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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니코 워커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체리(Cherry): 미국에서 전쟁에 처음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이 책은 작가 니코 워커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작가 노트에는 이렇게 쓰여있어요.
이 책은 소설이다. 이 책의 사건들은 일어난 적이 없다.
이 책의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낯처럼 솔직하고 거리낌 없는 표현과 드러냄이
실제처럼 강렬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마약에 찌들어 사는 한마디로 개차반인 남자입니다.
약을 구하기 위해, 은행 강도는 기본이죠.
'에밀리'와의 결혼 후 이라크로 의료 지원병으로 가게 되는데요
심지어 그곳에서도 약을 합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하루하루 속에서 불안을 방패삼아
약이 주는 안락함과 환상적인 만족감에 삶의 의미를 둡니다.
이제 겨우 20살의 나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하나씩 둘씩.
영웅도 없고 전투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그냥 보조이고 허울만 좋은 허수아비였다.
도로를 오가고 바쁜 척을 하면서 돈만 펑펑 쓰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_235p
무기력한 자신을 끝없이 비하하는 주인공의 눈에 비친 이라크는
마약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일말의 양심조차 없는
인간이라는 참혹한 경험과 나약한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정상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이라크에 다녀온 교관들도 거짓말이 습관이었다.
거기서 어린아이도 죽였다고 했다.
미군에게 몰래 접근하려는 어린아이가 있어서 수류탄을 던져야 했다나.
그런 상황이 되면 어린아이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죽여야 했다는 것이다.
교관 하나는 88M, 트럭 운전사였다.
그는 수류탄을 맞아 바닥에 쓰러진 어린아이를 트럭으로 밟고 지나가야 했단다.
그때부터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_85p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느새 의무병이 되어 의사처럼 치료를 하고,
현지인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으며 진료를 하기도 하는데
약쟁이가 이라크에서 총이 아닌 붕대와 진통제를 들고
스스로도 혼돈에 빠져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했습니다.
환멸과 죽음으로부터 살아돌아온 그는 에밀리와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여러 여자를 만나게 되지만, 결국 그녀와 재회합니다.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던 젊은 연인은, 마약이라는 깊은 수렁에
함께 빠지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됩니다.
엄청난 양을 몸속에 찔러 넣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면서 양 날개를 천천히 펼쳤다.
우리는 구원받았다.
천사가 느낄 법한 기분을 만끽했다. _374p
그 세계에선 오로지 약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마지막 장, 파멸을 덮었을 때
타락의 길로 접어든 주인공의 가장 어두웠던 인생을
함께 걸어온 기분이 들어서 신기했습니다.
작가가 걸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다는 느낌에
맨 몸 그대로 벗겨진듯한 스토리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소 불편하고 과격한 표현들과 무신경하게 툭툭 내뱉는
죽음과 성에 대해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것이 진짜 있는 그대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좀 난해한 리뷰가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여운이 남는 매력적인 소설이었습니다.
날것 그대로를 삼킬 수 있다면 추천!
영화로도 나온다는데, 과연 이 주인공의 독특한 매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낼지 궁금하네요:) 기대됩니다.



