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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코드 - 이동준의, 베를린 누드 토크
이동준 지음 / 가쎄(GASSE) / 2010년 4월
평점 :
베를린 코드. 베를린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독일, 통일, 건축물 같은 것들 말고는 정작 아는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독일에서 8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던 작가의 에세이집 정도입니다.
간혹 나라, 도시 이름을 써붙인 책에 '여행'에 관련된 자세하고
객관적인 내용들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평들이 있곤 한데
요즘에 출간되는 이런 책들은 에세이집으로 분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런 류의 책들의 출간이 많이 되는 것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느끼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같은 '베를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도 작가가 관심있는 부분에
따라 색체가 달라지니까요.
이 책의 저자는 문학을 전공하면서 아르바이트를 다양하게 했고
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워낙에 다양한 '외국'을 소재로 삼은 책들이 출간됩니다.
크게는 여행서와 유학생활, 이민자들의 삶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행서보다는 좀 더 다양한 그 도시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이점과 정착하면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의 기분을 놓아둘 수
없는 어떤 외로움을 함께 담아낸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곳곳에서 그런 처절한 외로움이 묻어납니다.
즐겁고 밝은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추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대신 예술가들이 모여사는 건물에 관련된 이야기라던가
로모(카메라), 연극, 영화에 얽힌 저자의 생각도 엿볼 수 있습니다.
다운증후군인 사람들이 배우가 되어 이끌어가는 연극은 참 충격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문화 속에서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일반인들도
'아름다운 것'에 치중하는 시대이고, 좀 더 돈이 될만한 그럴 듯해 보이는
것에 목숨거는 문화이지 않습니까.. 좀 부끄러워지는 부분이었습니다.
매끄럽지 못하고 배우가 울고 제대로 못하는 연극도 돈을 내면서 보는 곳.
제게 베를린은 그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음악에 관한 부분은 좀 더 독일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해서 아쉽더라구요.
대체적으로 짧은 글들이 여러 주제로 쓰여져있기 때문에 일관성이라던가
자세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런 면은 다른 면에서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잠깐씩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르바이트들도 그렇고 문학 전공에 지금 직업도 글 쓰는 분이라서 그런지
문체는 좋은 편입니다. 단호한 남성다운 필체도 있고 어쩔 때는 지나친
감수성을 내세우는 부분도 있어서 한 사람의 타향살이 8년의 깊음이
드러난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 사는 것, 어디나 다를 게 얼만큼 있겠습니까. 그러나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즐기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그렇게 불안했던 미래와 인생을 차근히 밟아가는 모습이 어디 가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또 다른 힘이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책만 가지고 '베를린'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체 어떤 곳일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베를린 코드
(이동준의, 베를린 누드 토크의 개정판)
도서출판 GASSE
초판 1쇄 발행 2010년 4월 27일
| p. 20 브레히트, 카프카, 발터 벤야민…. 솔직히 말하면 책이 한 권씩 내 손을 떠날 때마다 몸도 마음도 그만큼 가벼워졌다. 뭘 하고 살건 이제 그만 돌아가자. |
| p. 20 뭘 하고 살건 이제 그만 돌아가자. 난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고 싶지 않다. |
| p. 20 계획을 수정하고 돌아설 수 있는 용기가 때론 더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
| p. 73 집을 나설 때면 번번이 새로 산 멀쩡한 구두를 놔두고 낡고 더러운 운동화에 먼저 발을 집어넣는 버릇만큼이나 듣는 음악 역시 세월이 흘러도 좀체 변할 줄 모른다. 세컨드 핸드숍에 진열된 옷처럼 오래도록 손때 묻은 나만의 컴필레이션, 나만의 음악들 |
p. 87 정말로 힘이 들 때 난 편지를 쓴다. 2년 전부터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게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편지를 쓰고 있으면 그 편지는 꼭 메트로놈이나 나침판 같은 구실을 한다. 정신없이 사는 동안은 어디서 얼마큼 핀트가 나갔는지, 궤도를 얼마만큼 이탈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편지를 쓰고 있으면 그게 느껴진다. 그래서 좋다. 쓰는 것만으로도 좋다.
물론 받을 땐 더 좋다. |
p. 88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그만큼 잃는 것도 있다. ...
이럴 때 독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So ist das Leben.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
| p. 130 지나간 역사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반성할 수는 있다. 히틀러가 살았던 도시이고 지금은 통일독일의 수도인 베를린 한 복판에 이런 박물관을 짓도록 한 독일 사람들은 그래도 지나간 역사에대해 반성할 줄 아는 민족이다. 얼마 전에는 11년간의 지리한 논쟁 끝에 유대인 기념비를 국회의사당 바로 앞에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
p. 155~6 사랑은 수채화 같은 거라고, 한번 붓질을 잘못 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난 그랬어요. 사랑은 유채화라고. 잘못 그리면 덧칠 해서 다시 그리면 된다고…. |
| p. 180 자신들의 과거를 패러디한 모습을 보면서 웃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뿐이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마음이 한없이 갑갑해지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