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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용복 -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전용복 지음 / 시공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2002년 출간했던 '나는 조선의 옻칠쟁이다'의 개정증보판인 한국인 전용복.
사실 제목만 보고는 옻칠쟁이의 이야기인지 알 수 없어서 이전 제목이 더
솔직해보이긴 하는데요. 읽어보면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가 전용복, 자신이여서 저는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술가라는 분들이 자신의 분야에 탁월한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글솜씨와는
좀 별개라 그런 부분을 감안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도입부터 '아! 이 사람의 문체는 프로 못지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을 잘 쓰셔서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닌데 이 정도로 잘 쓰는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였어요.
자전적 에세이라 처음부터 어린 시절의 가난했던 이야기가 나와서
굳이 이런 내용까지 언급해야할까.. 라며 의구심이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언급했던 이유가 분명 있었다는 것이 곧 나오더라구요.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힘듦에 눈물도 났고, 그의 인생이 펼쳐지는 모습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마치 어느 옻칠쟁이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보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인생은 어쩌면 소설의 허구보다도 더 허무맹랑
하다거나 믿을 수 없을 수도 있다구요. 이 분이 딱 그런, 정말 힘들지만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성장해오셨더라구요.
집안이 넉넉해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면 다른 장르에서 세계적인 미술가가
되었을 것 같기도 한데 독학으로도 이렇게 옻칠의 대가가 된 분이니
그 열정이 무엇을 했어도 무언가 되었을 분이구나 싶더라구요.
또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쯤에 나오는 일본인들의 텃새 같은 것, 한국 옻칠 세계에서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소속감을 중시하는 우리네 모습이니까요.
가구 회사에서 안정적이고 보장받는 직책을 버리고 자신의 신념만을 위해서,
그리고 또 부산으로 옮겨와서 가난을 겪으며 하나하나 배워갔던 그에게
메구로가조엔의 사람이 다녀간 것은 정말 드라마 같은 행운이겠지요.
정말 뛰어난 사람에게 이런 연(緣)이 닿지않는다면 큰 발전을 겪을
기회도, 이름을 펼칠 기회도 한정되어 있겠지요.
저도 메구로가조엔이 어떤 곳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대단한가?
어느 박물관쯤 되나? 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인데, 메구로의
그 노른자위 땅에 그렇게 오랜시간 대대로 연회장을 이어오고
그것을 복원하고자하는 결정을 보면 정말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중국 것이라고 생각하는 회전식 식탁은 이 메구로가조엔의
선대 회장이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그런 일본의 문화를 총집결해서
만들었던 화려한 연회장에 한국 옻칠인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투입
되었다는 점도 참 가슴 아프구요. 그것을 잘 보존시켜서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은 다른 의미에서 감동이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모든 기술자들이 안된다고 했을때, 우리 선조의 얼이 깃든
그 작품들을 과감히 복원하겠다고 했던 전용복.
그의 긍지 또한 대단하고, 박수칠만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생활고를 겪으면서 혹시라도 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만으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에서 노숙하듯 하며 기술을 배우러 다녔던
그의 열정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어딘가에 미쳐서 열정적인
사람이고 싶다고 부러워졌습니다.
그 일을 따내는 것 자체도 대단했지만, 그 다음이 더 문제였습니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일들과 혼자서는
할 수 없어서 함께한 일꾼들의 비자 문제나 의사소통같은 것들도
어쩜 이렇게 잘 써두었는지, 정말 글솜씨도 대단합니다.
옻은 깨끗한 곳에서 작업을 해야해서 메구로가조엔에서 준비해준
작업장은 머나먼 산골의 오지 폐교 였습니다. 그곳에서 꼬박 3년을
고생했고, 처음 의뢰를 맡았던 것들과 달리 '전용복'의 능력을
알게된 메구로가조엔에서 일본화, 목판화 복원도 맡기고 엘리베이터의
옻장식도 맡기고 화장실 또한 맡겼습니다.
회화 복원은 이탈리아 관련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소재인데
흔히 니스나 아교를 바르는데 화학약품이나 동물성이라
150년이 되면 재작업을 해야하며 색도 변한다고 합니다.
옻을 활용하면 좋을텐데 안타깝더라구요.
천재적이라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실험으로 알아갔던 분. 이런 분을 바로 장인이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들어갈 판도 연구하고
시계 작업도 했었던 일들에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는 이런
집념에 감탄하고 맙니다.
우리의 것이 가득하면서도 일본의 문화를 존중해서 최대한 그대로
복원하려고 했던 그의 장인 정신이 가득 담긴 메구로가조엔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습니다. 그의 대작인 사계산수화나
그렇게 화려하다는 화장실과 엄청난 실험과 고생을 했던 엘리베이터..
우주가 담겨있을 바도 궁금하구요.
처음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봤을 때, 세계에서 다섯 명 밖에 없다는
바이올린 마스터 메이커인 진창현씨가 떠올랐습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생각나서 이 분의 책도 읽고 싶었는데 흥미롭게도 바이올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딸의 부탁으로 만들었는데
국내에서 누가 먼저 선수쳐서 특허를 내었다고 합니다. 정말 부끄럽고
창피한 일입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옻'에 대해 더 자세히 기록해줬으면 했습니다.
잘 몰라서요. 그랬던 제 맘을 알았는지 마지막에 옻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5년동안 잘 키운 옻나무에서 나올 수 있는, 그것도
3~4개월에 걸쳐서 추출되는 옻은 대략 200-300g 밖에 안되고
그 후엔 나무를 잘라 다시 15년을 키워야한다고 합니다.
메구로가조엔의 3년 복원 작업에 1톤 가량의 옻을 썼다고 하니
그 규모가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
이 귀한 옻은 우리가 흔히 알듯 옻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작업도 섣불리하지는 못하겠지요. 처음 옻에 대해 모른 채로
책 곳곳에 실린 작품 사진을 봤을 때 무슨 물감을 섞었나?
화려한 색체들의 그림에 의아했는데 그 질문은 저만이 아니었나봅니다.
옻은 단순히 투명한 것으로 바르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에
여러 재료들을 섞어서 여러 색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나전칠기를 떠올리고 그것 위에 칠하는 것이 옻이라는
생각을 한 제 무지가 다른 사람들의 수준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전으로 장식된 가구는 좋게 말하면 고풍스러워 보이지만
자칫 촌스러워보인다는 느낌이 솔직한 감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책 곳곳에 있는 이 분의 작품 사진은 서양의 현대미술의
어느 그림에 못지않을 멋스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나전을 이용한 반짝임도 멋있구요.
게다가 화학약품이 아니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이런 좋은 우리의 것을 몰랐구나 싶었습니다.
앞으로 옻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갖고 싶습니다.
좋은 책이네요.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