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피스트
헬레네 플루드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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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얼마나 믿고 살고 있을까요.

괜찮다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스스로 다독여보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일상.

그 속에서 갑자기 벌어진 살인 사건.

뜻밖에도 시신은 그녀의 남편이었습니다.



심리 상담사인 그녀는 다양한 사람의 고민을 듣고 치료를 하는데요,

상담실로 쓰이는 장소부터 평범하지 않습니다.

집을 개조한 것인데, 이 집은 전 주인 할아버지가 죽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으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도 평범한듯하면서 평범하지 않죠.



시종일관 아무 일 없는 듯 조용하게 스토리가 흘러가지만

공포영화에서 문득 작은 소품이 자리를 바꾸는 것처럼 미세한 흔들림과

정체 모를 일들이 심리적 공포를 불러일으킵니다.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 그녀가 홀로 남은 집에서는

끊임없이 작은 소음이라던가 비명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경호업체를 부를 만큼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녀에게 경찰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못 들은 거 아니냐는 말을 하면서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집안을 살펴보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설치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면서

서서히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됩니다.

저는 범인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어요 ㅎㅎ


그래서 마지막에 좀 놀랐습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이렇게 놀라는 순간의 묘사마저도

크게 소리치고 경악하는 감정보다는, 은밀하게 숨겨져왔던

내면의 어둠을 떠올리게 만드는 흐름이었어요.



진정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로 나오면 꼭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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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지수신 - 상
류정식 지음 / 물병자리H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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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까지 충의를 다했던 무장 '지수신'이 주인공입니다.

계백에 대해선 황산벌 전투로 잘 알려져 있지만 지수신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삼천 궁녀로 유명했던 의자왕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세월이 한참 지난

승자의 기록에서 퇴폐적인 왕으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곳곳에 드러나있는데요, 김유신 장군의 모습도 백제의 입장에서 쓰이다 보니

이제까지 보던 것과는 다른 시각들이 흥미로웠습니다.



나. 당 연합군 5만 명에 맞서 백제의 왕을 지키고자 했던 신하와 백성들의

이야기가 처절할 만큼, 배신과 음모로 점철되어 읽는 내내 먹먹했습니다.


신라의 간계에 빠진 충직했던 무장도 있고, 권력 다툼으로 충신을 죽이는 놈도 있고, 

승려의 신분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왔으나 씁쓸하게 죽은 이도 있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양다리 걸치는 자도 있지만

가장 화가 났던 건, 무능하고도 지조 없는 왕이었습니다. (의자왕의 아들 중에요)



화랑 반굴과 관창의 죽음도 나오고 천관녀의 이후 이야기도 그려지고

전장의 긴박한 분위기와 참혹함도 긴장감 있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지수신을 사랑한 여인 '율'

그녀의 신분은 공주입니다. 지수신과 함께 검술을 배우고

뛰어난 솜씨로 적장의 목을 베는 배짱도 대단한 여인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가상의 인물이라는 사실.


소설에서 그녀는 마치 역사 속에 지수신과 함께 정을 나누고

의리를 품었던 실제 인물처럼 그려져서 더 재미있었어요!

아름다운 검술 실력에 반한 사내들이 한둘이 아닌데 (당나라까지)

오로지 지수신만을 바라봅니다. ㅠㅠ



결말은 백제와 운명을 함께하는 것으로 끝나는데요,

누가 살고 누가 죽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자가 우려한 만큼 역사의 진실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약한 백제의 마지막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강건하게 바꿀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주말 도서로 추천해봅니다:)




-전쟁 장면이 크게 잔인하지 않아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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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전자
조경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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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테오'라는 인물에 호기심이 들것 같습니다.

테오는 작가의 전작 <3인칭 관찰자 시점>에 등장하는 꽃미남 신부님입니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로 모두의 영혼을 (다른 의미로 뒤흔든) 마성(?)의 남자라죠.


하지만 그렇게 빛나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과거와 가정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저히 정상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환경에서도 그는 바른 사제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갑니다만, 아무리 노력해도 살인마인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ㅠㅠ 이때 얼마나 맴찢했는지



그리고 테오 신부에게 유일한 친구였던 '베드로'가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건이 해결되고 테오의 행방이 열린 결말로 끝나게 되는데요,

테오가 넘 매력 터지는 인물이라서 도저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궁금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ㅋㅋ


그 후의 이야기가 <복수전자>에 나와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어렸던 요셉이 어느덧 테오의 곁에서 든든한 일꾼(?)이 되어 있네요!



우리 사회가, 우리들의 법이 그랬다.

언제나 법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너그러운 법이니까.

세상 꼭대기에 오르려다 바로 코앞에서 추락한 괴물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또 무슨 짓을 어떻게 저지를지 모른다. _299p


아픔을 겪은 사람들인 만큼,

인생의 소중한 것을 복수라는 허울에 투자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더 이상 무의미한 희생자나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설립된 복수전자.


이곳에 오려면 꽤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복수의 의지가 얼마큼인지 인내심 테스트를 해야 하고 각오를 보여야 해요.

설문지만 작성해도 지칠 정도의 과정을 모두 통과하면

드디어 요셉과 어둠 속의 테오를 만나게 됩니다.



의뢰인들 중에 아버지의 권력욕에 밟혀버린 사람들을 찾아서 위로하는

아들 '성우'가 등장하는데, 그의 이야기가 가장 큰 줄기기 되어 진행됩니다.

피도 눈물도 없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비정했던 아버지.

그에게 진정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성우는 자신의 집에 불까지 질러보지만

진정한 복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복수전자'를 찾아갑니다.



전편에서 마무리하지 못했던 것까지 이번 편에서 깔끔하게 정리되는 결말이 좋았어요.

테오가 또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모습에서 다음 편에 대한 기대도 커집니다.

작가님이 이후 이야기도 내주신다면 꼭 만나보고 싶어요!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재밌게 읽었다면

테오의 이후가 궁금하다면 강추!



#테오넘좋아

#테오_요셉_햄볶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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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두 번
김멜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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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단편이 모두 인상 깊고 감각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어린 왕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어서 좋아한다는 '인터섹스'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놀라움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불편하지만 색다른 맛이 났어요.

성별의 고민으로 이태원까지 가보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에게

그+그녀의 어머니는 우선 좋은 대학으로 가라는 말을 합니다.

정해지지 않은 성별처럼 불안한 미래의 자신에게 답이 없는 의문을 던집니다.



첫 모금을 빨아들였을 때 난 나란 사람의 본성을 깨달았다.
마치 수영장 깊이를 알기 위해 밑바닥까지 잠수한 기분이었다.
곧 숨이 막혀 물 위로 올라왔지만 난 더 깊은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난 더 깊이 갈 수 있었고 더 혼자일 수 있었다.


 ㅡ 호르몬을 춰줘요 _14p


성추행으로 오해받은 여성의 진심이 담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좀 더 근본적인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슬람에서 다뤄지는 여성의 문제와 누가 봐도 추행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때의 상황을 조곤조곤 풀어내는 방식이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플러스+ 장애인에 대한 불필요한 친절과 관용(?)이랄까. -스포방지-

태어나면서부터 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외침 같기도 해서 무겁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는, '집안 말아먹을 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여성입니다.

그녀는 항상 궁금했어요. 무당의 말이 정말일까. 팔자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죠.

우연히 만난 사주보는 여성과의 만남으로 그녀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나가며 상처를 풀어나갑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편하면서도 묘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내 쓸모가 소품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소품은 소품의 성실함이 있으며 잘 닦인 소품이라면
언젠가 무대 위에 올라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믿음에 매달려 시간을 흘려보냈다.
 
 ㅡ 에콜 _176p
 

 

​이어지는 4, 5, 6편의 이야기도 묵직한 여운을 남기면서도 재미있었어요.

마지막 '홍이'는 '저주'라는 단어와 합쳐지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도 났어요.

홍이는 바위도 되었다가 닭도 되고 강아지도 되었다가 사람도 됩니다.

죽으면서 저주를 남겼다는 말도 있고, 예쁜 것만을 일부러 잔인하게 죽이면서

무언가를 이루려는 기묘한 말도 있습니다. << 감이 안 오죠?

하지만 스포라서 자세히 알려드릴 수는 없네요 ㅋ



구병모 소설가의 추천도 있는 책이라서 호기심에 읽었는데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는 읽을 수 없다'

'한번 닿으면 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칼날을'

이라는 표현에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성소수자 #젠더 #아웃사이더 #시체 #호스티스 #실종



김멜라 작가가 소설 속에서 던지는 의문들이

무심한 편견을 향해 당겨지는 화살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까운 지인처럼 느껴져서 신기했어요.

오감을 이용해서 소설을 읽게 만드는 필력까지.



더운 여름 시원한 블루 칵테일 빛 소설 한 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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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니코 워커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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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Cherry): 미국에서 전쟁에 처음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이 책은 작가 니코 워커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작가 노트에는 이렇게 쓰여있어요.


이 책은 소설이다. 이 책의 사건들은 일어난 적이 없다.

이 책의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낯처럼 솔직하고 거리낌 없는 표현과 드러냄이

실제처럼 강렬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마약에 찌들어 사는 한마디로 개차반인 남자입니다.

약을 구하기 위해, 은행 강도는 기본이죠.

'에밀리'와의 결혼 후 이라크로 의료 지원병으로 가게 되는데요

심지어 그곳에서도 약을 합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하루하루 속에서 불안을 방패삼아

약이 주는 안락함과 환상적인 만족감에 삶의 의미를 둡니다.

이제 겨우 20살의 나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하나씩 둘씩.

영웅도 없고 전투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그냥 보조이고 허울만 좋은 허수아비였다.

도로를 오가고 바쁜 척을 하면서 돈만 펑펑 쓰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_235p



무기력한 자신을 끝없이 비하하는 주인공의 눈에 비친 이라크는

마약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일말의 양심조차 없는

인간이라는 참혹한 경험과 나약한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정상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이라크에 다녀온 교관들도 거짓말이 습관이었다.

거기서 어린아이도 죽였다고 했다.

미군에게 몰래 접근하려는 어린아이가 있어서 수류탄을 던져야 했다나.

그런 상황이 되면 어린아이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죽여야 했다는 것이다.

교관 하나는 88M, 트럭 운전사였다.

그는 수류탄을 맞아 바닥에 쓰러진 어린아이를 트럭으로 밟고 지나가야 했단다.

그때부터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_85p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느새 의무병이 되어 의사처럼 치료를 하고,

현지인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으며 진료를 하기도 하는데

약쟁이가 이라크에서 총이 아닌 붕대와 진통제를 들고

스스로도 혼돈에 빠져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했습니다.



환멸과 죽음으로부터 살아돌아온 그는 에밀리와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여러 여자를 만나게 되지만, 결국 그녀와 재회합니다.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던 젊은 연인은, 마약이라는 깊은 수렁에

함께 빠지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됩니다.



엄청난 양을 몸속에 찔러 넣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면서 양 날개를 천천히 펼쳤다.

우리는 구원받았다.

천사가 느낄 법한 기분을 만끽했다. _374p


그 세계에선 오로지 약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마지막 장, 파멸을 덮었을 때

타락의 길로 접어든 주인공의 가장 어두웠던 인생을

함께 걸어온 기분이 들어서 신기했습니다.

작가가 걸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다는 느낌에

맨 몸 그대로 벗겨진듯한 스토리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소 불편하고 과격한 표현들과 무신경하게 툭툭 내뱉는

죽음과 성에 대해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것이 진짜 있는 그대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좀 난해한 리뷰가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여운이 남는 매력적인 소설이었습니다.

날것 그대로를 삼킬 수 있다면 추천!



영화로도 나온다는데, 과연 이 주인공의 독특한 매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낼지 궁금하네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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