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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위대한 일들
조디 피코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유일하게 범인으로 지목된 한 사람은, 죽은 아기의 곁에 있던 간호사 '루스 제퍼슨'이다.
그녀는 이 병원의 분만실에서 20년의 경험을 자랑하는 베테랑 간호사이다.
산모와의 유대감과 뛰어난 업무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난 데다 책임감도 강하다.
18살 유능한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법정까지 가게 된다.
........웃기게도 '흑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심장에서 들리는 이상음을 의사가 확인했는지 보려고 차트를 집어 든다.
하지만 차트를 펼쳐보니 진홍색 포스트잇에 이렇게 적혀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간호사는 이 환자를 돌보지 말 것" (p63)

책은 참 대단한 힘을 가졌다. 새삼스레 느끼지만 정말 대단하다.
인종차별은 뉴스로 나온 사건을 접해서만 느끼던 내가
본격적으로 차별받는 그들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인종차별에 대한 생각을 바라보게 했다.
책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부유하지만 흑인이거나 백인 우월에 앞장 서지만 정작 자신은 흑인 여성을 사랑했고,
흑인 친구는 가능하지만 내 동생의 파트너는 곤란해하거나, 알고 보니 흑인의 피가 섞인
여성의 자해하는 모습 등등 말이다.
어떠한 추리 소설보다도 실화처럼 진지하게 읽었다.
간호사 루스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한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녀를 법정에 세운 죽은 아기의 부모들도 결코 정상은 아니었다.
대학원 수업이 시작되기 전날, 엄마는 내게 저녁을 사주며 말했다.
"넌 작지만 위대한 일을 할 운명이야. 킹 목사님 말씀처럼 말이야."
평소 엄마는 '만약 내가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면,
작은 일을 위대하게는 할 수 있습니다.'라는 킹 목사의 말을 좋아했다.
"하지만 네 뿌리는 잊지 말거라." 엄마는 그렇게 덧붙였다. (p239)
흑인 용의자의 체포 현장은 생경하기까지 했다.
주인공 루스는 아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험하게 체포된다.
180cm의 아들 역시 경찰들에게 무참하게 다뤄진다.
어째서 일까. 이 또한 그들 모자가 '흑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억울함은 자식을 향한 모정을 알아보고 다가온
국선 변호사를 만나면서부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변호사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리라..
600페이지에 달하는 조금 두툼한 분량임에도
금세 빠져들어 정신없이 읽었다.
너무 실화 같아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의아했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읽어보고 이해가 갔다.
우연히 신문에서 발견한 사건을 모티브로 스토리를 짜고
오랫동안 인종차별에 대한 책을 내고자 했던 바램을 이뤘다고 한다.
상류층에서 특권을 누리며 살아온 '조디 피코'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역시 그들에게 들었다고 한다.
"정작 자기 안에 있는 인종 차별주의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백인들을 위해 썼다."
강렬한 이 한문장에 나 조차 뜨끔했다.
1월의 책으로 감히 추천해 본다.
번역 또한 만족할 만큼 매우 자연스럽다. (물론 내 기준이지만;;)
좋은 책을 만나면 항상 행복하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