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9개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는데, 문장에서부터 과거의 시대감이 느껴졌습니다.
우연히 책장 구석에서 발견한 오래된 책을 읽는 느낌이랄까요 ㅎㅎ
아주 오래전에 방송했었던 '전설의 고향'에 추리적인 요소를 추가하면 될 듯해요.
그래서 과거에 살던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구요.
각양각색의 추리소설들의 향연
이 책은 고다 로한, 오카모토 기도, 사토 하루오의 추리소설들을 싣고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에는 1889년에서 193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이
망라되어 있으며, 오카모토 기도의 본격적인 체포물에서 사토 하루오의
비교적 추리적 요소가 희박한 환상소설에 이르기까지 내용과 형식 면에
있어서도 참으로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 작품 해설 본문 중 -
뛰어난 추리 감각을 일으켜 사건을 재구성한다던지,
조그만 단서를 가지고도 사건 전체를 읽어내는 모습들은 명탐정을 방불케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이 나올 때는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이야기를 보는 듯했습니다.
잔인하게 타버린 시체 이야기도 있어요 ㄷㄷ;;
일일이 다 소개하고 싶지만, 가장 읽으면서 나름 충격받은 소설 한 개만 소개해 볼게요.
사토 하루오의 '무기력한 기록'입니다. 이 시대에 이러한 소설을 썼다니 놀라웠어요.
미래의 이야기 같은 형식으로 최상층 사회와 하층 사회의 생활상을 말하고 있거든요.
엄청난 기세로 바람을 일으키며 추락하는 자가 있었다. 역시 계단을
올라가던 중 힘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의 비명 소리가 원통 안에 울려 퍼졌다.
이와 같은 추락자들이 몇 명이고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계단 밖으로 떨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떤 장치를 해놓았는지 추락자들은 절대 계단을 건드리지 않고
계단 밖으로 떨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인 듯,
이 계단 주위는 추락자들을 자동으로 재빨리 처치하도록 되어 있는 것 같았다.
- 무기력한 기록 / 지상으로 본문 중 -
어느 날 한 남자가 눈을 뜨면서 자신을 돌봐준 노인으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요.
주인공 입장에서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이 세계는 어떤 곳일까 생각했습니다.
"네가 있던 곳은 암흑이었니?"
"아뇨, 조금은 빛이 있었어요. 희미하게."
"너는 부인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니?"
"부인이라는 게 뭔가요? 아저씨."
"모르는구나. 그럼 본 적이 없겠군. 당연히 엄마도 모르겠지. 부인은 지하 10층 이하에는
살지 않아. 좋은 직업이 있으니까. 그럼 너, 어땠니? 공기는 매일 마셨어?"
"아뇨, 가끔씩요. 엄청 맛있었어요."
"음, 그럼 이것저것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네가 살고 있던 곳은 아마 지하 30층
부근이었을 거야. 나는 지상 1층에서 19층까지는 모르지만 그 외의 곳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거든. 하하하하."
- 무기력한 기록 /그의 생애 본문 중 -
조금씩 맞춰가는 퍼즐처럼, 노인이 말하는 지하와 지상의 세계를 알아갈 무렵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반전의 결말은 상상조차 못했기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어요.
반전의 결말이라는 말조차도 스포에 해당하지만, 알고 봐도 무방할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사람의 행복이란 불멸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오는 걸까요..
영원의 삶을 바라던 사람들의 최후와 그들 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체는 과연 진정한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심정으로 말이에요 ㅎㅎ
깊이가 있는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매일 같이 쏟아지는 추리 소설책 중에 단연 색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라고 할만하네요.
제가 위에 언급한 소설은, 기회가 된다면 단편 애니로 만나보고 싶네요.
'불의 침대'편은 약간 혐오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끔찍한 장면 묘사도 있었어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추리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게 맘에 드네요.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 지루함도 못 느꼈거든요 ㅎㅎ
뻔한 추리소설에 실망하셨다면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