가서는 히틀러 아래 고통받았던 폴란드와 스웨덴의
동조를 고발하는 인물이며, 그녀의 삶은 유린당했지만 그녀의 작품은
평가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크리스토페르는 버림받았다는 절망 속에서 괴롭게 살아왔지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합니다. 극본을 쓰는 작가로, 데뷔하는 친구가 부러워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이중성도 보이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가 버림받지 않았다는 안도와 함께 맞은 결말은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토리뉘는 사랑과 복수를 보여주는 인물인데, 그가 역시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글은 사랑했을 때에 멈추었고 회상만하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에스페르는 7년에 걸쳐 쓴 소설이 드디어 출간되지만 작가로써의 삶을
지속할 자신이 없어서 화려한 죽음을 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르다는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며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현명한 인물이지만 사건에 말려들어 남은 여생을 항상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불행한 인물입니다.



이렇게 주요 등장 인물들은 모두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그나마 루이세가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이혼을 요구하는 모습만이, 그녀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타인의 어쩔 수 없는 요구로 인해서 사람들은
고통당합니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것을, 삶을 추구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놓고 더렵혀놓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하고 획득한 사람 마저도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행복할지는 몰라도 그 이상의 것은
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무언가를 갖기위해 모든 것을 짓밟고
올라서겠다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자신 뿐만 아니라 모두를 불행으로
밀어넣는 것이겠습니다.

더 감사할 줄 알고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더 생각해보게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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